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똥파리

나가레보시 2021. 9. 23.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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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파리(2008)

(귀찮으신 분들은 영상을 시청해 주세요 https://youtu.be/50lcgTEqGpg)

세상 사람들이 흔히들 이야기하는 말이 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혈육의 정은 어떠한 관계보다 뛰어나다는 뜻으로, 가족 간의 결속력이나 애정을 비유하는 말이다. 하지만 때로는 이 핏줄이 가족 간의 애정을 결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폭력을 옹호하고 대물림하게 만드는 사례도 존재한다.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어릴 적에 가정폭력을 당한 사람이 어른이 되고 배우자를 만나 아이를 가져 가정을 이루게 되면 그 가정 안에서 폭력을 일으킬 확률이 높다고. 모든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그렇다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그런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이다. 이러한 폭력의 대물림이 이루어지는 이유에는 부모의 폭력으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즉 트라우마라고도 부르는 PTSD가 크게 작용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부모의 폭력이 지워지지 않는 낙인으로 남아 불안과 피해망상 증세를 유발하고, 이것이 가족을 향한 폭력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영화 <똥파리>는 이러한 대물림되는 폭력에도 불구하고 결코 끊을 수 없는 핏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끊을 수 없는 핏줄, 대물림되는 폭력
영화의 주인공 상훈은 어릴 적 아버지에게 가정폭력을 당하는 어머니를 지켜보며 살아왔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저지르는 폭력에 지쳐 아예 손을 놔 버린 상훈과 달리 어떻게든 아버지를 말리고 어머니를 구해보고자 했던 상훈의 여동생 준희는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휘두른 칼을 맞게 된다. 상훈은 준희를 업고 병원에 가지만 준희는 세상을 떠났고, 상훈을 뒤쫓아 병원으로 향하던 어머니도 차에 치여 숨을 거둔다. 아버지는 이로 인해 감옥에 가게 되고, 상훈은 트라우마를 가진 채 폭력을 휘두르는 용역 깡패가 된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출소하고, 상훈은 이젠 무력해진 아버지를 향해 울분을 담은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한다. 한편, 또 다른 주인공인 연희도 월남전에 참전해 PTSD를 앓고 있는 아버지와 남동생인 영재에게 폭력을 당하면서도 집안 살림을 책임지며 끝끝내 살아간다. 그 외에 상훈의 이복누나 현서와 조카 형인도 가정폭력을 당했으며, 동업자 만식은 고아다. 그들은 전부 가족이라는 단어에 피해를 받은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가족을 저버리지 못한다. 상훈은 과거 가족들에게 폭력을 휘둘렀던 아버지에게 폭력을 휘두름에도 아버지와 완전히 연을 끊지는 못하며, 현서를 이복누나라고 무시하는 듯하면서도 챙겨주고, 조카에게는 최대한으로 위해주려 노력한다. 이복누나 현서도 그런 상훈을 상냥하게 대하고, 조카도 상훈을 잘 따른다. 연희도 자신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남동생과 아버지라는 가족을 버리지 못하고 살림을 한다. 이러한 끊을 수 없는 핏줄이라는 주제는 영화의 중후반부에 상훈의 아버지가 손목을 긋고 자살을 시도했음에도, 즉 핏줄을 끊어내려고 했음에도 상훈이 병원에 데려가 결국 살려내어 실패로 끝나버린 장면으로 비유된다. 그들은 폭력을 묶여있는 파탄난 가족임에도, 피는 물보다도 진한 법이다.

