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초반에 학창 시절을 보내셨던 분들이라면 <DEEMO>라는 리듬 게임이 주변에서 유행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DEEMO>의 유행을 경험했을 때는 아마 초등학생이었을 텐데, 피아노 선율을 기반으로 한 아름다운 곡들을 건반 모양의 노트를 터치하며 연주할 수 있다는 콘셉트가 인상에 남아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는 게임이다. 그러던 중 작년인 2021년, 나는 그런 <DEEMO>가 애니메이션화 되어 극장에 개봉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의문을 갖게 되었다. '<DEEMO>가 영화화될 정도의 스토리를 갖고 있던가?' 사실 나는 <DEEMO>를 즐기기는 했지만 스토리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아서, '디모가 피아노를 연주해 나무를 자라게 하고, 이를 통해 소녀를 지하에서 탈출시킨다. 그리고 두 인물 간의 관계는 사실 남매였다.'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도 <DEEMO>는 한때 즐겁게 플레이했던 추억의 게임이었기 때문에, 나는 추억에 잠기면서 극장판을 기대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난 후, 올해 12월에 드디어 <DEEMO>는 <디모: 벚꽃의 소리>라는 제목으로 극장에 개봉하였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영화 <디모: 벚꽃의 소리>는 장점이 있는 만큼 단점 역시 명확하게 존재하는 작품이다. 우선 장점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디모: 벚꽃의 소리>는 훌륭한 음악을 전면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는 당연한 것이, 원작인 게임 <DEEMO>부터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로 이루어진 곡들이 주목을 받으며 인기를 끌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원작 게임에 등장하지 않는, 극장판에서만 사용된 오리지널 음악들 역시 훌륭했다. 특히 주요 장면들이 그려진 일러스트들과 함께 올라오는 엔딩 크레딧에서 흘러나오는 <Nocturne>이 꽤 좋았다.
약간의 오리지널리티를 추가한 각색 역시 좋았다. '디모가 피아노를 연주해 나무를 자라게 하고, 이를 통해 소녀를 지하에서 탈출시킨다. 그리고 두 인물 간의 관계는 사실 교통사고를 당해 사경을 헤매고 있는 남매였다.'라는 스토리를 골자로 다양한 조연들과 미래의 이야기를 추가하여 기억을 되찾아가는 현재의 앨리스와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지하의 앨리스의 서사를 교차시키는 각색인데, 꽤 마음에 들었다. 이러한 각색의 장점은 앨리스가 지하를 탈출하는 장면인 최후반부에서 극대화된다. 디모의 정체가 교통사고로 이미 세상을 떠난 오빠라는 사실을 알게 된 앨리스가 오빠를 만나기 위해 현재로 향하는 계단에서 내려가려 하지만, 결국 계단은 하나둘씩 사라져 가고 끝내 그녀를 현재로 밀어 올리는 장면은 후술할 작품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 작품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한다. 바로 가면을 쓴 소녀의 심리를 제대로 묘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면을 쓴 소녀는 앨리스 일행의 여정을 사사건건 방해하고, 실제로 디모를 폭주시켜 나무를 부러뜨리기도 하지만 앨리스의 노력으로 점차 마음을 열어가며 끝내 그녀의 탈출을 돕게 된다. 그런 소녀의 정체는 바로 오빠와 끝까지 함께하고자 했던 앨리스의 또 다른 자아였다. 하지만 <디모: 벚꽃의 소리>에서는 그런 소녀의 정체와 관련된 심리 묘사가 부족하다. 앨리스와 소녀가 친해지는 과정에서의 심리는 묘사되어있지만, 디모와 소녀와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심리는 그다지 묘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원작의 스토리를 잘 모른다면 소녀가 가면을 벗고 정체를 밝히는 장면에서 꽤 당황하게 것이다. 실제로 나도 원작 스토리를 다시 떠올려내기 전까지 그다지 집중하지 못했다.
이처럼 <디모: 벚꽃의 소리>는 어째서 가면을 쓴 소녀가 앨리스 일행의 탈출을 방해하고 있는지, 그럼에도 어째서 감화되어 엘리스 일행의 탈출을 돕게 되었는지에 대한 심리 묘사가 충분하지 않아 끝내 작품의 메인 스토리마저 불안정하게 만들었다는 큰 단점을 갖고 있다. 시간을 더 들여 심리 묘사를 보충할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점에서 이러한 단점은 더욱 아쉽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영화 <디모: 벚꽃의 소리>를 아예 잘못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현재와 심리 공간의 교차점에서 죽은 자가 살아남은 자를 향해 때때로 자신을 떠올리며 행복하게 살아가달라는 바람을 연주하고, 살아남은 자는 이 바람의 연주에 답하듯 남은 생을 행복하게 살아가겠노라 결심하게 된다는 작품의 주제는 꽤나 감동적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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