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 때 영화 연출을 꿈꾸었을 때, 만들어보고 싶었던 영화 중 하나가 음악의 리듬에 맞추어 극이 진행되는 영화였다. 꿈을 접은 후로도 그런 영화를 보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는데, 그런 나의 앞에 <베이비 드라이버>가 나타났다.
<베이비 드라이버>의 스토리는 그리 좋은 편이라고 할 수는 없다. 개연성이 부족한 부분도 있고, 재미를 위해 무리수를 두는 부분도 존재한다. 그러나 그런 약점들을 감안하고도 이 영화는 정말 좋은 작품이다.
에드가 라이트 감독은 스토리를 내려놓은 대신 연출에 힘을 전부 쏟았다. 음악이 흘러나오며 시작되는 전투씬이나 카체이싱은 전부 음악의 리듬에 맞추어 짜였다. 음악의 리듬에 맞추어 총이 발사되고, 카체이싱이나 추격 장면에서도 리듬에 맞추어 자동차가 부딪치고 인물이 몸을 움직인다.
이 장면이 대표적 예시인데, 총이 너무 노골적으로 음악에 맞추어 발사돼서 에드가 라이트 감독이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뻔뻔하게 영화 속에 반영해버린 것 같아 웃음이 나기도 했다.
이런 게 취향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면 물론 싫어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펑펑 터지고 사람이 죽는 진지한 장면 속에서도 신나서 흥분을 주체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그랬다. 분명 진지한 장면인데도 나는 총이 발사되는 리듬에 맞추어 춤을 추며 영화를 보고 있었다.
영화를 한 줄로 요약한다면 '쩍쩍 달라붙는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이다. 모든 장면이 음악의 리듬에 맞추어 진행되고, 이러한 음악에 맞춰서 시원하게 뚫어주는 통쾌한 시퀀스들은 이 작품만의 장점이다.
음악들을 장면 곳곳에 삽입하고 주요 소재로 사용하기 위해서 주인공이 어릴 적 자동차 사고를 당해 이명이 발생하고, 이를 완화하기 위해 아이팟으로 하루 종일 음악을 듣고 있다는 설정을 넣은 것도 정말 웃겼는데, 음악 덕후인 에드가 라이트 감독이 어떻게든 일반인 코스프레를 해보려는 게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나쁘다는 건 아니다.
많은 영화들이 비주얼을 위해서 스토리를 희생하면 높은 확률로 평론가나 관객들로부터 '눈은 즐거웠지만 재미있지는 않았다'의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베이비 드라이버>는 그렇지 않았다. 어느 정도 평타 치는 각본, 신나는 음악과 이를 받쳐주는 리듬감이 느껴지는 편집이 더해져 이 작품은 징크스를 깨고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런 영화 정도는 되어야 스토리를 희생하고 비주얼 같은 승부수에 전부 할당해도 까이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베이비 드라이버>는 감독이나 제작자들이 영화에서 무언가를 포기하면서까지 '하고 싶은 것'을 보여주고 싶을 때 한 번쯤 참고해도 좋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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