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영화 88

너의 색

나는 야마다 나오코 감독을 언제나 지지해 왔다. 그녀의 영화와 TV 애니메이션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들을 일관적으로 화면 안에 표현하면서도 세부적으로는 다양한 변주를 시도하고 새로운 연출들을 적용하는 모습으로 새로움을 주었다. 그러나 이번 신작 영화 은 꽤 좋은 작품이었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슬프게도 아쉬움 역시 다가와 버리고 만 작품이었다. 에는 새로움이 없다. 물론 야마다 나오코 감독이 언제나 새로움만을 추구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전 작품들의 집대성'이라는 내재적 주제의 표현을 위하여 새로움을 배제한 채 야마다 나오코 감독이 지금까지 활용해 왔던 모든 특징적인 연출들을 하나로 모아 훌륭하게 등장시켰음에도 각본은 이를 전혀 뒷받침하지 못했다는 점이 너무나도 아쉽다. ..

영화 2024.10.22

룩 백(영화)

나는 이번 글에서 영화 의 서사적 해석을 시도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이전에 만화 의 리뷰에서 이미 확실하게 시도했던 것일뿐더러, 영화 의 주제를 이야기하는 데에 있어서 서사적 해석은 그다지 의미 없는 행위 같다는 생각이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들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글에서는 그 이유를 철저하게 파헤침과 동시에 애니메이션화 작품에 걸맞은 새로운 시선의 해석을 시도하여 어째서 영화 이 훌륭한 작품인지에 대하여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오시야마 키요타카 감독의 영화 은 '만화의 영상화'라는 엔터인먼트의 시선에서 관람하게 된다면 그다지 좋은 평을 남기지는 못할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원작 만화 은 교토 애니메이션 방화 사건에 대한 추모와 이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쌓여왔던 만화가 후지모토 타츠키의 삶의 궤적, ..

영화 2024.09.27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새로운 시대의 문

2020년대가 끝나기 전에 후루카와 토모히로 감독의 영화 를 뛰어넘을 작품이 등장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그 생각을 산산조각 내버리는, 야마모토 켄 감독의 영화 과 만났다. 와 두 작품은 화면 위에서 그려져야만 하는 이들의 운명과, 그들의 모습을 화면 밖에서 두 눈에 아로새겨야만 하는 이들의 의무를 주제로 그려내는 영화들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다만 이를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 두 작품의 행방은 갈린다. 가 적나라한 연출과 대사를 총동원하여 표현해 낼 수 있었던 것을, 은 '애니메이션'의 오리지널리티와 '영화'의 오리지널리티를 '애니메이션 영화'의 오리지널리티라는 이름으로 합쳐내는 것만으로 가뿐하게 표현해 보이며, 끝내 이전의 걸작을 훌륭하고 뜨겁게 뛰어넘는다. 끝없이 달려 나가..

영화 2024.08.11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오만하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신작 영화 를 감상하고 다시금 깨달은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관통하고 있는 키워드를 '오만함'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생태주의에 입각한 인간 비판 영화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생태주의의 존재를 그저 영화의 재료 중 하나일 뿐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사실 비판까지 가는 것도 무리일지 모른다. 나는 하마구치 류스케를 끊임없이 바라본 끝에 드러나는 무언가를 포착하는 감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마구치 류스케는 드러내어 촬영하지 않는다. 그저 상황을 만들어두고 드러나는 것을 촬영할 뿐이다. 생태주의는 바로 그 상황이며, 비로소 오만함은 드러나게 된다. 여기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진가 역시 드러난다. 그는 촬영 과정에서 드러나는 우연의 ..

영화 2024.04.15

신차원! 짱구는 못말려 더 무비 초능력 대결전 ~날아라 수제김밥~

(영상으로 시청하기 https://youtu.be/zkeOaGRWQdw?si=Tm7_rlVP7sktvByq) 최근 10년 동안 공개된 일본의 3D 애니메이션은 새로움을 강조하고 있는 것 같다. 본래 일본에서 3D CG는 셀 애니메이션을 보조하던 도구였던 만큼, 전통적인 셀 대신 3D CG로 만들어지는 애니메이션은 새롭다고도 볼 수 있을 테니까. 그러한 생각을 반영하고 있는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야마자키 타카시 감독과 야기 류이치 감독의 영화 , 이노우에 타케히코 감독의 등이 존재한다. 물론 미즈시마 세이지 감독의 영화 이나 산지겐의 시리즈처럼 새로움이라는 타이틀에 구애받지 않고 순수하게 3D 그 자체를 추구하는 작품들도 존재했지만, 이들과 같은 작품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3D CG는 새..

