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는 크리스토퍼 놀런의 영화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난해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로 손꼽히고 있는 작품이다. 물론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영화광들의 '난 이런 어려운 영화도 이해하는 사람이야'라는 허세가 반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왜 메멘토는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았을까? 이는 문제는 메멘토의 뜻을 알게 된다면 간단히 풀린다. 메멘토(Memento)는 라틴어로, 영어로 해석하면 'Remenber(기억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영화의 제목처럼 만들어보면 '기억하라'가 어울릴 것이다.
단기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는 주인공은 자신이 했던 일련의 행동이나 말들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잃게 된다. 이는 살해당한 아내의 외침을 듣고 구하러 가다 범인에게 맞아 생긴 것으로, 주인공은 복수를 위해 메모를 하고, 사진을 찍고, 몸에 문신을 하며 잃어버린 기억을 다시 떠올린다.
영화는 사건의 순서를 거꾸로 배치했다. 1, 2, 3, 4 순서로 진행되어야 할 줄거리가 4, 3, 2, 1의 순서로 진행되는 것이다. 관객은 다음 줄거리를 이해하기 위해 지난 줄거리를 기억하고 있어야 하며, 이는 끊임없이 기억하여 아내의 복수를 해야 하는 주인공의 감정과 상황에 이입하고 집중할 수 있게 만든다.
사실 이대로만 보면 기억력이 좋은 사람은 영화를 이해하는 것에 별로 무리가 없다. 그래서 놀런 감독은 중간중간에 짧은 흑백 장면들을 끼워 넣었다. 본편이 시작되기 전의 과거를 흑백으로 처리하여 조각낸 뒤 다음 순서가 진행되기 전에 하나씩 끼워 넣은 것인데, 이를 A, B, C, D라고 한다면 영화는 4, A, 3, B, 2, C, 1, D로 진행된다.
그래서 이 영화가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다. 기억력이 엄청 좋아야 한다. 과거는 시간 순서대로, 현재는 역순으로 흘러가는 기괴한 진행 방식을 갖고 있어서 나도 영화를 이해, 아니 기억하기 위해서 주인공처럼 노트를 손에 들고 영화를 멈췄다 틀었다를 반복하며 메모했다.
사실 이 영화는 시간 순서대로 흘러갔다면 그다지 재미있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 순서를 의도적으로 비틀었기 때문에 곳곳에서 등장하는 관객들의 추리를 빗나가게 만드는 장면들이 의미 있던 것이다.
쉽게 말해서, 시간 순서대로 흘러갔으면 '나의 비밀은 ~다'라고 재미없게 말했겠지만 역순으로 흘러가는 순서 덕에 '저 사람의 정체는 ~일 거야'라고 생각해도 다음 순서에서는 예상치 못한 정체로 등장하여 관객을 깜짝 놀라게 만든다는 것이다.
때로는 줄거리나 화려한 특수효과보다도 구조를 뒤흔들어 매력적인 작품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메멘토가 이런 작품들의 예시이자 대표적인 것으로, 요즘 만들어지는 놀런의 폭탄이 펑펑 터지고 화려한 특수효과를 보여주는 블록버스터 작품들보다 더 재미있고 가치 높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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