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으로도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551Y79LG5CI)
제2차 세계대전의 피해를 복구하고 빠른 속도로 경제 성장을 이룬 일본은 1964년에 도쿄 올림픽을 개최하며 이를 과시했고, 그로부터 4년 후인 1970년에는 오사카 엑스포까지 개최하며 자국이 비로소 선진국으로 거듭났음을 만천하에 알렸다. 이후로도 계속된 경제 호황은 1980년대에 이르러 절정을 맞이해 일본에는 '도쿄를 팔면 미국을 살 수 있다'는 말까지 나돌기 시작했고, 일본인들은 하루하루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며 앞으로 다가올 21세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렇게 거품은 무너졌다. 아무도 호황을 지탱하던 기둥이 거품에 불과했음을 인지하지 못했다. 불황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10년, 20년... 일본은 소중한 시간 동안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경제는 만신창이가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6.25 전쟁으로 모든 면에서 직격탄을 맞은 한국은 박정희 대통령의 등장으로 60~70년대에 걸쳐 산업화에 성공해 엄청난 속도로 경제를 성장시키기 시작했다. 이후 한국은 범국민적 투쟁 끝에 1987년 6월 항쟁으로 민주화에 성공했고, 다음 해인 1988년에는 서울 올림픽을 개최해 그동안의 성과를 전 세계에 알리며 냉전의 종식에 기여하기까지 했다. 이에 힘입어 한국은 1993년에 대전 엑스포까지 개최하며 '단군 이래 최고 호황기'라고 불리는 황금기를 경험한다. 이러한 황금기 속에서 한국인들은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며 21세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로 경제는 붕괴되고 말았고, 한국인들의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외환위기의 여파는 아직도 회복되지 않았고, 대한민국의 큰 트라우마로 남았다.
과거에 머무르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과거를 추억한다. '그땐 그랬지'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어린 날의 추억, 과거들은 지쳐버린 현재에서 잠시 멀어져 휴식할 수 있게 해 주며, 다시 미래로 나아갈 동력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때때로 과거는 미래로 향하는 발목을 잡아버리고 만다. 현재는 암울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보이지 않을 때, 모든 걸 포기하고 과거에만 기대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가까운 사례를 찾자면 현재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80~90년대생들이 00년대의 추억에 파묻혀 버린 것이 있겠다.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어른제국의 역습>이라는 영화를 리뷰하기 위해 일본의 거품경제 붕괴와 한국의 외환위기에 대해 이야기한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작중에서 어른들은 더럽고 추한 21세기를 버리고 20세기로 회귀하려는 계획을 세우는 '켄'에 의해 어린아이로 되돌아가 인공적으로 재현된 과거의 세계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호황기에 태어나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거품의 붕괴로 모든 것이 무너지고 고난을 겪게 된 21세기의 일본인들이 행복했던 20세기를 그리워하고 있음을 투영한 것이다. 이는 일본과 비슷한 경제 성장을 이루었고, 끝내 경제가 붕괴해 고난을 겪었던 한국의 사례와도 유사하다. 도쿄 올림픽과 오사카 엑스포는 각각 서울 올림픽과 대전 엑스포에, 거품경제의 붕괴는 IMF 외환위기에 대입할 수 있다. 본 작품이 한국에서도 고평가 받는 이유는 이러한 유사성에 있지 않을까 싶다.
이처럼 찬란했던 20세기와 비참한 21세기의 대비는 빌런 켄에 의해 강조된다. 켄은 찬란했던 20세기의 인물로, 20세기를 이어 낭만적인 유토피아가 될 21세기를 기대했지만, 경제가 붕괴되고 많은 사람들이 욕망에 빠져 금전만을 추구하는 21세기를 목도하자 21세기를 다시 20세기로 되돌리고자 한다. 켄의 계획은 전국에 '추억의 냄새'를 퍼뜨려 어른들을 어린아이로 만들고 인공적으로 만든 20세기의 세상에 머무르는 것이다. 즉, 켄은 작중의 핵심 갈등 원인인 20세기와 21세기의 대비를 강조하고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켄의 계획은 성공에 가까워지고, 행복한 나날들이 되돌아올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미래를 향해
하지만 여기서 소외된 사람들이 있다. 바로 21세기를 더 친숙하게 여기는 아이들이다. 일본은 연호를 사용하니 헤이세이(平成) 시대의 아이들이라고도 할 수 있다. 20세기, 즉 쇼와(昭和) 시대를 살아왔던 어른들과 달리 21세기의 아이들은 찬란했던 20세기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지 않다. 추억을 과거에 두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지금부터 추억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시기에 속해있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의 존재로 인해 '찬란한 과거에 비해 비참하기 짝이 없는 현재에서,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가?'라는 영화의 질문이 성립된다.
