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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나가레보시 2021. 8. 18.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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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1948)

솔직히 말해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주인공 요조에게 한 번도 몰입하지 못했다. 애초에 나처럼 초라하기 짝이 없는 인간관계를 가진 사람들은 허울뿐이긴 해도 많은 여자들과 방탕하게 놀아나다 결국 몰락해버리는 요조에게 몰입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인간 실격>을 주인공의 일대기보다 이 작품이 출판된 당시 일본의 사회상과 일본인들의 정신문화를 상기하며 읽었다. 그 결과 나는 결론 두 가지를 얻었다.

1948년은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고 3년이 지난 해였으며, 국권회복까지 4년이라는 시간이 남아있던 시기였다. 천황의 신민으로서 단결되어있던 일본인들은 허무함 그 자체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인간 실격> 속 요조의 비극적 일대기는 바로 그 점을 찌른다. 요조는 방탕하게 놀아나며 욕망을 끊임없이 채웠지만, 끝이 없었던 욕망은 그에게 모르핀 중독과 정신병이라는 결말을 안긴다. 마치 일본인들의 욕망을 채워주던 중일전쟁이 태평양 전쟁으로 미친 듯이 폭주하다 결국 원폭이라는 참혹한 결말을 안긴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나는 차오르지 않는 욕망만을 꾸역꾸역 채우다 결국 비극을 맞은 요조의 일대기를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기뻐하고 좌절했던 일본인들의 일대기라고 보았다.

<인간 실격>의 줄거리가 일본인 전체의 이야기라면, 사람들과 자신을 정신적으로 격리하며 심하게 겉도는(이것도 순화된 표현이긴 하지만) 요조의 정신 상태는 일본인 개개인의 이야기다. 정확히 말하면 일본인들 개개인이 대인관계에서 필수적으로 장착하는 메이와쿠(迷惑) 문화의 극단적 의인화가 요조다. 요조는 시종일관 사람들과 자신은 다른 족속이라 규정짓고 그 간극에서 오는 위화감을 숨기기 위해 거짓된 모습을 연기한다. 이 모습이 바로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말을 돌리거나 자신의 성격을 숨기는 일본인의 특성에서 근거한 메이와쿠 문화와 닮았다. 이를 요조의 몰락 이유인 끝나지 않는 욕망을 탐하는 것과 이어본다면, 일본인들은 사회에 짙게 깔려 있는 메이와쿠 문화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쌓인 욕망을 전쟁이라는 매우 자극적인 요소로 채웠고, 결국 비극을 맞았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최종적으로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인간 실격>은 일본인의 정신세계를 탐구하며 일본인들의 거짓된 욕망이 어떻게 몰락했는지를 다룬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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