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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귀찮으신 분들은 영상으로 시청해 주세요 https://youtu.be/NpVfMDZ2klA)
이번에 개봉한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은 다른 작품들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 21기 극장판부터 시작된 하시모토 마사카즈, 타카하시 와타루 감독 2인 체제에서 어느 정도 탈피하여 <러브 라이브!> 시리즈의 감독인 쿄고쿠 타카히코를 새로운 감독으로 내세운 것이다. 그 덕에 쿄고쿠 감독이 자신의 작품에서 곧잘 보여주었던 특유의 연출들이 이번 극장판에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내가 일본 연례 개봉 극장 애니메이션 삼대장인 짱구는 못말려, 도라에몽, 명탐정 코난 시리즈들 중 짱구는 못말려 시리즈를 가장 좋아하고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짱구가 벌써 20년이 넘은 시리즈임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항상 새로운 시도를 통해 좋은 작품들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용사들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시리즈에는 불문율이 하나 존재한다. 주인공인 짱구를 주축으로 가족들과 떡잎마을 방범대 친구들이 중요 조력자가 되어 극을 이끌어가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번 작품에는 이러한 불문율이 어느 정도 깨진다. 가족들과 떡잎마을 방범대가 조력자로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 출연 빈도나 활약이 다른 작품들보다 현저히 떨어진다. 이번에는 그 대신 짱구가 낙서왕국의 보물 '미러클 크레용'으로 그려 만들어 낸 '브리프'와 '가짜 이슬이 누나', 그리고 영원한 짱구의 동반자 '부리부리 용사'가 조력자로 활약한다. 그들은 기존의 조력자였던 가족들과 떡잎마을 방범대의 조력자 포지션을 이어받은 만큼 확실히 눈에 띄는 활약상을 펼친다.
조력자들은 주제, 장르, 스토리 진행 등에 있어서 다방면으로 활약한다. 우선 짱구는 못말려 시리즈의 근본 장르인 개그부터 그 존재감은 드러난다. 브리프와 부리부리 용사의 시도 때도 없이 펼쳐지는 만담부터, 탄생 이유부터 웃음을 한껏 유발하는 가짜 이슬이 누나까지 그들의 존재부터 일단 개그 그 자체라고 불러도 손색없을 정도로 웃기다. 이 개그를 후반에 가서는 스토리 진행과 주제 의식 강조의 용도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를 통해 웃음과 주제를 모두 잡아내는 데에 성공한 것은 칭찬할 점이다. 특히 조력자들이 차례대로 짱구를 위해 희생하며 짱구를 성장시키는 과정들은 꽤 감동적이기도 하다. 이처럼 조력자들은 그 이름에 걸맞게 여러 방면에서 주인공 짱구를 돕고, 스스로도 각자의 개성을 뽐내며 열심히 활약한다. 영화의 제목에 '얼추 네 명의 용사들'이라는 타이틀을 집어넣은 이유는, 어린아이인 짱구가 그려내어 만들어진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캐릭터들임에도 용사라는 이름에 걸맞은 멋진 활약들을 펼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 비판, 그리고 극복
이번 작품에서는 지난 작품들과는 다르게 꽤나 심오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어른들의 이기심과 군중심리의 문제점이 바로 그것이다. 짱구와 일행들이 낙서왕국 병사들을 물리치고 어른들을 구출해낸 후, 어른들은 미러클 크레용의 존재를 알게 되고 짱구에게 미사일 같은 무기를 그려내서 낙서왕국을 물리치라고 강압한다. 하지만 크레용은 다 써버리고 말았고, 어른들은 구해준 은혜를 잊고 짱구와 일행들을 격렬하게 매도하기 시작한다. 낙서를 그리면 낙하하는 낙서왕국의 성을 다시 하늘로 돌려보내 떡잎마을과 낙서왕국 모두를 구할 수 있지만, 이기적인 어른들은 자신들이라도 살기 위해 도망칠 뿐이다. 짱구를 돕는 것은 가족들과 떡잎마을 방범대, 유치원 선생님들과 기타 지인들 뿐이다.
조력자 중 한 명인 유민은 그런 어른들을 향해 비겁하다고 외친다. 짱구에게 도움을 받았음에도 자기 자신들만을 위해 이를 외면하고 오히려 매도하기까지 하는 어른들의 이기적인 모습들을 비판하는 것이다. 이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적용되는 비판일 것이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도움을 받았음에도 오히려 이를 무시하고 도움을 받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소한 문제로 트집을 잡거나 하는 이기적이고 삭막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작품 속에서 이런 이기심은 아이들의 무한하고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극복된다.
낙서왕국은 전자기기의 발달과 어른들의 제지로 인해 낙서를 그리지 못하게 되어 멸망의 위기에 처해있었고, 이는 떡잎마을에도 위협이 된다. 자유의 억압이 결국 새로운 형태의 위협을 가져오고, 거기에 어른들의 이기심으로 인해 위협이 심화되기까지 하는 셈이다. 아이들과 어른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다 함께 동심으로 돌아가 상상력을 발휘, 짱구를 돕는다. 함께 노래를 부르면서 거대한 부리부리 용사를 그리고, 소환된 부리부리 용사가 낙서왕국을 다시 하늘로 올려 보낼 수 있도록 오글거리긴 하지만 함께 응원해주기도 한다. 삭막해져 가는 세상을 다시 따뜻한 세상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이들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이를 조력하는 어른들의 협동일 것이다.
