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나가레보시 2022. 10. 20.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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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

(영상 시청 가능 https://youtu.be/09Px6oKmwzA)
가족, B급 코미디, 액션, 아방가르드... 이 장르들을 모두 섞었음에도 명작이 된 영화가 있다고 하면 믿으시겠는가? 가족 장르와 B급 코미디 장르를 섞어 명작이 된 영화까지는 자신 있게 그 제목을 이야기할 수 있다.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의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같은 작품이 있었으니까. 액션 장르와 아방가르드 장르를 섞어 명작이 된 영화 역시 자신 있게 그 제목을 이야기할 수 있다. 후루카와 토모히로 감독의 영화 <극장판 소녀☆가극 레뷰 스타라이트> 같은 작품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 모든 장르를 섞은 명작이라고 한다면? 개인적인 의견을 이야기해보겠다. 아마 실사 영화 중에 이런 작품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애니메이션 영화 중에는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시리즈가 이에 가장 근접하겠지만, 그럼에도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2022년, 그런 명작 실사 영화가 탄생했다.

다니엘스의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1부의 구성만 보면 난잡한 이야기와 괴상한 설정이 어우러진 B급 코미디가 꽤 웃기고, 홍콩 영화를 오마주한 액션이 조금씩 눈길을 사로잡는 B급 컬트 영화로 기억될 작품일 것이다. 그러나 작품의 내막이 밝혀지는 2부와 3부에 감탄하다 보면, 난잡하고 괴상하다고 생각했던 1부에도 감탄의 박수를 보내게 된다. 여기서 잠시 명작 영화들의 특징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수많은 명작들이 있는 만큼 수많은 특징들이 있겠지만, 일단 두 가지 정도의 예시를 들어보도록 하겠다.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으며 끌고 가는 명작이 있는 반면, 조금씩 이야기를 쌓아가며 시작해 끝에 가서는 쌓아왔던 모든 것을 터뜨리면서도 이전의 것을 잃어버리지 않는 명작이 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후자에 해당하는 명작이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솔직히 영화의 1부인 '모든 것' 파트에서는 작품적인 흥분을 느끼지 못했다. 분명 재미는 있었다. 액션도 수준급이었고, 중간중간 등장하는 B급 코미디는 취향은 아니었지만 분명 웃겼다. 그러나 급작스럽게 등장하는 다중우주 설정과 그 우주를 지키기 위해 나서야 하는 주인공의 운명이 빠르게 소개되고 지나가버리니, 엄청난 악당이 등장해도 결국 이야기를 납득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결국 1부의 마지막이 조부에게 당해 쓰러지는 것이기 때문에, 영화에 대한 나의 불신은 깊어만 갔다. 그런 불신을 단번에 해소시킨 것이 바로 2부와 3부였다. 동시에 1부의 가치를 다시 발견할 수도 있었다. 2부에서 밝혀진 조부의 속사정은, 알파 우주의 에블린에게 부응하기 위해 실험에 응했다가 모든 다중우주의 연결에 성공하며 타락해버렸다는 것이었다. 동시에 조부는 메인 우주의 에블린도 타락시키려 한다.

