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으로 시청 가능 https://youtu.be/96Jf46H6Qko)
여러분들은 다시 돌려볼 만큼 좋아하는 TV 애니메이션이 있으신지? 나에게는 그런 작품들이 꽤 있다. 야마다 나오코 감독의 <케이온!> 시리즈와 아메미야 아키라 감독의 <SSSS.DYNAZENON>, 그리고 쿄고쿠 요시아키 감독의 <유루캠△> 시리즈가 바로 그것이다. 내가 <유루캠△>을 좋아하는 이유는, 캠핑을 소재로 한 일상탈출을 통해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고 자연의 정취에 빠져듦과 동시에 린과 친구들의 모험기에서 귀엽고 아기자기한 재미 역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2000년대 최고의 일상물이 <케이온!>이라면, 2010년대는 <유루캠△>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나는 <유루캠△> 시리즈를 좋아하고 있다. 최근에는 만화도 구매해 읽기 시작했다. 오늘 리뷰할 작품은 그런 <유루캠△>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극장판, 영화 <극장판 유루캠△>이다.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어른의 나날
영화의 오프닝, 린과 친구들은 다 같이 캠핑을 간다. 맛있는 요리를 먹고, 아름다운 불꽃놀이를 구경하며 그녀들은 어른이 되면 어떤 캠핑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어른이 되면 돈을 벌어 더욱 퀄리티 있는 캠핑을 할 수 있을 것이고, 자동차를 타고 더 멀리까지 떠나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친구들은 제안한다. 어른이 되어서도 다 같이 캠핑을 가자고. 린은 특유의 쌀쌀맞으면서도 따뜻한 성격을 드러내듯 '생각해볼게' 하고 말한다. 그러나 바로 이어 등장하는 어른이 된 린의 모습은 그런 낭만적인 어른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출근, 퇴근, 출근, 퇴근... 그렇게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린의 모습은 바로 앞의 오프닝과 대비되면서 왠지 모를 씁쓸함을 느끼게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모처럼의 휴일을 맞아 캠핑 계획을 세우던 린은 치아키의 연락을 받고 나간 술자리에서 야마나시의 빈 땅에 관한 이야기를 듣자 지나가는 말로 캠핑장 조성을 제안한다.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치아키는 이에 감동해 나고야에서 야마나시까지 린을 끌고 간다. 그렇게 마주하게 된 빈 땅을 둘러보던 린은 솔방울 하나를 줍게 된다. 여기서 <유루캠△>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솔방울이 '안녕'하고 말하는 모습을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솔방울은 말하지 않는다. 그렇게 즐거웠던 어린 시절의 캠핑은 돌아갈 수 없는 그리운 추억으로만 남았다는 것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이러한 그리운 추억을 상기시키는 장면은 나데시코가 알바를 하는 장면에서도 나타난다. 캠핑용품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나데시코는 여고생 손님들이 가스 랜턴을 구경하고 있는 모습에서 똑같이 가스 랜턴에 흥미를 가졌던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고, 자신을 위해 랜턴에 불을 붙여 주었던 카리부의 점원처럼 이번에는 자신이 여고생 손님들을 위해 불을 붙여준다. 참 씁쓸하다.
되돌아가다
그렇게 해가 뜨고, 치아키는 친구들을 불러 모아 본격적인 캠핑장 조성 계획을 설명한다. 여기서도 씁쓸한 장면이 등장한다. 요코하마에 살고 있는 에나가 회의에 참가하지 못한 것이 그것인데, 어른이 되고 뿔뿔이 흩어져 한 번 만나기도 어려워진 관계, 즉 어른의 사정이 너무나 공감되어 씁쓸했던 것 같다. 이러한 어른의 사정에도 계획은 진행되어 캠핑장 조성이 시작되고, 린과 친구들은 챗바퀴처럼 굴러가는 어른의 나날에서 벗어난다. 캠핑장 조성 계획이 시작된 그 순간부터, 린과 친구들은 낭만적인 어른의 캠핑을 기대하던 추억의 고등학생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린과 친구들의 모습을 반겨주기라도 하듯 솔방울은 드디어 평소대로의 <유루캠△>처럼 '안녕'하며 말해주고, 치쿠와는 풀밭에서 신나게 뛰어놀기 시작한다. 그런 치쿠와의 모습을 귀여워하는 린과 나데시코의 모습은 덤.