짱구 시리즈의 특기, 장르의 자유로운 혼합
짱구는 못말려는 기본적으로 개그 일상 가족 애니메이션이다.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시리즈는 이러한 장르의 특성을 이용해 항상 다양한 장르를 혼합해왔다. 그 장르도 대범해서 전국대합전처럼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사극 장르마저 특유의 개성으로 물들여 명작으로 만들어버리는 시리즈가 짱구다. 그런 짱구 극장판이 이번에는 엄청난 시도를 했다. 개그 일상을 기반으로 한 용사물을 주제로 잡고 그 안에 로드 무비, 뮤지컬, 사회비판 등의 여러 장르들을 한 번에 혼합한 것이다.
이쯤 되면 아무리 장르 포용성이 높은 짱구 시리즈라도 극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 같지만, 감독 쿄고쿠 타카히코는 이를 해냈다. 우선 작품의 1부에 해당하는 로드 무비는 짱구가 세 명의 조력자들과 함께 떡잎마을을 구하기 위해 여정을 떠나는 시퀀스 전반에 깔려있다. 그 과정에서 조력자인 브리프, 가짜 이슬이 누나, 부리부리 용사의 캐릭터성을 소개하고 이용해 떡잎마을로의 도착이라는 목표를 차근차근 이루어 나간다. 특히 이 시퀀스에서 가짜 이슬이 누나라는 캐릭터가 가장 돋보이는데, 우스꽝스러운 모습임에도 짱구와 동료들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뮤지컬 장르는 1부와 2부를 잇는 모습에서 한 번, 2부의 최종장에서 한 번 등장한다. 1부의 로드 무비와 2부의 사회비판에 비하면 존재감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확실히 임팩트를 주는 데에는 성공했다. 영화의 중반, 아이들이 그려 낸 낙서들이 낙서왕국의 백성들이 되어 낙서왕을 위한 뮤지컬을 하는 장면은 바로 다음 장면에 등장하는 국방장관의 모습과 대비되며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데에 사용된다. 2부의 뮤지컬은 이보다 더 강화된다. 작품의 후반부에는 낙하하는 낙서왕국을 막기 위해 마을 전체에 거대한 부리부리 용사를 그리는 장면에서 아이들, 어른들, 낙서왕국 인물들이 다 함께 뮤지컬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이들이 보라고 만든 영화인 만큼 가사는 조금 유치하긴 하지만, 장면의 상황과 주제에 잘 어우러져 나도 모르게 짱구와 동료들을 응원하게 만든다. 나는 뮤지컬 장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이처럼 작품 전반에 잘 녹아들게 만들면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짱구 시리즈의 장르 포용력은 정말 대단하다.
화룡점정, 쿄고쿠 타카히코
쿄고쿠 타카히코 감독은 본래 인기 애니메이션 <러브 라이브!> 시리즈의 감독이었고, 지금도 하고 있다. 그가 감독을 맡은 <러브 라이브!> 시리즈는 어느 정도 비판은 들을지언정 연출과 영상미, 3D 활용 능력에 있어서는 항상 호평을 들어왔다. 그 깐깐한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도 <러브 라이브!>를 까긴 했어도 영상 퀄리티에 대해서는 인정했을 정도다. 그래서 쿄고쿠 타카히코가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의 감독을 맡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조금 의아하긴 했지만 어떤 작품이 될까 내심 기대하기도 했다.
그런 기대는 나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번 영화는 짱구 시리즈 특유의 개성과 쿄고쿠 타카히코 감독 특유의 연출들이 잘 혼합되어 좋은 작품이 되었다. 우선 쿄고쿠 감독이 <러브 라이브!>의 감독인 만큼 1부의 로드 무비 시퀀스는 대체적으로 <러브 라이브!>와 비슷한 연출들이 등장한다. 이는 짱구 일행이 떡잎마을로 향하는 여정을 간략하게 보여주는 장면에서 잘 느껴진다. 대체적으로 <러브 라이브!> 시리즈의 전통과도 같은 합숙 트레이닝 파트 중 진지한 장면들만 추린 느낌이 난다. 그 외에도 쿄고쿠 감독의 장기인 3D 연출도 빛을 발하고 있고, 가장 인상 깊게 보았던 낙서화 카메라를 이용한 2D 그림의 다양한 활용들도 작품을 잘 살려주고 있다.
짱구 시리즈의 오랜 팬으로서 20년이 된 시리즈가 아직도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순항하는 것도 기쁜 일이지만, <러브 라이브!>로만 유명했던 쿄고쿠 타카히코 감독이 이번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를 통해 새로운 모습들을 보여준 것에서도 의미가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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