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으로 시청 가능 https://youtu.be/KQojAS32yUk)
뮤지컬 장르하면 어떤 작품이 떠오르시는지? 나는 데미미언 셔젤 감독의 <라라랜드>가 떠오르기도 하고, <VIVIY ~Fluorite Eye's Song~> 같은 TV 애니메이션이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 나는 뮤지컬 장르를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집중하고 있다가 뮤지컬 파트가 나오면 그 집중이 전부 깨져버리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두 작품은 그런 나의 취향을 깨부수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게 한 작품들이다. 그렇다면 AI가 등장하는 SF 장르하면 어떤 작품이 떠오르시는가? 나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A.I.>가 떠오르기도 하고,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썸머 워즈>가 떠오르기도 한다. 이러한 장르의 작품들은 나도 꽤 즐기는 편이다. 그렇다면 AI가 등장하는 SF 뮤지컬 장르하면 어떤 작품이 떠오르시는가? 오늘 리뷰할 영화인 <아이의 노랫소리를 들려줘>가 바로 그런 작품이다.
행복: 꿈, 우정, 그리고 사랑
영화 <아이의 노랫소리를 들려줘>의 이야기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다섯 명의 소년소녀들이 AI 로봇 소녀 시온과 만나게 되면서 꿈을 꾸고, 우정을 키우며 끝내 사랑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야기를 더욱 짧게 한 단어로 요약하면 행복이 될 것이다. 이를 대변이라도 하듯 작중에서 AI 로봇 소녀 시온이 주인공 사토미를 보고 처음 한 말은 '사토미, 지금 행복해?'이다. 앞서 이야기한 꿈, 우정, 그리고 사랑은 이 행복이라는 주제 속에 들어있는 키워드들이다. 주인공들의 행복은 꿈이라는 키워드에서 시작하여 우정으로 발전하고, 끝내 사랑의 형태로 결실을 맺는다. 이렇게 결실을 맺은 행복이 시온이 지켜보는 학교 옥상 위에서 다시 한번 주인공들의 성장으로 이어지면서, 이 영화의 이야기는 분명 왕도적인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감동적이면서도 파릇파릇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럼 먼저 꿈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하자. 이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직간접적으로 꿈이라는 요소와 관련되어 있다. AI 개발자를 꿈꾸는 소년, 자신은 꿈이 없다며 자학하는 소년, 그런 소년이 자학을 그만두고 자신을 바라봐주기를 바라는 소녀, 유도 대회에서 승리하고 싶어하는 소년 등 주인공들은 모두 꿈을 꾸고 있거나 꿈과 관련되어 있다. 여기서 '이게 뭐가 꿈이야?' 할 수 있는 것이 있겠지만, 어린 날의 꿈이 구체적이고 명확해야 한다는 법은 없지 않을까? 보통 꿈이라고 하면 미래의 장래희망, 즉 미래에 희망하는 직업을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편견이다. 어른이 되면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편견인 것이다. 이 영화에서 말하는 꿈은 그런 꿈이 아니다. 우리가 지금 바라는 것, 하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 그것이 바로 꿈이다. 우리는 언젠가 꿈의 진정한 의미를 잊어버리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주인공들은 서로와 시온의 도움으로 각자의 꿈을 향해 달려 나간다. 그 과정에서 꿈은 우정으로 발전한다. 그 예시로 고자질 공주라고 불리며 겉돌었던 사토미는 그렇게 친구를 사귀게 된다. 집에 친구들을 불러 모아 유도 대회 승리 축하 파티를 열기도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컬 애니메이션인 <문 프린세스>의 한 장면을 재현한 고백을 받을 뻔하기도 하며, 특히 자신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곤 했던 아야와는 여자들끼리만 터놓을 수 있는 속마음을 공유하기도 한다. 이러한 우정의 중심에도 역시 AI 로봇 소녀 시온이 있다. 애초에 주인공들의 만남은 시온의 정체가 이들에게 들통나면서 시작되었으니,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처럼 시온을 중심으로 형성된 우정은 시온이 호시마로 끌려갔을 때 그녀를 구하려는 계기로 작용한다. 이 과정에서 우정은 사랑으로 조금씩 발전해가기 시작한다.
이 사랑의 형태는 다양하다. 아야와 고토처럼 기존에 사랑하고 있었던 인물들이 사랑의 의미를 재발견하며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는 경우도 있고, 사토미와 토우마처럼 서먹했던 우정이 정상적으로 복원된 다음 사랑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으며, 산다처럼 새롭게 짝사랑을 하게 되는 인물도 있다(여기서 짝사랑의 대상이 시온이라는 것이 소소한 코미디 포인트). 결정적으로 사랑은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면서 앞서 이야기한 행복의 하위 키워드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여기서 나는 이런 의문이 들었다. '꿈도, 우정도, 사랑도 모두 중요한 행복의 요소들이겠지만 왜 이 영화에서는 사랑을 더욱 강조하고 있을까?'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이러하다. '꿈도, 우정도 모두 사랑으로 귀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꿈을 꿀 수 있고, 우정을 사랑으로 발전시킬 수도 있다.
