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영화

소울

나가레보시 2021. 2. 8. 19:47
728x90

소울(2020)

사람들은 대부분 '무엇을 할 건가요?'라고 묻고, '이것을 할 겁니다.'라고 답하며 살아간다. 우리의 삶은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정말 많다.

하지만 픽사는 이 영화를 통해서 '우리의 삶은 목적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어째서일까? 우리는 하고 싶은 것, 행복해지고 싶은 것이라는 목적의식을 통해서 더욱 높은 곳으로 도달하고 있는데 말이다.

영화 속에서 목적을 설정하고 있는 사람들은 마치 기계가 된 듯이 전철을 타고 일하러 가고, 다시 돌아온다. 그들에게 미소는 없다. 주인공도 유명 재즈 연주자와의 합주라는 목적을 달성하게 되어 기뻐하지만 그것도 잠시, 매일 공연을 하게 되자 전철을 타고 반복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들과 자신을 겹쳐보며 회의감을 느낀다.

나는 제대로 살아왔던 걸까? 목적이라고 생각했던 재즈 연주를 달성하고 보니 남은 것은 목적 없는 연주의 반복이었고, 이를 위해 달려왔던 오랜 시간들은 전부 쓸모없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주인공은 무아지경의 공간에서 깨닫는다. '아니, 내가 살아온 시간들은 살아왔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어.'

여기서 비로소 목적을 달성하며 살아가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 방법일 뿐이지, 삶 그 자체가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삶이라는 것은 그저 걷고, 숨을 쉬고, 무언가를 한다는 일상 그 자체였고, 그저 살아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인간은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22를 조명하며 '난 무엇을 해야 하지?', '난 아무런 적성도 없는 사람이야.'라며 자책하기보다는 태어난 것에 감사하며 수많은 사소함으로 이루어진 일상이라는 삶을 즐기며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픽사는 남긴다.

길거리에서 먹다 남은 도넛, 빙글빙글 떨어지는 씨앗, 맛있게 먹었던 달콤한 사탕은 전부 사소하기 짝이 없는 일상의 한 부분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일상들을 쓸모없다고 생각하며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소모한다.

하지만 그렇게 살다 보면 사람들은 자신들의 소중한 삶을 그저 세상의 부품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닐까?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삶을 쓰더라도, 가끔은 사소하기 짝이 없다며 무시하던 그런 일상들을 떠올리며 자신이 태어난 것을 스스로 축복하는 삶도 나빠 보이지는 않는다.

그리고 '소울'은 신나는 재즈 음악과 함께 말한다. '그런 삶을 살아볼 준비가 되었나요?'

영화를 보며 마음속에서 큰 울림이 있었다. '난 수천 년간 이곳에 있었지만, 불꽃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22의 말에서는 '나도 아직 하고 싶은 것을 발견하지 못했는데...'라는 자책을 느꼈고, 주인공 '조'가 피아노를 연주하며 무아지경에 빠져들어 삶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는 장면에서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영화를 보면서 떠올렸던 확신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은 그 장면에서 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 '무엇을 해야 하지?'라는 고민과 '이젠 이걸 계속 반복하며 살아야 하는구나..'라는 허탈함을 생각하기보다는 지나왔던 시간을, 지나가고 있는 시간을, 지나갈 시간들 전부 소중한 의미 있는 시간들임을 생각해야 했다는 것을 왜 이제야 알았을까?

728x90

'영화 >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  (2) 2021.03.01
승리호  (0) 2021.02.08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  (0) 2021.02.06
메멘토  (0) 2021.02.02
가구야 공주 이야기  (3) 2021.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