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탑건: 매버릭

나가레보시 2022. 7. 14.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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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건: 매버릭(2022)

(영상으로 시청 가능https://youtu.be/YWqj9KXOM6o)

언제부터인가 할리우드 영화는 낭만을 잃어버렸다. 시리즈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서는 시리즈의 전작들을 모두 본 뒤 설정까지 알아보아야 하는 것이 당연시되었고, 성별 쿼터와 인종 쿼터를 지키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영화여도 평론가들로부터 혹평을 받기 일쑤이며, 때로는 쿼터를 지키느라 오히려 완성도를 까먹어버리는 영화들도 존재한다. 이러한 할리우드 영화의 앞에 과거의 영웅이 멋지게 다시 나타났다. 고동치는 전투기의 엔진 소리와 함께 하늘 위로 날아오르는 톰 크루즈의 모습이, 36년 간의 침묵 끝에 다시 나타난 것이다. 오늘 리뷰할 영화는 36년 만에 돌아온 <탑건>의 후속작, <탑건: 매버릭>이다. 시작하기에 앞서 이야기하자면, <탑건: 매버릭>은 확실히 전편을 능가하는 후속작이자, <탑건>으로 떠올랐던 톰 크루즈를 영원불멸의 배우로 만든 영화라고 자신한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1편 시점으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러 미 해군 항공대의 전설이 된 전투기 조종사 '매버릭'이 적지에 위치한 우라늄 원자로를 파괴하는 임무를 수행할 조종사들을 가르치기 위해 '탑건'의 교관으로 부임하며 벌어지는 이야기가 <탑건: 매버릭>의 줄거리다. 정말 뻔하지 않은가? 적을 물리치기 위해 훈련하는 교관과 학생들, 그들의 내분과 성장,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의 사랑, 그리고 임무 성공. 좋게 말하면 클래식하고 나쁘게 말하면 구닥다리 서사다. 하지만 나는 영화를 보면서 이 서사를 옹호해주고 싶었다. 왜냐하면, 매버릭과 학생들의 이야기에는 요즘의 블록버스터 영화들에는 그다지 존재하지 않는 낭만이 그대로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미친 듯이 훈련하고, 사랑하고, 놀고, 임무에 성공한 후 박수가 가득한 항공모함에 착함해 뜨겁게 포옹하는 이야기란!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런 내용을 가진 할리우드 영화들이 정말 많았던 것 같다. 불가능해 보이는 임무를 맡게 된 주인공과 손발이 맞지 않는 동료들이 시행착오 끝에 함께 협력하면서 멋지게 임무를 성공시키는 영화들 말이다. 항상 비슷한 이야기를 보여주는 영화들이었지만, 그래도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오늘날의 할리우드에서는 이러한 낭만과는 거리가 먼 영화들만 만들어내는 것 같다. 제작사들은 관객들에게 자신들의 세계관을 강요하고, 평론가들은 어떤 영화들이 더 정치적으로 올바른 작품인지 수치화하여 감독과 배우들을 압박한다. 디즈니는 이러한 시스템의 최고봉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미국의 대체 신화라고도 불리는 스타워즈 시리즈부터, 21세기 최대의 영화 프랜차이즈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도 디즈니의 마수를 피하지 못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로 예시를 들어볼까? 과거의 마블 영화들에는 앞서 이야기했던 낭만이 살아있었다. 세계관의 시작이었던 <아이언맨>은 억만장자 토니 스타크가 납치를 계기로 강철 수트를 만들어 영웅으로 활동하며 연인과 사랑을 하는 내용이고, <앤트맨>은 전과자 소시민 스콧 랭이 우연한 계기로 수트를 손에 넣게 되면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영웅으로 활동하는 내용이다. 이런 영화들이 나오던 때는 2000년대 혹은 2010년대 초중반이다. 그러나 2010년대 후반부터 미국의 문화예술계에는 정치적 올바름의 광풍이 닥쳐왔다. 제작사, 평론가 할 것 없이 올바름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작품에 위해를 가하면서, 전통적인 낭만 서사는 무너졌고, 소수자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소수자를 제외한 모두를 깎아내리는 올바름을 추구한다면서 역으로 올바르지 못한 서사들이 나타났다.

