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상으로도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J1o-ud3yxkI)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온라인 게임을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리그 오브 레전드를 꼽을 것이다. 나는 닌텐도 스위치로 가끔씩 하는 것을 제외하면 거의 게임을 하지 않지만, 주변인들은 모두 이 게임을 하고 있어서 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정도다. 그런 리그 오브 레전드의 설정을 기반으로 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아케인>이 11월 7일에 매주 3편 공개 방식으로 선을 보였다. 사실 처음에는 시청할 생각이 없었다. 게임의 설정도 잘 모르고, 결정적으로 게임 원작 영상물이 <반교: 디텐션>을 제외하고는 잘 만들어진 꼴을 별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케인>은 큰 인기를 끌었다. 결국 나는 1화만이라도 시청해보자는 심정으로 재생 버튼을 눌렀고, 선택은 헛되지 않았다.
뛰어난 캐릭터 묘사
<아케인>의 최고 장점을 꼽으라면 단연 입체적인 캐릭터 묘사에 있을 것이다. 이 작품엔 스토리에서 어느 정도 소외되는 캐릭터는 있을지언정, 잘못 만들어진 캐릭터는 존재하지 않는다. 필트오버와 자운의 대립 관계에서 일어나는 군상 속 캐릭터들의 감정과 선택은 입체적으로 변화한다. <아케인>의 뛰어난 캐릭터 묘사는 등장인물들이 하나의 거대한 메인 스토리를 서로 다른 시선에서 전개하는 과정에서 느껴볼 수 있다. 이를 군상극이라고 하는데, 군상극은 심혈을 기울여 각본을 쓰지 않으면 좋은 작품으로 만들어내기 어려운 장르이다. 실제로 <아케인>은 하이머딩거 교수와 같이 어느 정도 극에서 소외되는 캐릭터가 존재해 완벽한 군상극을 만들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 군상 속에서의 캐릭터 묘사는 수준급이라고 할 수 있다. 마법 공학을 중심축으로 두고 수많은 캐릭터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전개하면서도 타 인물들의 이야기와 영향을 주고받으며 입체적으로 변화해간다. 처음엔 자운의 진압에 찬성했으나 바이와 함께 시너 공장을 진압한 이후 죄책감에 시달리며 자운의 독립을 찬성하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한 제이스가 대표적인 예시이다. 이처럼 군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캐릭터들의 묘사는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받으며 입체적인 감정선을 쌓아 올라가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물론 이러한 묘사는 매우 훌륭하다.
특히 자운의 수장 '실코'의 묘사가 압권이다. 실코는 아랫동네의 수장이었던 밴더가 바이와 파우더를 위해 윗동네 필트오버와 결탁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결국 그는 밴더를 죽이고 아랫동네의 수장이 되어 아랫동네를 자운이라는 이름의 독립 국가로 재탄생시키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파우더를 징크스라는 이름으로 거둔 실코는 몇몇 계획들을 그르치면서도 진짜 아버지처럼 징크스를 보살핀다. 끝내 자운의 독립과 징크스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실코는 징크스를 택하며 넌 완벽하다고 말하고 죽음을 맞는다. 이는 항상 아이들을 감싸던 밴더를 이해하지 못했던 실코가 결국 밴더와 똑같은 상황에 직면하면서 그를 이해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끝내 실코는 평생을 염원했던 자운으로의 독립을 포기하면서까지 징크스를 향한 부성애를 잃지 않고 인간성을 간직한 채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이러한 실코처럼 주변인과 다양한 상황들에 의해 변화하고 다양한 선택을 하는 캐릭터들을 입체적으로 묘사해 낸 것이 <아케인> 최고의 장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뛰어난 연출과 영상미
바로 앞에서 나는 <아케인>의 최고 장점이 입체적인 캐릭터 묘사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캐릭터 묘사가 가능하도록 뒷받침해준 뛰어난 감정적 연출 또한 이 작품의 장점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아케인의 연출은 크게 감정적, 정신적 연출과 액션 연출로 나눌 수 있다. 두 연출 분야 모두 훌륭하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전자의 연출이 더 인상 깊게 다가왔다. 특히 바이와 징크스의 관계를 다루는 연출들은 하나같이 정말 대단했다.
