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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의 아이

나가레보시 2020. 9. 5.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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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의 아이(2019)

2016년 영화 '너의 이름은'의 개봉으로 평가와 흥행을 모두 잡아 일본 애니메이션의 신흥 거장으로 떠오른 감독 신카이 마코토는 3년 뒤 '날씨의 아이'를 발표했다. 전작처럼 흥행 면에서는 1000만 이상의 관객을 모으면서 성공했지만, 평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신카이 마코토는 지금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

 

저번 리뷰인 '반교-Detention'을 보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나는 한 번에 이해되는 작품을 선호한다.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하고 n회차를 허용한다면 그 작품은 주제 전달에 있어서 실패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날씨의 아이는 이를 충족하지 못했다.

 

나는 날씨의 아이를 정식 개봉 전에 메가박스 시사회에서 봤는데, 신카이 마코토 감독답게 뛰어난 작화와 음악 감독을 맡은 래드윔프스의 음악은 최고였다. 그러나 이게 전부였다. 친구와 극장을 나오면서 나눈 이야기는 '이번엔 도쿄 침수니까 다음은 일본 침수고 그다음은 전 세계 침수겠네'였다.

 

옆에 있던 단체 관람객들은 하나같이 '전작이랑 비슷한데?' 혹은 '왜 갑자기 총을 쏘고 난리지?' 같은 반응뿐이었다. 그럼에도 작화와 음악만은 호평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이 영화의 주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3번을 더 봤다. 2회차 때는 영화의 이해를 위해서였지만, 나머지 두 번은 덕질 때문이긴 했다.

 

n회차 끝에 영화의 주제는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 비판'으로 결론지었지만 역시 이 영화는 스토리 전달에 있어 실패했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전작 '너의 이름은'을 너무 재미있게 보았기에 씁쓸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몇몇 신카이 팬들이 영화가 이해되지 않았다면 소설판을 구매해서 읽어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나도 신카이 소설도 소장하고 영화 이해도 할 겸 구매해서 읽어보았다. 확실히 영화보다 묘사도 세밀하고 결정적으로 개인의 감정이 서술되어 있어서 이해에는 무리가 없었다. 심지어 영화 내에서는 반창고 하나로만 묘사되는 '호다카가 사실 가정폭력의 피해자였다'라는 것을 소설을 읽고 알았다.

 

그러나 나처럼 오타쿠도 아니고 전작의 명성에 이끌려 온 사람들이 신카이의 소설에 관심이나 있을까? 소설을 읽어서 완벽하게 이해하자는 말도 사실상 영화의 스토리 전달이 실패했음을 에둘러 변명할 뿐이다.

 

전작처럼 날씨의 아이에도 래드윔프스가 부른 주제가들이 나온다. 주제가가 등장하는 장면은 역시 신카이 답게 대사가 거의 등장하지 않고 뮤직 비디오처럼 전개되는데, '너의 이름은'에서는 이를 적절히 활용하여 스토리 전개에 정말 큰 도움이 되었지만 이번에는 캐릭터의 심리상태와 영화의 줄거리가 OST의 가사와 거의 흡사하게 묘사된다는 것이 전작과는 조금 다르다.

 

다른 시선으로 보면 신카이가 영화를 더 길게 만들지 못해 장면을 끊어버리고 OST에 의존하는 것처럼 보인다. 신카이 마코토의 OST를 이용한 연출은 눈과 귀를 만족시켜 주지만, 슬슬 변화를 보여줬으면 좋겠다.

 

성적 어필이 쓸데없이 심한 것도 문제다. 물론 전작에도 성적 어필은 존재했다. 타키가 미츠하의 몸이 되었을 때 가슴을 주무른다던지 하는 장면 등이 그 예다. 하지만 그 장면은 타키가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했고, 10대의 성적 호기심을 표현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날씨의 아이는 달랐다. 스가의 프로덕션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간 호다카는 소파에 누워서 자고 있는 나츠미라는 여성의 몸을 훔쳐보고 나츠미는 '너, 내 가슴 봤지?'라며 호다카를 당황시킨다. 전혀 필요 없는 장면과 대사가 스토리 전개에 삽입되고 그것이 정말 불쾌한 성적 어필이라면 더더욱 몰입도가 떨어진다. 이건 정말 시급히 고쳐져야 할 신카이 마코토의 단점이다.

 

신카이 마코토는 영화를 잘 만든다. 아름다운 작화와 몽환적인 판타지 세계를 주제로 한 영화를 흥행까지 시키는 감독은 드물 것이다. 그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뒤를 이을 감독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도 그의 행적을 보면 무리는 아니다.

 

물론 미야자키 하야오를 뛰어넘을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신카이의 능력은 확실히 대단하다. 나는 이번 작품 '날씨의 아이'가 매너리즘이라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작품에서 다시 일어나 달려 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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