조부가 에블린을 타락시키려고 한 이유는, 모든 다중우주와 연결되며 의미 없어진 삶에 싫증을 느낀 그녀가 함께 무로 돌아갈 동반자를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동반자가 바로 모든 다중우주와의 연결에 성공한 메인 우주의 에블린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타락의 손길에 다른 우주의 에블린도 영향을 받게 된다. 이 시퀀스부터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진가가 나타난다. 조부의 손길에 의해 1부에서 조금씩 등장했던 다른 우주의 에블린들이 배드 엔딩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들은 괜히 1부를 이렇게 만든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메인 우주의 에블린이 타락할수록 다른 우주의 에블린들은 이혼하고, 이별하고, 포기하고, 헤어진다. 다중우주에 존재하는 수많은 에블린들이 살아온 궤적은 저마다 달랐지만, 결국 배드 엔딩으로 향해버리는 점에서 하나가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이러한 배드 엔딩을 막는 것은 '다정함'이었다. 메인 우주의 웨이먼드는 항상 유약해 보였다. 고객의 세탁물에 이상한 눈알이나 달고, 항상 저자세에 있었다. 하지만 최종전에서 웨이먼드는 다정함을 무기로 살아왔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마치 득도한 도인같다. 우리는 싸움과 폭력을 동일시한다. 하지만 그런 말이 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진정한 승리다. 웨이먼드는 항상 진정한 승리를 해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다정함 덕분에 에블린과 조이의 운명 역시 변화한다. 웨이먼드의 다정함에서 깨달음을 얻은 에블린은 더 이상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저 눈앞을 가로막는 자들에게 한없는 다정함을 펼쳐줄 뿐이다. 이 시퀀스에서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웨이먼드의 다정함에 안기는 에블린의 모습에서 눈물을 흘릴 수 있었고, 모든 복선이 완벽하게 회수된 순간을 체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정함은 관객들에게도 깨달음을 준다. 손이 핫도그인 우주는 아무 쓸모도 없어 보이지만 사실 발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우주였다는 사실, 소중한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서는 미친 듯이 달릴 수도 있다는 사실, 가족을 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목숨도 걸 수 있다는 사실 등을 우리는 다정함을 통해 깨달을 수 있다. 이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시퀀스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아방가르드 연출들은 이전 장면들에서 등장했던 아방가르드 연출들과 전부 연결되면서 나를 흥분의 도가니로 이끌었다. 웃음으로 시작해 감동의 눈물을 지나 끝내 감탄의 박수를 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라는 영화가 갖고 있는 힘일 것이다. 이 힘에 의해 우리는 최종적으로 깨닫는다. 우리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디에든 갈 수 있어도, 가족이 있기에 다정한 마음으로 지금 여기에 남는다는 사실을.

총평
다니엘스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훌륭한 SF 액션 아방가르드 가족 코미디 영화이다(긴 장르명이지만 이외에는 이 영화의 장르를 요약할 길이 없다). 사실 처음에는 웃기기는 했지만 그다지 쓸모는 없어 보였던 코미디와 괴랄하기 짝이 없었던 다중우주 설정들만 줄줄이 나열되어 있다고 생각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이토록 맘에 들지 않았던 1부의 다양한 장면들이 2부와 3부를 지나는 동안 복선으로 작용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니 평가는 반전되었다. 복선들이 완벽하게 회수되고, 아름답게 활용되는 모습은 정말 감탄하며 감상할 수밖에 앖었다. 이러한 세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무척 감동적이었다. 무엇이든 어디에 있든 나는 나이며, 따라서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디에든 갈 수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기에 지금 여기에 남아 모두를 사랑하겠다는 이야기, 정말 대단했다.

퇴고 중 문득 떠오른 것
글을 끝마치려 퇴고하던 중, 하나 더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떠올랐다. 이 작품을 상징하는 것은 ‘눈(目)’이다. 조부가 무로 돌아가고자 만든 베이글을 들여다본 에블린의 ‘눈’에 그것은 마치 ‘눈’처럼 보인다. 또한 유약보였던 웨이먼드를 상징하는 이상한 ‘눈알’은 다정함이라는 이름으로 반전되며 에블린이 사용하는 무기가 된다. 이처럼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눈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작품이다. 모든 것을 포기하는 데에도, 모든 것을 감싸안는 데에도 눈이 존재하는 것이다. 눈으로는 무엇이든 바라볼 수 있다. 우리는 이 눈으로 허무함을 바라볼 수도 있고, 다정함을 바라볼 수도 있다. 선택권은 우리에게 있다. 허무함을 바라보다 끝내 이 세상에서 도망쳐 조용히 사라지고 말 것인지, 다정함을 바라보며 도망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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