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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10

거울 속 외딴 성

나는 하라 케이이치 감독의 영화 을 꽤 재미있게 감상하였다. 더 좋은 후기를 쓰기 위해 세 번이나 영화관에서 관람하였을 정도니까. 그런 만큼, 영화 은 영화 이후 12여 년간 부진했던 하라 케이이치 감독의, 걸작이라고까지는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만 충분히 인상적인 재기작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영화 을 감상한 나는, 원작 소설과 타 미디어믹스 작품들도 감상해 보기로 했고, 그렇게 만화 을 읽어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깨닫게 된 것은, 아쉬운 점을 수정하고 장점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작품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원작 소설의 작가이자 원안을 맡은 츠지무라 미즈키와, 그림을 맡은 타케토미 토모의 만화 이 바로 그런 작품이다. 이 만화는 원작과 영화보다 훌륭하다. 스토리와 주제에 대해서는 이전의 ..

도서 2024.09.15

룩 백: 교토 애니메이션을 추모하며

나는 후지모토 타츠키의 만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은 어처구니가 없는 작품이라고 생각했고, 는 영화라는 사랑에 잡아먹혀 만화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작품이라고 생각했으며, 다른 단편들도 그다지 나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그러나 만큼은 늘 예외로 둔다. 후지모토 타츠키의 만화 은 그의 유일한 명작이라고 할 수 있다. 교토 애니메이션 방화 사건이라는 비극을 모티프로 하여 그에 대한 추모와 후지모토 타츠키 본인의 자전을 조화한 끝에 드러나는 성장과 예술의 의미는, 독자로 하여금 살아감의 이유를 곱씹도록 만든다. 따라서 나는 이번 글을 통하여 밝혀내고자 한다. 비극을 딛고 일어서도록 독려하는 추모를, 지금까지의 발자취를 뒤돌아보며 긍정하는 자전을, 끝내 일어서 긍정하게 되는 성장을, 그제야 불현듯 깨닫게 되..

도서 2024.07.13

나는 떡볶이가 싫다

먼저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내가 떡볶이류 에세이를 싫어하는 이유는 결국 앞으로 나아가자는 말은 보이지 않아서다. 를 읽어본 적은 없지만, 중학생 때 라는 책을 읽어본 적이 있었다. 가끔씩 책 이야기를 같이 했던 같은 반 친구가 읽고 있기에 “그건 무슨 책이야?” 하고 물어보니 힐링되는 책이라고 해서 이야기를 더 이어가기 위해 읽어봤던 걸로 기억한다. 내용은 여타 떡볶이류 에세이들이 그러하듯 현재의 일상에 치여 사는 사람이 자기를 되돌아보며 일상에 일부러 치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쉬어도 괜찮다고 자신을 위로하는 내용이다. 그렇게 계속 “괜찮아, 괜찮아.”라는 말을 반복한다. 문제는 그렇게 위로받고 쉬기만 하면 달라지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 남았다는 것이다.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을 괴롭히는..

도서 2022.04.11

국화와 칼

이 책을 읽으면서 재미있었던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자중'에 대한 일본인의 생각이다. 많은 문화권에서 자중은 외부에서의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해가 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신중히 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일본 문화권에서 자중은 외부에서의 자신의 행동이 고스란히 자신의 해로 돌아오는 일이 있지 않도록 자기 자신을 신중히 하는 행위이다. 이러한 해석을 바탕으로 일본인들은 자신에게 해가 되는 일이 없도록 자중하며 살아간다. 저자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인들이 이 불만을 "아, 이 세상이 사라진다면 자중할 필요는 없을 텐데."라는 말로 표현한다고 설명한다. 난 이 대목에서 폭소했다. 많은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에서 등장하는 자의식 강한 인물의 단골 대사는 "이 세상 같은 건 망해버리면 좋을 텐데."이기..

도서 2022.02.01

소녀종말여행

(영상 시청 가능 https://youtu.be/AxncqgQt2lk) 인간은 태어난 그 순간부터 죽어가는 존재이다. 이로 인해 인간은 남은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은 것들을 쌓아 올려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자 하는 욕망을 갖게 되었고, 이 욕망으로 문명을 세워 오랜 시간 동안 이어올 수 있었다. 만화 은 이러한 문명들을 하나도 이해할 수 없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세계에서 주인공 치토와 유리는 이해할 수 없는 문명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다시 쌓아 올리며 할아버지가 유언으로 남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시작된 소녀들의 여정은 독자로 하여금 삶과 죽음이란 무엇인지, 시작과 끝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도록 만든다. 이해할 수 없기에 새로운 것들..

