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으로 시청 가능 https://youtu.be/Tt92Q5n-saI)
2019년 방영된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은 엄청난 인기와 함께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후 2020년에 개봉한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제치고 역대 일본 영화 흥행 순위 1위를 차지하기까지 했다. 이처럼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에 새로운 역사를 썼다고 평가받게 된 <귀멸의 칼날> 시리즈의 신작인 <귀멸의 칼날: 환락의 거리편>이 2022년 1분기에 방영되었다. 이번 작품은 뛰어난 영상 퀄리티를 통하여 지난 작품들의 명성을 잇는다. 하지만 그 외에 나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 있냐고 한다면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바로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귀멸의 칼날>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최대 강점은 단연 뛰어난 영상 퀄리티다. 대표적으로 1기의 히노카미 카구라와 극장판의 렌고쿠 쿄쥬로와 아카자의 전투 시퀀스가 유명하다. 나는 애니메이션을 시청할 때 영상의 퀄리티를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편이지만, <귀멸의 칼날> 시리즈는 그런 나마저도 같은 장면을 다시 돌려보게 만들 정도로 멋진 영상을 보여준다. 이번 <귀멸의 칼날: 환락의 거리편>의 영상 퀄리티 역시 대단하다. 5화에서 히노카미 카구라와 벽력일섬 등 인기 기술들의 이펙트 퀄리티가 불안정해진 적이 있었지만, 이를 제외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시청자들의 혼을 빼놓을 멋진 장면들이 이어진다.
하지만 호평은 여기서 끝이다. <귀멸의 칼날: 환락의 거리편>은 전투 장면 등의 일부 분야에 있어서는 원작을 초월했다는 평을 받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각본에 있어서는 좋은 평을 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원작을 극도로 충실하게 따랐기 때문이다. 원작을 읽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원작의 전투 장면은 매우 소란스럽다. 독자들에게 컷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하여 등장인물들이 자신과 상대의 상태, 사용하는 기술과 이에 따른 결과 등을 전부 독백의 형식으로 일일이 나열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만화는 소리 매체가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다.
문제는 이러한 독백들이 각색 없이 전부 애니메이션으로 구현되었을 때 나타난다. 애니메이션은 영상 매체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영상 매체에서는 소리가 난다. 이는 원작 만화의 특징이었던 소란스러운 전투 장면들이 각색되지 않은 채로 영상화된다면 그보다 배로 소란스러워지는 단점이 생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귀멸의 칼날: 환락의 거리편>은 극도의 원작 반영을 기반으로 원작을 초월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나도 이 말에는 어느 정도 동의한다. 하지만 이러한 원작 반영이 거꾸로 작품에 방해가 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이 작품의 전투 장면들에는 소란스러움을 넘어 불편할 정도로 원작의 대사들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단점은 전작인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에서도 지적된 적이 있었다. 특히 작중의 악당인 십이귀월 하현 1의 혈귀 엔무는 온갖 장광설을 늘어놓으며 관객들에게 상황 설명을 한 바람에 이른바 '설명충'이라는 오명을 얻을 정도였다. 나도 극장에서 무한열차편을 감상하면서 이러한 과다 설명에 학을 뗐다. 그래서 이번 환락의 거리편에서는 이 단점이 개선되었기를 바랐지만, 이러한 나의 바람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하고 말았다. 이번 작품은 전작보다 원작에 더욱 충실했고, 그 탓에 나는 작품에 제대로 집중할 수 없었다. 화면만 보고도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을 전부 일일이 설명하고 있으니, 오히려 거슬릴 정도였기 때문이다.
시청자는 탄지로가 적의 공격을 눈앞에 두고 피를 흘리며 "적은 이러이러한 방법으로 공격해 올 거야!"라는 대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탄지로가 얼마나 힘든 상태인지, 적이 어떤 방법으로 공격해올 것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에는 그런 각색은 그다지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탄지로가 자신과 적의 상태를 전부 나열하는 것을 거슬릴 정도까지 보고 있어야 한다. 애니메이션(드라마, 실사 영화에도 해당되는 것이기도 하다)에 있어서 원작에 충실하는 것은 팬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원작과 애니메이션은 별개의 매체이기 때문에, 미디어 믹스에 있어서 각색은 정말 중요한 과정이다.
<귀멸의 칼날: 환락의 거리편>은 각색 과정을 극도로 생략해 원작을 충실히 반영한 작품이다. 그 탓에 영상의 질은 뛰어날지 몰라도 각본에 있어서는 그다지 좋은 작품이라고 부를 수는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환락의 거리편은 재미있는 작품이다. 그리 심오한 주제와 내용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뛰어난 영상미와 액션 장면들을 감상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데에는 안성맞춤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원작의 명장면들이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를 통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고 싶었을 <귀멸의 칼날>의 팬들에게 있어서는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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