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래된 고전 타케토리모노가타리(竹取物語)를 영상화 한 영화 카구야 공주 이야기는 불행한 공주의 이야기, 옛날 옛적 헤이안 시대의 모습, 마치 일본의 전통화를 보는 듯한 아름다운 화풍이 어우러져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대나무 안에서 태어난 카구야 공주는 어린 시절을 행복하게 보내지만, 그녀가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알아챈 아버지에 의해 수도로 이사하게 되고, 그때부터 그녀의 불행은 시작된다.
아름다운 규중의 아가씨로 살아가며 지체 높은 남성과 결혼하는 것이 카구야 공주의 행복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아버지는, 그녀에게 아가씨다운 행동을 가르치며 자유를 억압한다.
지체 높은 황족과 귀족, 이어서 황제의 구혼까지 뿌리친 그녀는 결국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자신이 달에서 지구로 내려온 자였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카구야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고, 그녀의 진심을 끝에야 알게 되며 후회하는 아버지와 카구야를 사랑해주었던 어머니는 슬퍼하지만 카구야는 기억을 잃고 달로 돌아가게 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자신에게 구혼하러 온 어리석은 높으신 분들에 대한 스트레스와 그중에 한 명은 죽어 죄책감까지 느끼던 카구야는 세상에 대한 환멸을 느끼며 살아간다.
이런 더러운 세상에서 불행한 삶만을 살아가던 카구야는 무의식 중에 자신의 출신을 떠올려내고 아무런 고통도 없고 깨끗한 하늘의 세계로 돌아가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카구야는 그런 더러운 땅에서도 어린 시절의 행복과 불행한 나날만을 느꼈던 수도에서의 생활도 잘 되짚어보면 좋았던 나날도 분명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제야 달로 돌아가기 싫다며 눈물을 흘린다.
삶(지구에서의 생활)을 부정하며 죽음(달로의 귀환)만을 원하던 카구야도 실은 계속 삶을 지속하고 싶었다는 쓸쓸한 해석이 될 수도 있겠다.
이는 비단 카구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느끼며 살아가고 세상에 대한 환멸을 느끼고 있고, 그중에서는 아예 아무도 없는 곳으로 사라져 버리고 싶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면 인간 또한 카구야 공주처럼 세상은 더럽고 추하지만, 그만큼 얻어가는 것(소소한 행복 등)이 있기에 살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세상은 더럽다는 걸 깨닫고 깨끗한 곳으로 돌아가려 할 때 비로소 더러운 곳도 아름답다는 것을 깨달은 카구야 공주의 이야기가 그녀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