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누가 리즈이고, 누가 파랑새인가?'이다. 영화에서는 미조레가 리즈, 파랑새가 노조미인 줄 알았지만 사실 그 반대였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작중 언급으로 리즈와 파랑새 연주곡에서 플루트는 리즈, 오보에는 파랑새라고 말하며 두 사람의 상징을 명확히 하고 있다.
작중 미조레가 파랑새라는 언급은 이 외에도 노조미가 파랑새의 깃털을 미조레에게 선물하는 장면에서 간접적으로 묘사하고 있고, 미조레가 자력으로 만들어낸 인간관계의 중심에 서 있는 리리카라는 소녀는 미조레가 홀로 날개를 펼치고 날아갈 것임을 암시한다. 리리카는 노조미에게 미조레와 친해지는 법을 노조미에게 물어보고 답례로 계란을 선물하는데, 새는 알을 깨고 나오는 동물인 만큼 리리카는 미조레가 파랑새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려주는 캐릭터이자 미조레를 성장으로 유도하는 캐릭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까지 보면 명확하게 미조레와 노조미, 두 소녀의 상징이 고정되어 있다. 그러나 후반부, 두 사람은 '정말 좋아해 허그'를 시전해 서로의 좋은 점을 말해주며 감정을 떨쳐내는데, 이 장면은 두 리즈가 서로의 파랑새를 날려 보내려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작중에서 새가 등장하는 장면은 늘 새가 한 마리만 있었지만, 허그 장면 이후 두 마리의 새가 함께 떨어졌다 만났다 하며 날아가는 장면도 두 소녀가 이별과 만남을 반복하는 파랑새이자 동시에 리즈임을 보여주는 장치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동화 속 리즈와 파랑새 캐릭터를 연기한 성우가 1인 2역을 맡은 것도 두 소녀가 모두 리즈와 파랑새임을 나타내려고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여러모로 야마다 나오코 감독의 연출 능력이 존경스럽다.

영화의 시작 부분, 'disjoint'라는 단어가 하얀 바탕에 쓰여 있다. 'disjoint set'은 공통 원소가 없는 두 집합을 의미하며 작중 수학 선생님이 언급한다. 즉, 초반부의 'disjoint'는 두 사람의 공통점이나 연결고리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영화의 후반, 갈등이 모두 해소된 후 밴다이어그램의 파란색과 분홍색이 집합하고, 'disjoint'에서 취소선이 그어지며 'dis joint'로 바뀌는 연출은 두 사람의 갈등 해소와 동시에 연결고리가 생겨났음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미조레와 노조미의 성격과 상황을 묘사하는 것에서는 감독의 강점인 움직임 연출이 주로 사용되었다. 두 사람이 함께 음악실로 향하는 초반부 장면에서 노조미는 힘차게 걸으며 실내화를 아무렇게나 던지고, 물을 마시고, 난간을 짚는다. 노조미의 머리카락은 하늘하늘 흔들리고 있다.
반면 미조레는 천천히 조심스레 걸으며 실내화를 가지런히 놓고, 물을 따라 마시고, 난간을 따라 짚는다. 미조레의 머리카락이 흔들리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노조미는 당당하고 리드하는 성격임을, 미조레는 조심스러운 성격임을 보여줌과 동시에 두 사람이 동등한 친구 관계가 아닌 미조레가 강박적으로 노조미에게 종속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의 후반부, 자신의 뜻대로 결정을 해낸 미조레는 더 이상 노조미에게 종속되지 않고 노조미와는 다른 루트로 음악실로 향하고, 미조레의 뒷모습이 비추어지며 흔들리는 모습으로 두 사람이 동등한 친구 관계를 회복했으며, 미조레가 스스로 날아올랐음을 표현한다.
작화와 연출은 교토 애니메이션답게 언제나 최상이며, 두 소녀의 보이지 않는 갈등을 소설 원작이 존재하는 TV 애니메이션「울려라! 유포니엄」의 스핀오프 영화이자 원작에 구애받지 않고 제작사의 오리지널 스토리로 풀어낸 교토 애니메이션의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TV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작화 감독과 캐릭터 디자이너가 참여해 기존의 모에 요소가 첨가되어 있던 화풍에서 벗어나 사실적인 캐릭터와 수채화를 보는 듯한 색감은 마치 감독이 말한 '미조레가 보는 세계'란 '대인관계에서 잘 어울리지 못하는 미조레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시각'으로 다가왔다.
또한 감독은 TV 애니메이션 「울려라! 유포니엄」이 계단을 올라가는 작품이라면, 「리즈와 파랑새」는 개인의 밑바닥으로 내려가는 작품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주인공과 모두가 성장하는 TV 애니메이션과 달리 영화는 노조미와 미조레 두 사람의 내면과 감정선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음을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고, 학교를 새장으로 묘사하고 싶었다는 말에서는 영화가 등교에서 하교로 끝나고 학교 안에서만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 두 사람이 성장해 새장 밖으로 날아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배경음악의 분위기도 매우 좋았다. 음악 감독 우시오 켄스케의 심심하지만 일상적인 면을 돋보이는 배경음악은 통통 튀는 느낌을 주어 장면을 환기시켜주었고, 취주악 영화에 맞게 악기가 연주되는 장면의 오케스트라 음악은 정말 전율 그 자체였다.
리즈와 파랑새는 두 소녀가 노력과 재능, 이별과 재회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누구도 한 번쯤은 자신의 노력이 재능에 막혀 본 경험을 해 보았을 것이고, 이별과 재회도 수없이 겪어 보았을 것이다.
두 소녀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인간 관계란 무엇인지 다시 곱씹어보는 시간이 되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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