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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호

나가레보시 2021. 2. 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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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호(2021)

넷플릭스에 조성희 감독의 신작 '승리호'가 공개됐다. 원래 작년 여름에 개봉하려다 미뤄지고 추석에 극장에서 공개한다고 광고한 걸 봤는데, 코로나 때문에 넷플릭스에 배급권을 팔아 그쪽에서 공개하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공개 후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글로벌 1위를 달성했다.

 

물론 내가 관심을 가진 쪽은 한국의 영화가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어 글로벌 1위를 달성한 것이 아니라, 스페이스 오페라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우주선을 몰며 광선총을 쏘는 승리호라는 SF 영화가 튀어나왔다는 것이었다.

 

시청 후 내가 내린 결론은 이 영화는 VFX(CG라고 생각하면 된다)를 제외한 거의 모든 것에서 실패했다는 것이었다. VFX를 담당한 덱스터 스튜디오의 포트폴리오가 '신과 함께'에서 더 늘었다. 킬링타임 정도라도 되는 것이 다행일 정도다.

 

이렇게 말하면 전부 망해버렸다고 생각하겠지만, 스토리의 구조는 흔히 아는 SF 영화의 왕도를 그대로 따르고 있어서 봐줄 만한 편이다. 한국 영화의 고질병인 오글거리는 대사는 정말 싫었지만 캐릭터 조형도 배우 김태리가 연기한 '장 선장'을 제외하고는 그럭저럭 잘 된 편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러한 왕도적 스토리 구조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다. 환경 보호, 잘못된 체제에 대한 반역, 휴머니즘 등등 영화가 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알겠는데 이를 전달하기 위해서 일으키는 사건들을 그냥 스토리 구조 속에 때려 박아놓은 수준이니 재미는커녕 이해조차 되는 것이 대단할 지경이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해야 할 빌런은 더 허접해서, 신념은 이해조차 가지 않는 데다 둘러싸인 비밀들은 정말 중요할 것처럼 보여주고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게 뭔지에 대해서는 설명해주지 않는다. 가만 보면 '하고 싶은 말을 그냥 나열해 둔 보기 좋은 영상' 정도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 수준이기도 하다.

 

영화 내에서 등장하는 개그도 웃기기는커녕 화가 날 수준이었는데, 투자자들이 개그는 반드시 넣으라고 닦달이라도 했는지 감독도 나이 드신 높으신 분들을 위한 화장실 개그를 어쩔 수 없이 넣은 것 같았다. 방귀 타령은 진짜... 그 외에도 이제는 눈물샘을 자극조차 하지 못하는 저급 신파까지 등장한다. 한국 영화는 고령의 투자자들이 사라지면 단숨에 발전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위에서도 짧게 말했듯이 영상의 퀄리티는 꽤 볼 만하다. 240억 원을 제작비로 사용했다고 하는데 이 정도 퀄리티의 VFX라면 잘 만든 것이 맞다. 이런 쪽으로만 보면 한국 영화의 기술적 진보는 앞으로도 기대가 된다. (그럼에도 한국 영화의 고질병인 음향 문제는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넷플릭스의 자막 기능 활성화를 추천한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퀄리티를 만들어 두고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설명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신기할 지경. 차라리 어쭙잖은 메시지는 생략하고 승리호 멤버들의 신나는 우주 활극 정도로만 만들었다면 그게 더 좋은 평가를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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