도서 2022.01.24

인간 실격

솔직히 말해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주인공 요조에게 한 번도 몰입하지 못했다. 애초에 나처럼 초라하기 짝이 없는 인간관계를 가진 사람들은 허울뿐이긴 해도 많은 여자들과 방탕하게 놀아나다 결국 몰락해버리는 요조에게 몰입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을 주인공의 일대기보다 이 작품이 출판된 당시 일본의 사회상과 일본인들의 정신문화를 상기하며 읽었다. 그 결과 나는 결론 두 가지를 얻었다. 1948년은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고 3년이 지난 해였으며, 국권회복까지 4년이라는 시간이 남아있던 시기였다. 천황의 신민으로서 단결되어있던 일본인들은 허무함 그 자체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속 요조의 비극적 일대기는 바로 그 점을 찌른다. 요조는 방탕하게 놀아나며 욕망을 끊임없이 채웠지만, 끝이 없었던..

도서 2021.08.18

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

오사나이와 고바토가 계약 연인 관계를 청산하고 3학년이 된 어느 날, 두 사람은 각각 연하의 후배와 같은 반 동급생에게 고백을 받고 소시민 생활을 즐긴다. 그런 두 사람에게 방화라는 거대 범죄가 끼어들고, 그들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소시민 시리즈 3권 리뷰, 시작한다. 오사나이의 새로운 남자친구는 자신의 이름을 모교의 역사에 새기고자 한다. 이를 위해 그는 방화 사건의 범인을 추적한다. 오사나이는 그런 남자 친구에게 범인 추적에 대해 경고하면서도 응원의 뉘앙스를 취한다. 고바토의 새로운 여자 친구는 우리가 기본적으로 상상하는 여자 친구의 스테레오 타입이다. 그녀는 남자 친구와 함께 쇼핑을 가고, 여러 음식들을 맛보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다. 고바토는 그런 여자 친구의 응석을 받아주며 관계..

도서 2021.08.11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

영화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동진 평론가의 이름 석자는 들어보았을 것이다. 영화에 그다지 관심이 없어도 그의 별점과 20자 평을 보고 영화의 관람 여부를 결정하는 사람들도 꽤 많다. 나는 기본적으로 평론가들의 20자 평보다는 장문의 평론을 영화 관람 후에 읽어보는 편이지만, 이동진 평론가의 별점과 20자 평은 관람 전에 어느 정도 참고할 때도 있다. 그런 이동진 평론가의 평론집 는 영화에 입문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 않은 퀄리티로 나에게 당혹감을 안겨주었다. 이 평론집의 최대 단점은 이동진 평론가가 자신의 블로그나 타 매체에 남겼던 평론들을 그대로 복사, 붙여 넣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책을 위해 새로 쓰인 평론도 있지만, 이는 봉준호 감독의 과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도서 2021.08.11

여름철 한정 트로피컬 파르페 사건

규모 있는 사건이 진짜로 일어났다. 무려 납치라는 범죄 사건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며 밝혀지는 숨겨진 진실과 흔들리는 두 주인공의 관계를 다룬 소시민 시리즈의 2권 리뷰. 지금 시작한다. 소시민 시리즈의 2권 은 오사나이의 늑대 같은 복수심이 여실히 드러나는 장편이다. 그녀는 자신의 복수를 이루기 위해 자신이 납치당하는 것마저 감수하며 계획을 짠다. 그 과정에서 그녀의 계약 연인 고바토가 이용되고, 이를 깨달은 고바토가 함께 소시민이 되자는 계약을 어긴 오사나이와의 관계를 끊어버린다는 내용을 담은 것이 본작의 내용이다. 이런 인간관계를 다루는 작품은 인간관계의 치중이 장르를 침식할 우려가 있는데, 요네자와 호노부는 명성에 걸맞게 미스터리라는 장르도 잃지 않고 좋은 추리를 보여준다. 1. 오사나이가 디저..

도서 2021.07.31

봄철 한정 딸기 타르트 사건

이 작품으로 시작되는 작가 요네자와 호노부의 소시민 시리즈는 필연적으로 그의 또 다른 소설 시리즈인 고전부 시리즈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자면, 이 작품은 고전부 시리즈보다 더 뛰어난 시리즈의 포문을 연 작품이다. 고전부 시리즈는 거의 대부분의 사건이 학교 안에서 일어나고, 개인적인 반면 소시민 시리즈에서는 학교 밖에서 사건이 일어나고 별로 개인적이지도 않다(애초에 사건의 동기가 자세히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주인공 호타로의 성격상 고전부 시리즈에서는 감정 묘사가 그렇게 많이 나타나지 않지만, 소시민 시리즈에서는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의 함께 행동하는 풀어가는 특성상 감정 묘사가 많이 나온다. 이마저도 훌륭히 문장화 하는 데에 성공한 것을 보면 확실히 소시민 시리즈가 고전부 시리즈의..

도서 2021.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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