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관절염, 당뇨... 노인들이 말년에 가장 무서워하는 질병들 중에서도 가장 두려운 것은 치매일 것이다. 서로 관계를 맺고 사랑하는 것으로 자신을 기억할 수 있는 인간에게 주변의 모든 기억이 서서히 사라져 가며 결국 나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기억하지 못하게 되는 치매는 가장 두렵고 고통스러운 질병일지도 모른다.
영화 <더 파더>는 그런 치매가 진행중인 노인 '안소니'와 그의 딸 '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는 정말 난해한 연출들로 가득하다. 치매 환자인 안소니를 중심으로 영화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장면들이 점점 왜곡되고 비틀려가는 안소니의 기억을 연출하기 위해 난해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어디부터가 진실된 안소니의 기억이고 어디까지가 잘못된 기억, 혹은 사라져 버린 안소니의 기억인지 이해하기는 정말 힘들다. 나도 몇몇 장면은 이해하지 못한 채 감상을 마쳤다.
하지만 난 이게 잘못된 감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치매'라는 질병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안소니가 자신의 기억이 진짜 기억인지 혼란스러워 하고 병으로 인한 환각을 볼 때마다 우리도 똑같이 이것이 그의 진짜 기억인지, 이 장면이 환각인지 아닌지 혼란스러워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치매라는 끔찍한 질병을 간접적으로나마 겪게 되는 것이다.
혼란스러웠던 모든 기억들의 경험이 끝나고 요양원에 들어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안소니의 파트까지 가면, 영화는 비로소 가혹하고 슬픈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앤은 파리로 떠나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안소니를 요양원에 보냈고, 안소니는 이를 기억하지 못하고 하루하루 새로운 방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그리고 결국 아이로 되돌아가 간호사 앞에서 어머니를 부르며 울부짖는 그를 보게 될 쯤, 우리는 안타까운 안소니의 모습에서 연민을 느낌과 동시에 공포도 느끼게 된다. '아, 나도 미래에 저렇게 되면 어쩌지...?'
영화 <더 파더>의 진가는 자칫하면 눈물, 감성팔이로 보이기 딱 좋은 치매라는 소재에서 가족 간의 상호작용을 최대한 배제하여 그런 신파요소를 차단하고 치매에 걸린 노인 그 자체만을 파고든다. 물론 안 나오는 건 아니고, 앤의 시점에서 안소니를 바라보는 느낌이 드는 장면도 존재하기는 한다. 어쨌든 영화는 이를 통해 병을 겪는 당사자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난해하지만 결국 납득하게 만드는 연출로 기억 착란과 환각, 망각 등의 증상을 동반하는 치매라는 질병을 관객들에게 체험시켜 그 고통과 슬픔에 몰입하게 만든다. 거기에 안소니 홉킨스 경의 뛰어난 연기까지 빛을 발하니, 더 좋은 영화가 만들어지고야 만 것이다.
치매의 어원 중에서는 '도깨비의 장난'이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인간은 수많은 병을 박멸하고 예방해 온 강인한 존재임과 동시에, 결국 도깨비 같은 초월적 존재의 장난으로 비유되는 질병 하나조차 막아내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영화 속에서 처음엔 자신은 끄떡없다며 자신하던 안소니가 갈수록 왜곡되고 비틀리는 기억에 혼란과 두려움을 느끼다 결국 어머니를 찾으며 나약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인간의 진짜 모습을 적나라하게 비추어 낸 것도 영화의 장점이 아니었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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