캠핑장 조성 계획은 착실히 진행된다. 그동안 린과 친구들의 겉모습도, 마음도 더더욱 고등학생 시절로 되돌아가 있다. 그전까지는 반복되는 일상에 치인 어른의 모습만 보여주던 영화 역시 TV 애니메이션처럼 귀엽고 발랄한, 일상 코미디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린과 친구들이 주말 전대 작업복 레인저로 변신하는 모습에서 이는 극대화된다. 이처럼 주인공들과 영화가 각각 고등학생 시절, TV 애니메이션으로 돌아갔다는 데에 중점을 두고 생각해보면, 린이 술집에서 지나가는 말로 캠핑장 조성을 제안하자 치아키가 '시마 대원!'을 외쳤을 때부터 이 회귀는 시작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캠핑장 조성 파트는 어린 시절로 돌아간 린과 친구들의 모습과 TVA의 오마주를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추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유루캠△>에 대한 추억뿐만 아니라, 관객들의 추억까지 말이다.
어른의 사정
그러나 린과 친구들은 어른이다. 그렇기에 잠시 동안의 회귀는 결국 끝나버리고 만다. 이 회귀를 끝내는 것은 조몬 시대 토기의 발견으로 인한 캠핑장 계획의 무산이다. 이를 현실적인 용어로 치환해보면, '어른의 사정'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을 것이다. 토기가 발견되기 전까지 린과 친구들은 고등학교 시절, 즉 행복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들은 어른이다. 결국 린과 친구들은 유적의 발견과 이로 인한 캠핑장 조성 계획의 무산이라는 어른의 사정에 무력하게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어른의 사정으로 다시 쳇바퀴 같은 일상으로 돌아간 린과 친구들은 본래의 현실을 자각하게 된다. 어린 시절로의 회귀를 즐기는 동안 자신의 업무를 묵묵히 맡아주었던 선배가 있었다는 사실, 귀여운 강아지 치쿠와는 이제 나이가 들어 예전처럼 달리기는 어렵다는 사실, 회귀를 즐기는 동안은 생각하지 못한 학교의 폐교라는 사실, 여고생들처럼 언제나 두근거리는 하루를 보낼 수는 없다는 사실, 캠핑장 조성 계획은 무산되었다는 사실까지 전부.
다시 한 번 되돌아가다
이러한 어른의 사정에도 불구하고 린과 친구들은 캠핑장 조성 계획을 부활시켜보고자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주제가 나타난다. 이전까지 이 영화는 린과 친구들의 어린 시절로의 회귀를 통한 감동과 행복을 주제로 내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부터 행복을 누리게 되는 사람은 린과 친구들만이 아니다. 캠핑장 조성 계획이 무산된 후, 린과 나데시코는 온천에 간다. 열심히 산을 오른 후 온천에 몸을 담가 여독을 풀던 나데시코는 린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행복을 전해주고 싶어.' 이 장면 이후 린과 친구들의 행동은 달라진다. 이전까지의 캠핑장 조성 계획은 철저히 린과 친구들의 입장에서 진행되었다. 물론 방문객을 고려하는 장면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카메라는 철저히 그녀들을 클로즈업했다. 그러나 온천 장면 이후의 계획은 모두의 입장에서 진행된다.
지금까지의 캠핑장 컨셉은 '재생'이었다. 이에 따라 린과 친구들은 버려진 시설을 활용하여 자연과 어우러지는 재생의 캠핑장을 만들어간다. 이 재생은 캠핑장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에서 해방된 린과 친구들의 재생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 하나의 컨셉이 더해진다. 작품 속에서 구체적인 용어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즐기고 행복을 만들 수 있는 캠핑장, 고대 유적을 활용할 수 있는 캠핑장이라는 점에서 나는 최종적인 캠핑장 컨셉을 '재생과 연결'이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주어진 것들을 재생시킨 다음, 이를 이용해 자신의 행복을 여러 사람들에게 이어주고,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연결의 캠핑장인 것이다. 그렇게 린과 친구들은 다시 한번 되돌아갈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재생과 연결은 작품의 마지막 클라이맥스와 엔딩에서도 나타난다.