영화 2024.02.06

괴물(2023)

(영상으로 시청하기 https://youtu.be/KMH5IGWYd2I?si=dGO79hg42oAHexbM)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데뷔작 을 제외한 자신의 모든 영화의 각본을 스스로 집필한 감독이었다. 그런 만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 영화 은 흥미로움과 함께 불안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도이 노부히로 감독의 영화 같은 히트작의 각본을 집필한, 심지어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하기까지 한 사카모토 유지의 각본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스스로 각본을 집필하기에 자신의 색을 뚜렷하고 온전하게 드러낼 수 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연출과 어우러질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이었다. 이는 기우였다. 물론, 각본에 있어 아쉬운 점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조금은 인위적이고 딱딱..

영화 2024.02.06

이 세상의 (그리고 다른 세상의) 한구석에

감히 이야기하겠다. 카타부치 스나오 감독의 영화 의 완전판 는, 태평양 전쟁기를 다루는, 더 나아가 전쟁을 다루는 모든 영화들 중에서도 상당히 높은 위치에 오를만한 작품이다. 누군가는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애니메이션이 그 정도의 위치까지 오를 수 있다고?’ 이에 나는 답하겠다. ‘이 영화는 애니메이션이었기에 그 정도의 위치까지 오를 수 있었다.’ 영화 는, 일상을 구성하던 침략과 수탈이라는, 얄팍하게 가려져 있었던 거짓된 정의에 대한 참회와 함께, 그 기반이 되었던 전쟁의 반대, 즉 반전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이다. 동시에,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올바르고 평화로운 일상을 새로운 미래로 이어줄 수 있는 방법이라고, 현재에 촉구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러한 주제들은 애니메이션의 오리지널리티를 통해 ..

영화 2023.12.17

블루 자이언트

(영상 시청 가능 https://youtu.be/iYGKtfkWGQk?si=MnP1qlp1u0z3GCYd) 타치카와 유즈루 감독의 영화 는 이시하라 타츠야 감독의 애니메이션 프로젝트 및 야마다 나오코 감독의 영화 에 버금간다. 동등한 위치에 오르지 못하고 버금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작중 등장하는 연주 장면들을 전부 작화로 그려내었음에도 불구하고 퀄리티의 하락 없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전부 보여주었던 및 와는 달리, 상당한 연주 장면들이 허접한 3D 모델링으로 연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정도의 사소한 아쉬움으로 의 평가를 크게 떨어뜨릴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장르 영화는 장르에만 충실하면 된다고 늘 생각한다. 따라서, 액션 영화에서는 액션이, 공포 영화에서는 공포가, 로맨스 영화에서는 로..

영화 2023.10.18

타마코 러브 스토리

야마다 나오코 감독의 영화 는 예술은 어떻게 인간의 마음을 담아낼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그 어떤 영화들보다도 사랑스러운 결론을 내놓는 작품이다. 그 마음의 총체가 영화 속에서는 야마다 나오코 감독이 항상 주제로 삼고 있는 ‘영원히 변치 않을 마음’으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는 야마다 나오코 감독의 최고작이라고 불러도 손색없을 영화가 된다. 이전과 이후의 야마다 나오코 감독은 영원히 변치 않을 마음을 아름답게 연출했을지언정, 그 결과물을 예술이라는 관념 속에 담아내지 않았다. 하지만, 야마다 나오코 감독은 2023년 기준 그녀의 유일한 오리지널 영화인 에서만큼은 첫사랑이라는, 영원히 변치 않을 마음을 영화와 음악이라는 예술 속에 담아내고 있다. 이는 영화감독이라는 예술가의 프라이드처럼 보인다. 야마다 나..

영화 2023.10.18

화란

https://youtu.be/FA33sWR2YHQ?si=oqcUDYiPxnhTRrkh 김창훈 감독의 영화 은 아쉽다. 비슷한 성장 과정을 공유하고 있는 두 주인공들이 끝내 서로 다른 길을 걸어 나가는 지점을 그려내는 누아르 장르의 영화이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떨어져 가는 정교함은 작품에 대한 감상을 기대에서 아쉬움으로 변하도록 만든다. 만약 김창훈 감독이 차기작을 촬영할 기회를 얻게 된다면, 데뷔작에서의 실수들을 교훈 삼아 정교함을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들었던 요소가 한 가지 있다. 주인공들이 나고 자란 땅, 고향에 대한 감독의 시선이었다. 김창훈 감독은 고향을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희망이 존재하지 않는 지옥도이자 떠나야만 하는 곳으로 묘사한다. ..

영화 2023.10.16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