이 작품의 메인 스토리는 1~3화에서 다루어지는 파우더의 정체성과 징크스의 정체성이 나누어지는 과정, 4~6화에서 다루어지는 두 정체성 간의 치열한 대립, 7~9화에서 다루어지는 징크스로의 완전한 각성으로 나눌 수 았다. 이 과정에서 감정적 연출들은 바이와 징크스의 관계를 상기시키고, 이 관계를 지속적으로 흔들며 봉합하고, 끝내 다시 찢어놓으며 자매의 엇갈림이 어떻게 마무리 될지 기대하도록 만든다. 이러한 면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이 바로 9화의 마지막 시퀀스인 파우더의 정체성과 징크스의 정체성이 오랜 시간 동안 대립한 끝에 징크스의 정체성만이 남는 시퀀스다. 지속해서 보여줬던 바이, 실코, 케이틀린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징크스의 내적 갈등(조현병)을 끝내 극대화하는 연출은 어째서 그녀에게 징크스의 정체성만이 남을 수 있었는지, 어째서 남매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게 되었는지 여실히 깨닫게 해 준다.
이제 액션 연출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작품의 프롤로그 격인 1~3화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아케인>의 메인 스토리가 진행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다양한 세력들이 대립하고 이로 인해 여러 전투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전투에서 발생하는 액션의 연출은 작품 특유의 영상미와 어우러지며 빛을 발한다. 이 작품의 영상은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호평할 수 있다. 우선 뛰어난 카툰 렌더링 기술이다. 덕분에 3D 애니메이션보단 2D 애니메이션의 느낌을 간직하고 있는 캐릭터 모델링과 움직임이 만들어질 수 있었고, 이는 뛰어난 액션의 기반이 되었다. 또한, 여러 가지 이펙트 효과들도 뛰어난 퀄리티를 자랑한다. 특히 점화단이 사용하는 이동수단에서 이를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이펙트 효과의 좋은 예시가 액션 연출과 감정적 연출이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진 에코와 징크스의 전투다.
이처럼 뛰어난 영상 퀄리티가 뒷받침하는 높은 퀄리티의 액션 연출은 작품의 주요 볼거리임이 틀림없다. 앞에서 칭찬했던 스토리와 감정적, 정신적 연출이 아니더라도 영상미와 액션씬의 퀄리티 하나만으로 <아케인>을 감상할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총평
나는 게임을 거의 하지 않는다. 따라서 리그 오브 레전드의 스토리나 설정도 잘 모른다. 그럼에도 <아케인>은 나의 마음을 한 번에 사로잡은 작품이 되었다. <아케인>의 스토리는 두 진영의 대립, 그 안에서의 정치 싸움과 자매의 엇갈림 같은 클리셰를 어느 정도 따르고 있다. 하지만 클리셰도 제대로 사용하면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이 있었던가? 나는 이 말을 올해 2분기에 방영된 <SSSS.DYNAZENON>을 보고 이해할 수 있었다. <아케인>에서도 클리셰는 멋지게 사용되며 작품 속 이야기를 한껏 빛내고 있다.
클리셰 위에서 진행되는 캐릭터들의 변화와 선택은 1화부터 9화까지 나를 조여 왔다. 복잡하게 얽힌 인물들과 진영들의 관계, 그 속에서 펼쳐지는 각자의 선택, 그리고 이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묘사는 정말 대단했다. 물론 서사적인 면이 전부는 아니다. 여러 장면에서 나의 눈을 사로잡는 다양한 시각 효과들과 연출은 이 작품의 주요 볼거리임이 틀림없다. 특히 주요 인물들의 관계를 확실히 정립하고 오랜 고민 끝의 선택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9화의 마지막 시퀀스가 대단했다.
그럼에도 복잡한 군상을 그리느라 4화부터의 스토리 전개가 빨라지고 대사와 연출을 집중해서 따라가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워지는 문제점과 군상에서 소외되는 캐릭터가 여럿 있다는 아쉬움도 존재한다. 특히 올해의 명작들인 <SSSS.DYNAZENON>과 <오드 택시>는 더 짧은 시간 안에 복잡한 군상을 해결했다는 점에서 더욱 아쉽다. 그럼에도 <아케인>은 뛰어난 작품이다. <SSSS.DYNAZENON>보다는 살짝 아쉬웠지만 올해 최고의 작품 대열에 당당히 들어갈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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