캠핑장이 완공되고 다가온 개장일, 린과 친구들은 이정표를 설치하는 것을 잊게 되고 많은 손님들이 길을 잃게 된다. 그러자 린은 직접 손님들을 모셔오기 위해 길을 나선다. 이때 등장하는 것은 영화 내내 타고 다녔던, 어른이 되어 산 멋진 바이크가 아니다. 린이 타고 있는 것은 고등학교 시절 타고 다니던, 이제는 낡어버린 추억의 스쿠터다. 과거에 박제되어 있던 낡은 스쿠터는 재생되어 린의 소중한 친구로서 다시 나타난 것이다. 여기서 '맡겨줘' 하고 말하는 스쿠터의 모습이 참 귀여우면서도 마음을 아리게 했다. 그렇게 재생된 스쿠터는 다시 한 번 린의 동반자가 된다. 엔딩 크레딧에서 린이 낸 '스쿠터로 어디까지 가볼까?' 기획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추억의 어린 시절과 지금 이 순간이 연결된 모습이기도 하다. 이러한 연결의 모습은 오프닝 장면과 엔딩 장면의 연결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영화 오프닝에서 고등학교 시절의 나데시코는 친구들을 향해 어른이 되어서도 다 같이 캠핑을 하자고 제안한다. 이에 친구들은 동의하지만, 린의 반응은 사뭇 다르다. 당연히 동의의 표현이기는 하지만, 린은 바로 동의하는 친구들과 달리 특유의 츤데레 성격을 드러내며 '생각해볼게.' 하고 말한다. 물론 친구들은 그런 린의 반응에 흐뭇해한다. 엔딩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생긴다. 캠핑장 조성 계획이 성공하고 이루어진 캠핑에서 친구들은 새해맞이 캠핑을 가자는 의견을 내게 되고, 당연하게도 동의한다. 이때 린의 반응은 오프닝과 똑같다. 특유의 츤데레 성격이 팍팍 드러나면서 다시 한번 그 말이 나온다. '생각해볼게.' 이것이 바로 과거와 현재의 연결인 것이다. 동시에 어른이 되었어도 한결같은 린의 모습을 통해, 아무리 시간이 지나더라도 변하지 않는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총평, 혹은 개인적인 생각
어른이 되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아직 때 묻지 않은 아이들은 생각한다. 돈을 벌어 사고 싶은 것을 마음껏 살 수 있고, 자동차를 운전하며 가고 싶은 곳이 어디든 마음껏 갈 수 있는 어른의 세계를 아이들은 동경의 눈빛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어른의 사정이라는 말이 있듯, 어른의 세계는 그런 동경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곳은 아닐 것이다.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일상에 치이고, 돌아갈 수 없는 어린 날의 모습들을 그저 추억하기만 하며 하루하루를 겨우겨우 살아가는 세계, 그것이 어른의 세계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영화 <극장판 유루캠△>은 그런 어른의 세계에서 잠시 멀어져 어린 시절의 행복을 한정된 시간이나마 만끽하고, 동시에 새로운 사람들의 새로운 행복을 위해 길을 닦는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이다. 린과 친구들의 캠핑장 만들기라는, 조금은 생뚱맞게 보이는 소재가 이 이야기에 부합할 것이다. 린과 친구들이 캠핑장을 만드는 것은 행복했던 학창 시절의 추억들을 회상하는 것이자, 재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캠핑장 만들기는 린과 친구들 개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린과 친구들은 자신들의 행복을 위함과 동시에 새로운 사람들의 새로운 추억, 즉 행복을 위하고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캠핑장은 아마 린과 친구들에게 있어 영원한 행복의 장소로 남을 것이다. 린과 친구들은 어른이 되자 고향을 떠나고 취직하며 뿔뿔이 흩어졌고, 지금은 각자의 삶을 살고 있었다. 다 같이 모이는 것도 몇 년에 한 번 정도였다. 그러나 이제는 다 함께 모일 수 있는 행복의 장소가 생겼으니, 그녀들은 손수 만든 캠핑장에서 만남을 계속하며 영원히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를 보는 동안 지은 웃음만큼 마음 한 켠에서는 슬픔도 느껴졌다. 린과 친구들이 학창 시절 겪었던 여러 사건들이 타인들에 의해, 혹은 우연히 오버랩되는 장면에서 주인공들이 무슨 생각을 했을지 너무나도 잘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 역시 갓 어른이 되었지만, 그런 상황을 자주 겪었다. 중고등학생들이 길거리에서 함께 키득대는 모습만 보아도, 나는 직감한다. ‘아, 나도 몇 년 전에는 그랬지. 행복해 보인다. 하지만 다시는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을 거야.’ 린과 친구들 역시 문득 오버랩되는 어린 날의 모습을 느낄 때마다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도 함께 느꼈을 것이다.
그렇기에 린과 친구들은 함께한다. 자신들의 어린 시절은 돌아갈 수 없는 때라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행복하기 위해, 잠시나마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과 마주하기 위해, 새로운 행복을 다음 차례로 전달해주기 위해 캠핑장을 만든다. 이러한 모습에서 나는 왠지 모를 감명을 받았다. 스무 살, 찬란하다면 찬란한 나이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주변의 친구들과는 달리 도무지 찬란할 수 없었다. 아직은 책임지고 싶지 않았고, 앞으로의 미래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뚱맞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는 앞으로의 책임과 미래에 대한 용기를 조금 얻을 수 있었다. <극장판 유루캠△>을 보면서 행복할 수 있고, 행복을 전달해줄 수도 있는 공간을 만드는 린과 친구들의 모습이 인상에 남았다. 동시에 그녀들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의 앞날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더 나이가 들었을 때 돌아갈 행복의 장소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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