짱구와 친구들은 엄마와 아빠, 그리고 다른 어른들을 구하고 모든 것을 원래대로 되돌리기 위해 여정을 떠난다. 이러한 짱구의 여정은 곧 불확실한 미래라도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상징한다. 하지만 빌런들은 계속해서 짱구와 떡잎마을 방범대를 방해하고 잡아들이려 한다. 심지어 그 무리에는 엄마와 아빠도 속해있다. 짱구와 친구들이 어른들과 21세기를 구하기 위해 싸우는 것처럼, 어른들도 행복했던 20세기에 머무르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이는 곧 거품경제 붕괴의 이전 세대와 이후 세대의 갈등을 표현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여정 끝에 짱구는 어린아이로 되돌아가버린 아빠를 목격한다. 이때 아빠가 옛날 냄새를 맡고 어린아이로 되돌아가 버렸다는 켄의 말에서 힌트를 얻은 짱구는 아빠의 발 냄새를 그대로 아빠가 맡게 해 아빠를 원래대로 되돌린다. 이때 아빠가 기억을 되찾으면서 일생을 회상하는 일명 '신형만의 회상' 장면은 이 영화를 넘어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에 남을 명장면이기도 하다. 이 회상 시퀀스가 역사에 남을 수 있는 뛰어난 장면인 이유는, 짱구 아빠가 기억을 되찾으면서 흘린 눈물의 의미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이 장면 속 짱구 아빠의 눈물에는 어린 시절의 환상 속에서 깨어나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과, 떠나가버린 과거에 대한 추억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슬픔이 동시에 자리하고 있다.
그렇게 다시 모인 가족들은 이제 21세기를 손에 넣는 여정을 떠나야 하고, 켄은 전국에 추억의 냄새를 뿌리기 전에 짱구 가족에게 기회를 준다. 그렇게 마지막 사투가 시작된다. 이 시퀀스에서 중요한 것은 켄, 미셸과 짱구 가족의 대비이다. 켄과 미셸은 계획을 완료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편하게 타워의 정상까지 올라간다. 하지만 짱구 가족은 처절하게 싸우고, 직접 계단을 걸어서 정상까지 올라간다. 이는 20세기의 이면을 상징한다. 켄과 미셸이 상징하는 것은 20세기가 21세기에 비해 낭만적이고 행복했던 시기였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짱구 가족이 상징하는 것은 낭만적이고 행복했던 20세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어른들에 대한 헌사와 앞날을 알 수 없고 불안한 21세기라도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이 영화는 21세기를 향해 살아가야 한다는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 20세기를 폄하하지 않는다. 오히려 20세기가 낭만적이고 행복했던 황금기였음을 작품 곳곳에서 보여주고 그 황금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어른들을 존중하며, 동시에 21세기를 만들어 나갈 아이들에 대한 희망을 품는다. 이를 통해 작품의 최종적인 주제는 찬란했던 과거를 일구어 온 어른들의 노력에 헌사를 보내고, 불투명한 미래라도 가족이라는 희망을 구심점으로 함께 살아나가야 한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총평
낭만과 기대만이 가득했던 일본의 1980년대와 한국의 1990년대, 미국마저 따라잡을 것 같았던 일본과 그런 일본의 뒤를 맹렬히 추격할 것 같았던 두 나라의 경제는 버블의 붕괴와 외환위기로 인해 파탄을 맞는다. 영화의 주인공은 파탄을 지나 어른이 된 부모와, 그들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이다. 일본에서는 연호를 사용하니 쇼와 세대와 헤이세이 세대로 구분하면 편하다. 이러한 쇼와의 부모들이 행복했던 시대를 그리워하며 아이가 되어버리고, 과거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고 앞으로를 살아갈 헤이세이의 아이들이 부모를 구하는 것이 영화의 줄거리다.
나는 2000년대가 그립다.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잘 살아보려 했던 시대에 태어나 어린 시절을 행복하게 보냈지만 지금은 사회는 냉랭해지고, 서로가 서로를 물고 뜯는 세상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어른제국의 역습>은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미래를 향해 살아가야 한다고. 극 중에서 자신의 발 냄새를 맡고 기억을 찾은 짱구 아빠는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아들의 외침에 응답한다. 아무리 힘든 길이 기다리고 있어도 아직 기댈 수 있는 존재들이 있고, 그들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야 함을 알고 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