뮤지컬과 SF
이 영화의 장르는 뮤지컬이자 SF, 혹은 SF 뮤지컬이다. 우선 뮤지컬 장르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아이의 노랫소리를 들려줘>의 뮤지컬은 훌륭하다. 행복이라는 테마를 강조하는 좋은 곡들이 여럿 등장하고, 그중에서도 시온이 산다를 지도하는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곡은 장면의 리듬이 맞아떨어지면서 나를 신나게 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뮤지컬은 다른 뮤지컬 장르의 영화들과는 다른 점이 하나 있다. 많은 뮤지컬 영화들은 인물들이 노래하고 있다는 사실이 세계관 속에 드러나지 않는다. 쉽게 말하면, 주인공이 노래하고 있을 때 다른 인물들은 그 노래에 반응하지 않는다. 그 예시로 영화 <겨울왕국>의 안나와 한스가 함께 노래하는 장면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노래 잘하시네요' 하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의 노랫소리를 들려줘>에서는 그런 노래에 대한 반응이 존재한다.
<아이의 노랫소리를 들려줘>에서는 이러한 노래에 대한 반응을 통해 다양한 인물들을 하나의 화면 안으로 모은다. 처음에는 시온의 노래에 '쟤 뭐야?' 하면서 시작된 시니컬한 반응은 시온의 노래가 계속될수록 행복한 반응으로 바뀌어가고, 화면은 조금씩 떠들썩해진다. <아이의 노랫소리를 들려줘>는 이처럼 일반적인 뮤지컬 영화와는 다른 방법으로 뮤지컬을 연출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뮤지컬 영화의 일반적인 면모 역시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뮤지컬 장면이 인물들의 속마음을 대변하고, 노래가 끝나자마자 인물들의 진심이 고백되는 연극적인 장면들이 그러하다. 좋은 예시로 아야가 고토에게 자신의 진심을 고백하는 장면이 있다. 따라서 이 영화의 뮤지컬은 정통적이지 않으면서도 정통적이다. 더욱 연극적인 <VIVY ~Fluorite Eye's Song~> 같다고나 할까?
이처럼 <아이의 노랫소리를 들려줘>에서 가장 강조되는 장르는 뮤지컬이지만, 세계관을 떠받들고 있는 장르는 SF라고 단언할 수 있다. 주인공이 살고 있는 마을의 모든 것은 AI의 제어를 통해 움직이고, 이 AI를 이용하여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이 이 영화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아이의 노랫소리를 들려줘>는 이러한 SF 장르가 영리하게 이용된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SF 장르는 대부분 세계관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극의 전개는 감정적인 연출로 이루어진 뮤지컬 장르가 활용된다. 그러나 뮤지컬의 특성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비로소 SF 장르가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이러한 면모가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시온의 탄생 경위가 밝혀지는 장면과 시온 탈환 작전 시퀀스일 것이다. 이 장면들이 납득될 수 있는 이유는, SF 장르로 세계관을 꼼꼼히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뮤지컬 장르와 SF 장르 모두에 대해 생각해보자. 여러분은 무엇이 떠오르시는가? 나는 호소다 마모루의 영화들이 떠오르는데, 그중에서도 AI를 주로 하여 만들어진 SF적 세계관에서는 <썸머 워즈>가 떠오르고, 뮤지컬과 SF가 합쳐진 작품으로는 <용과 주근깨 공주>가 떠오른다. 우선 <썸머 워즈>와 비교해보면, <아이의 노랫소리를 들려줘>가 약간 열세에 있다고 생각한다. <썸머 워즈>의 AI 세계관은 <아이의 노랫소리를 들려줘>보다도 활발하고 정교하게 표현됨과 동시에 극을 이끄는 데에 있어서도 적극적으로 나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용과 주근깨 공주>와 비교하면 <아이의 노랫소리를 들려줘>가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개인적으로 <용과 주근깨 공주>의 가상현실 세계관은 아름답지만 죽어있다고 생각하는데, <아이의 노랫소리를 들려줘>의 AI 세계관은 활발하게 살아있다.
총평
영화 <아이의 노랫소리를 들려줘>는 AI가 일상의 영역에서 밀접하게 활용되는 세계를 배경으로 행복을 메인 테마로 하여 사랑과 우정을 아름답게 노래하는 작품이다. 그 과정에서 인간성과 AI의 특성을 적절히 번갈아가며 활용하는 장면들은 제법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이 영화에서 인간성은 크게 보면 행복으로 나타나고, 사랑과 우정, 꿈은 하위적으로 나타난다. 즉, 이 세 가지는 행복의 범주 내에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요소는 사랑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주인공들은 꿈의 공유를 통해 쌓은 우정이라는 관계로 한 번 엮인 후 사랑이라는 관계로 다시 한번 발전해나가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랑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어째서 이 영화의 제목은 시온이 아닌 아이의 노랫소리를 들려달라고 말하는지도 알 수 있다. 시온의 정체인 AI(아이, 인공지능 시온)의 노랫소리를 들려달라는 제목도, 행복의 요소로 작용하는 愛(아이, 사랑)의 노랫소리를 들려달라는 제목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영화 <아이의 노랫소리를 들려줘>는 이처럼 사랑이 강조되는 행복의 테마를 잘 살린 작품이다. 고교생 소년소녀들이 우정과 사랑을 쌓고 꿈을 좇아 성장한다는 간단한 플롯은 AI 세계관과 그 중심에 있는 AI 로봇 소녀 시온의 이야기와 노래들로 아름답게 꾸며지며 감동을 준다. 또한, 결정적으로 이 청춘의 세계는 파릇파릇하게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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