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슈퍼커브

나가레보시 2021. 11. 17.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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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커브(2021)

(영상으로도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xXSAPoSmEA)
<유루캠>이라는 작품을 아시는지? 5명의 소녀들이 함께 캠핑을 떠나는 치유계 일상 애니메이션으로, 나도 정말 재미있게 보았고 1기를 리뷰한 적도 있다(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2기도 리뷰해보도록 하겠다). 내가 <슈퍼커브>를 리뷰하기 앞서 이 <유루캠>이라는 작품을 언급한 이유는, <유루캠>을 시청한 사람이라면 <슈퍼커브>를 시청하며 <유루캠>을 반드시 떠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슈퍼커브>와 <유루캠>은 서로 닮아있는 작품들이다. 물론 그만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들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슈퍼커브>가 <유루캠>보다 좋았다. 내가 어째서 그렇게 생각했는지, 지금부터 알아보도록 하자.

<슈퍼커브>는 플롯에 있어선 평범한 작품이다. 양친 없이 홀로 사는 소녀 '코구마'는 자전거로는 통학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혼다의 스쿠터인 슈퍼커브를 구매하게 된다. 이를 통해 여러 친구들과 엮이게 되면서 생기는 일들을 잔잔한 일상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 <슈퍼커브>의 주된 내용이다. 즉, 이 작품에서는 엄청난 사건이라고 할 것이 없다. 사건이라고 해봤자 자전거를 타다 강물에 빠진 '시이'를 코구마가 커브를 타고 구하러 가는 것뿐이다. 이러한 '사건 없는 평범한 일상'은 힐링 애니메이션의 공식과도 같다. 위에서 이야기한 <유루캠> 역시 그러하며, 이쪽은 한 술 더 떠서 작품 전체가 사건 하나 없이 주인공들의 일상과 캠핑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플롯이 평범하면 당연히 시청자들의 주목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러한 일상, 힐링계 애니메이션들은 캐릭터들의 매력을 어필하여 1차적으로 시청자를 끌어모은 후, 힐링 분위기를 조성하여 2차적으로 시청자들을 작품에 집중하게 만드는 전략을 사용한다. 여기서 캐릭터들의 매력이란 소위 '모에'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캐릭터들의 귀여움을 어필한다던지 미모를 어필한다던지 하는 것이다. <슈퍼커브> 역시 어느 정도 그러한 면이 존재한다. 특히 중반부부터 등장하는 시이라는 캐릭터가 그렇다. 그럼에도 <슈퍼커브>는 다른 일상, 힐링계 애니메이션들과 비교하면 그다지 캐릭터의 매력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물론 캐릭터 디자인은 모에 풍이긴 하지만, 인물들의 행동거지는 시이를 제외하면 모에와는 거리가 멀다(전문적으로 파고들면 모에와의 관련성을 찾을 수 있겠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모에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

