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시청 가능 https://youtu.be/L_pQkneabAU)
<슬램덩크>라는 작품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나는 <슬램덩크>가 연재되던 시기에 살았던 사람은 아니지만, 어릴 적부터 <슬램덩크>의 명성을 들어왔고, 학창 시절에는 학교 도서관에 비치된 <슬램덩크>를 읽으며 자랐다. 하지만 <슬램덩크>는 결국 과거의 작품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명작의 제목은 서서히 나의 기억 속에서 잊혀갔고, 끝내 추억 속에만 남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 그 과거의 명작 <슬램덩크>가 영화로서 현재에 되살아나려 하고 있다. 이에 나는 생각했다. '아무리 <슬램덩크>가 명작이라고는 하지만, 결국에는 과거의 작품이다. 과연 현재에서는 어떨까?' 이 생각은 형편없는 것이었다. 이노우에 타케히코 감독의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모든 면에서 과거를 자극하는 작품이다. 그러나 동시에 놀랍도록 새로운, 명백한 현재의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는 세 가지 장점과 한 가지 단점이 존재한다. 우선 단점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이 영화의 단점은 자주 등장하는 회상 장면으로의 전환, 즉 플래시백의 연출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께서 동의하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흥미진진한 경기 장면이 갑작스레 뚝 끊기자마자 시작되어 버리는 회상 장면은 관객의 몰입을 크게 해치고 만다. 이처럼 불친절한 플래시백 연출이 컷 분배가 중요하게 작용함과 동시에 정적인 만화에서 활용되었다면 어느 정도 괜찮게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원작의 플래시백도 영화와 비슷하게 연출된다. 그러나 화면 전환이 중요하게 작용함과 동시에 동적인 영화에서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았다. 이는 만화가 출신인 이노우에 타케히코 감독의 아쉬운 실책이었다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단점은 지금부터 이야기할 장점들에 비하면 세 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다. 이노우에 타케히코 감독은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통해 원작에서 그려내지 못했던 것을 끝내 그려내었음과 동시에, 3D CG 애니메이션과 스포츠 영화의 역사를 동시에 새로 써버린다는 대파란을 일으키는 데에 성공하였기 때문이다. 우선 이노우에 타케히코 감독이 끝내 그려낸 것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자. 이 영화의 주인공은 송태섭이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원작에서 그려지지 않았던 송태섭의 서사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전개는 뜬금없는 것이 아니다. 원작 <슬램덩크>의 산왕전 파트를 읽다 보면 이노우에 타케히코 화백이 송태섭의 서사를 그려내려다가 중단했다는 것이 잘 보이기 때문에, 나는 이 영화를 통해 비로소 모든 주인공들의 서사가 완성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앞에서도 이야기하였듯이 메인 주인공으로 격상된 송태섭의 서사를 그려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옹된 플래시백 연출들이 결국 어색해지고 말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에 반해 회상 장면에서 경기 장면으로 되돌아오는 연출은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내게는 산왕전 전날 밤 태섭과 한나가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경기 장면으로 되돌아오는 연출이 인상에 남았다. 왜냐하면, 이 연출은 '태섭과 한나 두 사람이 이야기를 했다'라는 사실만이 짤막하게 나타나는 원작의 장면을 효과적으로 보충함과 동시에 주변에서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를 경기 장면에도 삽입하여 한나와의 대화를 통해 태섭이 정신적으로 안정될 수 있었다고 연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출들 덕분에 나는 영화를 감상하면서 앞으로 이어질 경기 진행에 대해 더욱 몰입하며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3D CG 애니메이션과 스포츠 장르의 앙상블로서도 무척이나 뛰어난 영화이다. 이노우에 타케히코 감독은 농구라는 스포츠를 언제나 리얼로서 화면에 담아내기를 바라는 감독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본에서 만들어지는 전통적인 셀 애니메이션으로는 그 리얼을 화면 속에 담아낼 수 없다. 왜냐하면, 일본의 셀 애니메이션은 예산의 문제로 인해 움직임에 트릭을 부리는 쪽으로 발전하였기에, 결국에는 현실적이지 못한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이노우에 타케히코 감독은 그 대안으로 3D CG 애니메이션을 택했다. 물론 이는 신의 한 수라고 느껴졌을 정도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3D CG 덕분에 예산으로 인한 움직임의 제한 없이 농구의 리얼은 생생하게 그려질 수 있었고, 동시에 농구라는 가슴 뛰는 스포츠로서의 정열 역시 더욱 뜨겁게 느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원작 만화를 읽어보았던 사람이라면 이 영화에 크게 아쉬움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앞서 이야기한 리얼의 묘사 때문에 결국 원작 만화 속 산왕전에서 등장하는 여러 명장면들과 명대사들이 어느 정도 생략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감독의 이러한 생략을 옹호하고 싶다. 왜냐하면,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더 이상 만화가 아닌, 영화이기 때문이다. 만화는 움직이지 않지만, 영화는 움직인다. 이노우에 타케히코 화백은 <슬램덩크>의 완결 이후 연재한 만화 <리얼>을 통해 이전에 만들어진 <슬램덩크> 애니메이션의 비현실성을 간접적으로 비판한 적이 있다. 그만큼 자신이 감독한 영화인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서는 농구라는 스포츠의 리얼을 더욱 철저하게 구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 리얼에서 등장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경기의 흐름을 좌우하는 스피드, 그것 하나뿐이다.
이노우에 타케히코 감독은 그러한 스피드의 구현을 위해 어찌보면 비현실적이고 경기의 흐름을 방해하는 요소들이라고 느껴질 수 있는 원작 속의 명장면들과 명대사들을 과감하게 삭제하였다. 그 결과, 만화 <슬램덩크>는 리얼한 스포츠 영화로 다시 탄생하였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제목은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된 것이다. '퍼스트(first)'가 무슨 뜻인가, '첫 번째'라는 뜻이다. 이는 곧 새롭다는 뜻이기도 하다.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철저하게 새로운 영화이다. 주인공 송태섭의 서사로도, 3D CG 애니메이션으로도, 스피드를 끊임없이 강조하는 속도감 있는 스포츠 영화로도 새롭다. 여러분들이 이 영화를 관람하게 되는 이유는 대부분 <슬램덩크>라는 과거의 만화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극장이 암전되고 영화가 시작되는 순간, 여러분은 새로움만을 느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