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바야흐로 포스트 미야자키 하야오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애니메이션의 신으로 일컬어지는 명감독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를 마지막으로 작품 활동을 중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금, 그의 명성을 이을 감독들의 이름이 수도 없이 거론되는 이 시대가 바로 포스트 미야자키 하야오 시대다. 이러한 포스트 미야자키 하야오 시대에서 누군가는 신카이 마코토의 이름을, 또 다른 누군가는 호소다 마모루의 이름을 거론한다. 그러나 내 생각에 포스트 미야자키 하야오 시대에서 좋은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감독은 단연 야마다 나오코 감독과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의 신작 영화 <견왕: 이누오>를 야마다 나오코 감독의 TV 애니메이션 <헤이케모노가타리>와 엮어 리뷰하고자 한다.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의 영화 <견왕: 이누오>는(이하 <견왕>) 헤이안 시대의 말엽에 일본을 통치했던 가문 '헤이케(平家)'의 못다한 이야기를 주인공이자 무로마치 시대의 예술가이기도 한 이누오와 토모아리가 혁신적인 음악을 통해 노래하여 잇고 전하고자 하는 작품이다. 여기서 나는 주인공들의 목적에 집중했다. 헤이케의 못다한 이야기를 노래해 잇고 전한다는 이누오와 토모아리의 목적에는, 야마다 나오코 감독의 TV 애니메이션 <헤이케모노가타리>와 유사한 지점이 있다. <헤이케모노가타리>를 재미있게 감상했고, 야마다 나오코 감독을 드디어 거장의 위치에 올려놓은 작품이라고까지 생각하는 나에게는 더 나아가 두 작품이 일종의 연작처럼 보이기도 했다. <견왕>과 <헤이케모노가타리>의 제작사는 모두 사이언스 사루로 같으니, 노려서 만들어진 작품일지도 모른다.
이처럼 <견왕>과 <헤이케모노가타리>는 무척이나 닮은 것처럼 보이는 작품들이지만, 그럼에도 이야기를 표현하는 방법과 작품의 핵심적인 주제는 끝내 달라지는 작품들이기도 하다. 야마다 나오코 감독은 <헤이케모노가타리>에서 헤이케와 동행하는 주인공 '비와'의 연주와 노래를 통해 관계와 감정이 자아내는 감동을 그려냈고, 더 나아가 헤이케모노가타리라는 서사시가 시작되는 과정과 지점까지 그려내었다. 이는 주인공이 비파법사라는 점에서 감동을 준다. 헤이케의 번영과 몰락을 그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비파법사가 연주와 노래로서 온 세상에 전하고자 결심하는 과정은, 헤이케모노가타리라는 서사시가 비파법사들로부터 구전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존중함과 동시에, 관계 및 감정과 엮어내어 대서사시 속 인물들 하나하나가 영원히 기억될 수 있도록 만드는 과정인 것이다.
그러나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은 <견왕>을 통해 예술가들이 보유하고 있는 예술혼의 위대함을 강조하고 있다. 주인공 이누오와 토모아리는 일본의 전통 음악인 '노가쿠'를 연주하며 춤을 추는 음악가, 즉 예술가들이다. 이들은 헤이케의 혼령들이 남긴 이야기를 대신 노래하기로 결심하면서, 지금까지 보고 들어 본 적 없었던 혁신적인 음악을 선보이고 자신들의 예술혼을 폭발시킨다. 그러나 그들의 여정은 결국 끝이 나고 만다. 권력 강화를 위해 쇼군은 헤이케모노가타리의 정본을 만들어 그것만을 연주하기를 명했고, 결국 극단 토모아리는 해체된다. 이 과정에서 이누오와 토모아리의 행방은 갈린다. 이누오는 쇼군에게 머리를 숙이지만, 토모아리는 끝까지 저항한 끝에 목을 잘리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개 숙여 살아간 자의 예술혼과 끝까지 저항한 자의 예술혼 모두 결국에는 위대해진다.
이누오는 자신과 토모아리가 이룩한 예술의 신지평을 무너뜨리려는 쇼군에게 분노한다. 하지만 숙이지 않는다면 주변의 모두가 위험에 처할 수 있었기 때문에, 결국 고개를 숙이는 대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지금까지의 여정을 모두 물거품처럼 날려 보내 전설로 남는다. 그러나 토모아리는 이누오와 달리 쇼군의 검열에 끝까지 저항한다. 자신과 이누오를 있게 해 준 예술을 끝까지 지켜내기 위해, 그는 결국 모두가 보는 앞에서 목이 잘리면서까지 전설로 남는다. 이누오와 토모아리, 두 사람이 전설로 남는 방식은 각자 달랐다. 하지만 끝내 전설로 남았다는 점에서,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이누오는 예술로서 함께 했던 나날을 잊지 않은 채 토모아리를 찾아내었고, 다시 함께 음악을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끝내 우리는 그들이 갖고 있는 예술혼의 위대함을 체감할 수 있게 된다.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은 그러한 예술혼을 헤이케모노가타리와 결부시킨 다음 특유의 표현주의를 활용하여 연출해낸다. 다른 감독들이었다면 이를 대사로 처리해버렸을지도 모르지만, 유아사 마사아키는 그런 감독이 아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이누오와 토모아리가 선보이는 혁신적인 '노가쿠' 장면들이다. 이는 대체적으로 영국의 유명 록 밴드인 '퀸'을 오마주한 음악과 라이브 장면으로 표현되는데(진짜 록이 나온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은 표현주의적 연출을 활용하기 때문에, 다양한 무대적 장치와 효과를 통한 표현 및 훌륭한 작화로서 그 음악과 라이브 장면을 연출해냈다. 그렇게 만들어진 화면은 정말 화려하고 정교하여 제작에 어려움을 겪었을 것 같지만, 뛰어난 연출가이자 애니메이터인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은 그 어려움을 딛고 해낼 수 있었다.
이제 결론을 지어보도록 하겠다.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의 영화 <견왕: 이누오>와 야마다 나오코 감독의 TV 애니메이션 <헤이케모노가타리>는 비슷한만큼 다른 작품이지만, 두 작품들 중 한 작품을 따로 떼어 생각하기에는 어려운 작품들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헤이케의 이야기를 노래해 잇고 전한다는 점에서는 역시 야마다 나오코 감독의 <헤이케모노가타리>가 각본적, 연출적으로 더 대단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의 <견왕: 이누오>는 애초에 헤이케 이야기와 크게 연관되어 있는 것 같지 않다. 이는 예술혼을 노래하기 위해 헤이케 이야기를 활용했을 뿐이기 때문이고, 활용은 성공하여 나로 하여금 예술의 의미를 곱씹게 했다. 이 차이에서 야마다와 유아사, 두 감독은 각각 서정주의와 표현주의로 갈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 방법론은 끝내 아름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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