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썸머 필름을 타고!

나가레보시 2022. 9. 8.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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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머 필름을 타고!(2020)

(영상으로 시청 가능 https://youtu.be/wFqz6zqBsKM)
영화 평론가 정성일은 이렇게 말했다. '영화를 사랑하는 세 가지 방법은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보고,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결국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영화 <썸머 필름을 타고!>는 이 삼원칙에 가장 사랑스럽게 부합하는 작품일 것이다. 사무라이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주인공 '맨발'은 좋아하는 사무라이 영화를 '여러 번' 본다. 그리고 결국 친구들과 함께 영화를 '만든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이렇게 반문하실 것이다. '주인공이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장면은 나오지 않았는데?' 그렇다. <썸머 필름을 타고!>에 그런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에 대한 글을 쓴다는 부분만 제외하면 정성일 씨의 삼원칙은 이 영화를 이야기하는 데에 최적화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사랑하는 대상과 수도 없이 만나보고, 끝내 그 사랑을 창조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주제는 무엇일까? 10대의 청춘? 시간을 뛰어넘은 로맨스? 많은 답이 나올 수 있겠지만 결국 나는 이 영화의 주제를 '영화에 대한 태도'라고 결론지었다. 이 작품은 다양한 시선에서 영화에 대한 태도를 묘사한다. 영화에 대한 열정은 있지만 소위 '시네마'라고 불리는 예술적인 영화를 신봉하는 탓에 대중적인 영화를 낮잡아보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예술적인 영화를 기피하고 대중적인 영화에 빠져 사는 사람도 있으며, 짧은 동영상에 너무 익숙해져 상대적으로 긴 영화를 기피하는 사람도 있고, 영화가 쇠퇴한 세계에서 영화를 부흥시키고 싶어할만큼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도 있다. <썸머 필름을 타고!>는 이러한 태도들을 전부 하나로 모아 영화라는 예술로 재탄생시키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만족하는, 모두가 좋아하는, 길어도 지루하지 않은, 사랑스러운 영화는 그렇게 탄생한다.

이를 기준으로 하여 주인공인 맨발의 시점에서 영화에 대한 태도라는 주제를 파고 들어가보도록 하자. 영화를 보면서 알아챌 수 있는 맨발의 태도는 '사랑'이다. 이 사랑은 영화에도 해당되지만 미래에서 날아온 린타로에게도 해당된다. 이 쌍방적인 사랑이라는 태도에 의해 영화는 마구 흔들리다 끝내 본질을 향해 나아간다. 맨발은 영화를 사랑하기 때문에 영화를 직접 만들고자 한다. 그러나 린타로를 사랑하기 때문에 영화는 완성되지 못하고 빙빙 돌기만 할 뿐이다. 그러다 맨발과 린터로가 각자의 마음을 조금씩 확인한 끝에 영화는 비로소 완성된다. 그러나 이 사무라이 영화는 이야기의 끝에서 다시 한번 개수된다. 맨발은 린타로를 사랑했기 때문에 자신이 감독한 영화의 엔딩을 변경했다. 그러나 상영회에서 그녀는 또 다른 사랑에 의해 본래의 사랑이 가려져버리고 말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맨발은 린타로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자각하고 나서 영화를 두 사무라이가 서로를 죽이지 않는 엔딩으로 끝낸다. 그러나 사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진정한 사무라이 영화라면 마지막 장면에서 한 사무라이는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는 사무라이 영화를 사랑한다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명제였다. 그러나 맨발은 린타로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그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무시해버리고 만다. 그래서 영화의 최후반부, 맨발은 직접 올바른 엔딩을 재현한다. 이 재현 시퀀스에서 맨발은 외친다. “벤다는 건 결국 고백이야.” 이 고백은 어디로 향할까? 화면상의 정보로만 보면 그녀의 고백은 눈앞에 있는 린타로에게 향한다. 그러나 우리는 알 수 있다. 맨발의 고백은 린타로를 넘어 사무라이로, 사무라이를 넘어 영화 그 자체로 향한다는 것을. 맨발은 사랑을 위해 사랑을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맨발은 그만큼 영화를 사랑하는 인물이다. 나 역시 영화를 사랑한다. 삶마저 포기할지도 몰랐을만큼 고통스러워 했던 시기에, 야마다 나오코 감독의 <목소리의 형태>를 보고 영화라는 예술을 새로이 인식했던 그 순간부터 나는 줄곧 영화를 사랑해왔다. 그렇기에 나는 맨발의 모습이 부러웠다. 사랑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사랑을 창조하기 위해 노력하고, 심지어 또 다른 사랑마저 뛰어넘어버리는 모습이 부러워 미쳐버릴 것만 같아 끝내 슬퍼지기까지 했다. 오만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누구나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스스로 창조해보고 싶은 마음을 깊이 간직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마음을 표현한 정성일 평론가의 영화를 '사랑하는 세 가지 방법'은 좋게 말하면 순수하고, 나쁘게 말하면 멍청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때로는 그 멍청해보이는 순수함이 세상을 바꿀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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