영화의 또 다른 주제인 대물림되는 폭력 또한 수많은 장면 속에서 나타난다. 영화 속에서 폭력의 대물림은 대물림의 성공과 실패 두 가지로 나타난다. 먼저 대물림의 성공은 영재에게서 나타난다. 아버지에게 폭력을 당하면서도 연희를 향해 폭력을 휘두르는 영재는 그래도 가족을 위해 돈을 벌러 용역 깡패가 된다. 그곳에서 영재는 수금 대상자를 향해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상훈을 보고 두려움과 죄책감에 휩싸인다. 그러나 후반부, 연희와 현서, 조카의 영향으로 깡패를 관두기로 결심한 상훈이 드디어 수금 대상자에게 폭력을 휘두를 수 있게 된 영재를 제지하면서, 상훈의 폭력은 영재에게 대물림된다. 달라진 상훈의 모습은 영재로부터 하여금 '지금까지 사람 패는 모습만 보여주면서 나를 이렇게 만든 네가 이제 와서 착한 척을 해?'라는 생각을 불러일으키기 좋았을 것이다. 결국 영재는 상훈을 죽이고, 영재는 폭력을 완전히 받아들이게 된다. 반면 상훈의 조카 형인은 가정폭력을 당했고 상훈이 아버지를 패는 장면을 목격했음에도 폭력을 물려받지 않는다. 작중에서 가장 폭력을 많이 휘두르는 상훈은 형인의 앞에서 만큼은 폭력을 자제했고, 상훈의 폭력을 형인이 목격했을 때도 상훈은 바로 사과한다. 또한 연희, 현서, 만식 등의 주변인에 의해 계속 보호받고 사랑받아왔다. 이러한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형인은 폭력의 대물림을 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이에게 주변 환경이 미치는 영향은 정말 막대하다.

새드엔딩, 해피엔딩, 배드엔딩
이 영화에는 새드, 해피, 배드엔딩이 모두 존재한다. 우선 주인공인 상훈이 영재에 의해 죽었기 때문에 새드엔딩이다. 이게 배드엔딩이 아닌 이유는 뒤에서 설명하겠다. 다음으로, 이 작품이 해피엔딩의 요소를 가지고 있는 이유는 인물들이 폭력의 대물림을 점차 끊어나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상훈은 연희와 현서, 형인에 의해 자신의 폭력적인 성향을 죽이기 시작했고, 결국 용역 깡패를 그만두기로 결심하면서 아버지로부터 물려져 내려온 폭력을 끊고자 한다. 이에 자극을 받은 동업자 만식도 용역 사무소를 인수인계 하고 고깃집을 시작하게 된다. 끝내 상훈과 주변인들은 핏줄과 이에 버금가는 인연을 통해 하나로 뭉치게 된다. 상훈은 이복누나 현서와 친구 만식의 미래를 위해 두 사람을 이어주고자 한다. 연희는 상훈에게 동질감을 느끼면서 그와 함께 한다. 씻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상훈의 아버지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가족의 구성원으로 녹아들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이들의 중심에 있는 상훈의 조카 형인은 이러한 가족들과 주변인들의 노력으로 폭력을 물려받지 않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이 작품을 해피엔딩으로도 볼 수 있는 증거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배드엔딩의 요소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상훈의 부하이자 연희의 남동생인 영재는 폭력의 대물림을 끊어내지 못한채 어딘가에서 폭력을 휘두르며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상훈의 죽음이 배드엔딩이 아닌 새드엔딩인 이유이기도 하다. 상훈의 죽음이라는 새드엔딩은 남겨진 사람들이 폭력의 대물림을 끊고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해피엔딩을 탄생시켰지만, 이 죽음을 초래한 이유가 영재가 상훈을 죽였기 때문이고, 이로 인해 상훈은 폭력의 대물림을 끊어내지 못하게 되었다는 배드엔딩도 동시에 탄생한 것이다. 이를 보면 상훈의 죽음은 진정한 의미의 새드엔딩으로 보이기도 한다.

총평
영화 <똥파리>는 핏줄에 의해 대물림 되는 폭력에도 불구하고 끊을 수 없는 핏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그 과정에서 거친 핸드헬드 기법으로 잡아낸 수많은 폭력의 장면들과 비교적 잔잔한 핸드헬드로 잡아내는 상훈을 둘러싼 주변인들의 일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장면들이 대비되는 모습은 우리에게 하여금 폭력과 핏줄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도록 만든다. 이 영화가 내린 결론처럼 핏줄로 이어진 가족과 이에 버금가는 인간관계들은 쉽사리 끊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노력하여야 한다. 악을 후세대에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서, 더 사랑스러운 가족과 든든한 인간관계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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