 

디즈니는 역시 이러한 대열의 선봉에 서 있다. <블랙 팬서>는 흑인들의 신화를 위해 백인들은 모두 부채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듯이 이야기하고, <캡틴 마블>은 여성 캐릭터를 돋보이게 만들기 위해 남성 캐릭터를 깎아내린다. 정치적 올바름은 작품만을 망가뜨리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한다는 작품들이 그런 척만 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깨끗한 영화를 만든다면서 홍보하지만, 정작 흑인 문화나 동양 문화에는 무지한 모습을 보여준다. 즉, 오로지 백인과 서양인들의 시선에서 소수자들을 바라보는 영화들을 만드는 것이다. 참으로 위선적이다. 때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정치적 올바름이 그렇게 중요한가?' 올바름에 신경 쓸 시간에 작품에 신경 쓴다면 <그랜 토리노>나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같은 작품이 나올 수 있을지 모르는데도 말이다.

 

<탑건: 매버릭>은 이러한 올바름을 모두 깨부수어버린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올바른 영화가 되었다. 이 영화의 서사는 일직선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소수자를 비하하는 내용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존재할 수 없다. 매버릭의 동료들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흑인이든, 백인이든 그들은 동료다. 그저 함께 전투기를 몰고, 교신하고, 적기를 격추할 뿐이다. 그 과정은 정말 멋지다. 20세기에 만들어진 전작 <탑건>의 오마주가 진하게 풍기면서도 결국 21세기의 <탑건: 매버릭>이 된다. 마치 20세기의 것을 21세기의 것으로 리메이크한 느낌이 드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세계를 배경으로 매버릭과 동료들은 하늘을 난다.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것이 현실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즉, 이 영화에 CG는 극히 제한적이다. 하늘을 나는 전투기도, 배우들의 연기도 모두 현실의 것이다.

 

언제부터였을까, CG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바뀌었다. 과거에 CG는 현실의 배경을 더욱 현실처럼 보이게 만드는 도구였다. 그러나 오늘날, CG는 배경을 새로 창조하는 도구가 되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 <아바타>가 그런 인식을 심어주었던 것 같다. 물론 <아바타>는 명작이지만. 하지만 디즈니가 인식하는 CG는 과거의 것도, 오늘날의 것도 아닌 듯하다. 요즘 마블 영화들의 CG는 정말 별로다. 배우들은 조잡한 공간 위에 붕 떠있을 뿐이다. 이게 과연 영화일까, 아니면 조잡한 게임 트레일러일까(사실 게임 트레일러도 이렇게 만들면 욕을 먹을 것이다)? 과거에 나는 CG를 최대한 배제하여 영화를 찍는 크리스토퍼 놀란 같은 감독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컴퓨터로 그려 넣기만 하면 되는데, 왜 저런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영화감독이라는 예술가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실제로 창조해내겠다는 욕구는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즈니 산하의 마블 영화들은 흥행이 된다는 사실만을 믿고 영화의 기본 입자가 되는 배경을 CG로, 정말 대충 만든다. 이를 더 이상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여러분들의 생각에 맡긴다. <탑건: 매버릭>은 이러한 CG 만능주의에 강력한 어퍼컷을 날린다. 이 영화는 정말 놀랍다. 분명 CG가 쓰이기는 했을 것인데, 초반부를 제외하면 도대체 어디서 CG가 쓰였을지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직접 촬영되었다. 전투기는 실제로 하늘을 날고, 배우들은 모두 중력 가속도를 실제로 느끼며, 그 모습들은 전부 카메라에 실제로 담겼다. 이게 예술이다. 영화는 자고로 카메라의 예술이다. 그런 영화에 실제의 모습이 그대로 담겼다는 사실은 충분히 예술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영웅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수십 편의 영화를 보고 설정을 공부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솔직히 짜증이 날 때가 많이 있다. 영화마저 공부하고 봐야 하는 시대라니,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우리가 대체 왜 그래야 하는가? <탑건: 매버릭>은 그런 시대에서 벗어나 단순하지만 낭만있었던 과거의 영화로 되돌아간다. 그 안에서 나는, <탑건>을 실시간으로 보았던 아저씨와 아줌마는 영원불멸의 배우로 거듭난 톰 크루즈와 매력적인 동료들이 모는 멋진 전투기를 타고 창공을 가른다. 이러한 체험이 시네마가 아니라면, 우리는 무엇을 시네마라고 부를 수 있을까? 미친 듯이 고동치는 엔진 소리와 함께 하늘 위로 떠오르는 전투기와 멋지게 활약하는 톰 크루즈의 모습이 실시간으로 상영되는 극장 안, 우리는 그것을 시네마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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