그래서 이 작품은 캐릭터들의 매력을 어필하는 1차적 방법보다 힐링 분위기를 조성하는 2차적 방법에 더욱 치중해 있다. <슈퍼커브>는 이러한 2차적 방법을 실현시키기 위해 연출과 미술, 그리고 음악을 강조하고 있다. 힐링 애니메이션, 특히 여행계 힐링 애니메이션에서는 미술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예를 들면 여러 힐링계 실사 영화들이 아름다운 풍경을 통해 관객들에게 힐링을 선사하는 것과 같다. 여행계 힐링 애니메이션의 대표적인 작품인 <유루캠>도 로케이션을 실사에 가깝게 묘사한 미술의 뛰어난 퀄리티가 입소문을 타면서 인기를 얻게 되었을 정도다. 그만큼 <슈퍼커브>의 미술도 시청자들의 힐링을 충족시켜 주기에 충분히 뛰어난 퀄리티를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뛰어난 미술도 <슈퍼커브>의 좋은 볼거리지만, 이 작품의 진가는 아름다운 연출과 이를 보조하는 클래식 음악 사용에 있다. <슈퍼커브>에는 신기한 연출이 하나 나온다. 주인공 코구마의 감정에 따라 화면의 색감을 조절하는 연출이 바로 그것이다. 작품의 평소 화면은 무뚝뚝하고 차분한 코구마의 성격에 맞추어 칙칙하고 물 빠진 듯한 색감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코구마에게 긍정적인 일이 일어나면 작품의 화면은 따뜻하고 화사한 밝은 색감으로 변화한다. 많은 애니메이션들을 보면서 수많은 감정표현 연출도 함께 봐왔지만, 확실히 화면의 색감을 조절해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는 연출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비슷하다고 해도 대부분의 작품들은 인물들의 감정에 맞추어 색감이 고정되어 있었다. 그만큼 <슈퍼커브>의 화면 활용은 독보적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한편 <슈퍼커브>에는 작품의 잔잔한 힐링 분위기에 맞추어 다양한 클래식 음악들이 사용된다. 드뷔시, 베토벤, 쇼팽, 엘가 등 다양한 클래식 거장들의 음악들이 작중에서 흘러나온다. 이러한 클래식 음악처럼 잔잔한 음악을 삽입해 작품의 대략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 <슈퍼커브>의 연출 기법이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들과 비슷하다는 감상을 담은 글을 읽어보았는데, 확실히 그러하다. 그중에서도 <하나와 앨리스> 연작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연작인만큼 더 자세히 예를 들어보자면 2편이자 프리퀄에 해당하는 로토스코핑 애니메이션 영화 <하나와 앨리스: 살인사건>과 가장 유사하다. 이러한 <슈퍼커브>의 클래식 음악 사용을 보면서 음악은 작품의 분위기를 가장 먼저 결정하는 요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쯤 되면 왜 내가 <유루캠>보다 <슈퍼커브>를 더 좋게 평가했는지 눈치채셨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유루캠>도 좋은 작품이지만, 연출 면에서 <슈퍼커브> 쪽이 더 내 취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유루캠>에서는 캐릭터들의 매력과 힐링 분위기를 모두 챙기기 위해 전자에 적절한 타협이 들어간 연출을 활용하고 후자로는 미술 퀄리티를 강조한다. 반면 <슈퍼커브>는 캐릭터들의 매력보다는 힐링 분위기를 주력으로 강조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유루캠>보다 더 자유롭고 독특한 연출이 등장하고 이를 위한 보조로 활용되는 미술의 퀄리티도 놓치지 않는다. 그 외에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에도 <슈퍼커브>를 좋게 평가한 이유가 있다. <유루캠>처럼 캠핑부를 만들고 우당탕탕 떠드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때로는 홀로, 때로는 함께 잔잔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게 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슈퍼커브>에도 아쉬운 점은 존재한다. 후반부로 갈수록 인물들 간의 우정을 강조하며 스토리가 루즈해지고,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이 벌어지는 것이 그 예시다. 그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이란, 앞에서 이야기했던 작품 속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사건인 '자전거를 타다 강물에 빠진 시이를 코구마가 구하러 가는 것'이다. 강물에 빠져 위험해진 시이는 코구마에게 연락해 도움을 요청한다. 코구마는 이에 잠시 생각한 후 커브를 타고 시이를 구출하는 데 성공한다. 이때 코구마는 저체온증으로 위험한 시이를 커브의 바구니에 앉혀 질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장면은 내게 혼란을 줄 수밖에 없었다. 구급차를 부르지 않고 홀로 시이를 구하러 가는 것도 납득이 가지 않는데, 저체온증으로 위험에 빠진 사람을 마치 바람막이처럼 바구니에 앉히는 것은 더더욱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원작까지 읽어본 사람들의 후기를 여럿 찾아보았고, 어째서 코구마가 이러한 행동을 하게 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원작에 따르면, 코구마가 구급차를 부르지 않고 직접 시이를 구하러 간 이유는 코구마가 시이의 생존확률, 골든타임, 구급차의 도착시간 등을 고려해 자신이 가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한 시이를 바구니에 앉힌 이유는 시이를 뒤에 태우면 오르막길을 오르다 바퀴가 들릴 것이라 판단, 전면부의 하중을 늘리고자 한 것이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이러한 세세한 판단들이 제대로 묘사되어 있지 않아서 결국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이 나오고 말았다. 짤막한 독백으로라도 표현했다면 납득할 수 있는 장면이었을 텐데 말이다.

그럼에도 <슈퍼커브>는 좋은 애니메이션이었다. 아름다운 음악과 미술을 통해 구현되는 연출을 통해 영상미를 중점으로 보는 사람도, 잔잔한 분위기의 힐링을 느끼고 싶은 사람도, 일상물을 좋아하는 사람도 전부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을 <슈퍼커브>는 가지고 있다. 힘든 일상에 지쳤다면, 한 번쯤 시청해 볼 가치는 충분히 있다. 작품에 몰입하다 보면 어느새 당신도 소녀들과 함께 슈퍼커브를 타고 곳곳을 여행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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