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오드 택시

나가레보시 2021. 10. 13.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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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 택시(2021)

(영상으로도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qXT77R4tVMc)
<SSSS.DYNAZENON>을 봤을 때, 나는 만점을 날리면서 생각했다. "올해의 만점 애니메이션은 <SSSS.DYNAZENON>으로 끝이다." 나의 이런 바보 같은 생각은 완벽하게 빗나가고 말았다. 더 웃긴 것은 <SSSS.DYNAZENON>과 같은 2021년 2분기에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 이 생각을 완벽하게 깨부쉈다는 것이다. 앞으로 이런 예측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오늘 리뷰할 애니메이션 <오드 택시>는 완벽에 가까운 뛰어난 각본과 이를 보조하는 서스펜스 연출로 만들어진 사회고발물이자 스릴러물이며, 이와 동시에 인간의 깊은 심연 속의 심리를 들추어내는 작품이다.

사회고발물
먼저 말해두도록 하겠다. 이 애니메이션은 사회 고발이 메인인 작품이 아니다. 그럼에도 사회 문제를 고발하고 풍자하는 요소들이 꽤 많이 들어있는 것은 사실이다. 애니메이션 <오드 택시>는 도발적이고 깊숙하게 일본 내의 사회 문제에 대해 고발, 풍자하고 있다. 야쿠자 같은 범죄 조직 문제만 빼면 옆 나라인 한국에서도 골머리를 썩히고 있는 문제들이기도 할 만큼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문제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러한 문제들은 사회적이지만은 않다. 시청자 자기 자신도 "나도 그런 적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개인적인 문제들도 충분히 존재하고 있다.

초반에 등장하는 사이버 렉카 캐릭터 카바사와 타이치는 SNS의 문제점을 그대로 보여준다. 자존심은 강하지만 현실은 그다지 좋지 못하니 SNS에서 관심을 받으려 하고, 결국 여러 가지 문제들을 일으킨다. 감독과 각본가는 이 모습을 의도적으로 불쾌하게 연출해서 SNS를 통하여 주로 이루어지는 다양한 어그로나 사이버 렉카를 통해 금전적인 수익을 올리고 사회를 어지럽히는 사람들을 풍자한다. 더 나아가 해석해보면 SNS를 통해 비치는 자신의 겉모습만을 가꾸고 내면은 변화시키려 하지 않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풍자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도 많은 SNS 인플루언서들이 외면의 멋진 모습과는 별개로 내면의 문제들이 들통나 나락 가는 모습이 종종 비치니 말이다. 이는 유명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반인들 중에서도 SNS에는 자신의 멋진 외면을 게시해두어도 내면에는 이런 멋진 모습과는 반대인 자기 자신을 비관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알려져 왔다.

이 작품은 범죄 조직의 활개와 공권력의 부패 같은 흔히 떠오르는 사회적 문제들도 담고 있다. 일본은 특히 야쿠자라고 불리는 범죄 조직들이 연예계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작중에 등장하는 미스터리 키스라는 아이돌 그룹의 소속사도 야쿠자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고, 소속 멤버들을 꽃뱀으로 이용하기까지 한다. 이런 야쿠자들의 뒤를 봐주는 것이 경찰인 다이몬 형제 중 형이다. 고아였던 그에게 도움을 준 사람에게 보답하는 것이라고는 해도 야쿠자와 결탁해 범죄 행위를 돕거나 눈감아주는 것은 명백한 범죄이다. 사정을 알고 보면 부패라고 보기에는 살짝 어려운 감이 있기는 하지만, 표면적으로 보면 이 또한 공권력의 부패를 꼬집으려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뛰어난 각본과 이를 뒷받침하는 훌륭한 연출
이 애니메이션의 각본은 매우 뛰어나다. 많은 명작 애니메이션들이 좋은 각본과 연출이 어우러져 만들어진다면, 이 작품은 각본이 독주하고 연출은 이를 보조하면서 명작이 된 케이스다. 그렇다고 해서 연출이 별로라는 것은 아니다. 이 작품의 연출만 따로 뽑아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 보아도 절대 꿇리지 않을 정도의 서스펜스가 작품 곳곳에서 드러난다. 다만 각본의 퀄리티가 좋은 연출보다도 월등히 높을 뿐이다. 따라서 각본이 장르적인 긴장감과 재미를 모두 담당하는 보기 힘든 작품이 되었다.

이 애니메이션은 기본적으로 스릴러가 메인 장르인 작품이다. 따라서 시청자가 작품에 계속 집중할 수 있도록 긴장감을 상시 유지시켜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긴장감을 서스펜스라고 하는데, 대부분의 작품들에서는 서스펜스를 연출을 메인으로 두고 각본을 통해 보조하는 식으로 표현한다. 이를 서스펜스 영화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말을 빌려 설명해보도록 하겠다.

네 사람이 포커를 하러 방에 들어갑니다. 갑자기 폭탄이 터져 네 사람 모두 뼈도 못 추리게 됩니다. 이럴 경우 관객은 단지 놀라기만 할 뿐이죠. 그러나 나는 네 사람이 포커를 하러 들어가기 전에 먼저 한 남자가 포커판이 벌어지는 탁자 밑에 폭탄을 장치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네 사람은 의자에 앉아 포커를 하고 시한폭탄의 초침은 폭발 시간이 다 되어갑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무의미한 대화도 관객의 주의를 끌게 되죠. 관객은 "지금 그런 얘기를 할 때가 아니야. 조금 있으면 폭탄이 터질 거라고!"라며 외치고 싶은 심정이 되니까요. 폭탄이 터지기 직전 게임이 끝나고 일어서려는데 그중 한 사람이 말하죠. "차나 한 잔 하지." 바로 이 순간 관객의 조바심은 폭발 직전이 됩니다. 이때 느끼는 감정이 서스펜스라는 겁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이냐면, 사전적인 기반, 즉 흔히들 이야기하는 빌드업 없이 사건을 터뜨리면 사람들은 '아, 폭탄이 터졌구나'라며 기계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하지만 미리 시한폭탄이 설치되는 모습과 초침이 돌아가는 모습을 연출해 두고 각본을 통해 이를 모르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대화들을 삽입하며 '폭탄이 곧 터질 텐데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야!'라는 긴장감을 유발하게 만드는 것이 서스펜스라는 것이다. 하지만 <오드 택시>는 이러한 서스펜스를 각본을 통해 유발한다.

물론 연출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기존의 서스펜스 작품들에서 분위기를 잡아주는 게 각본이었다면, 이 작품은 반대로 연출이 분위기를 잡아주고 있다. 연출을 통해 긴장감과 복선을 조성하면, 캐릭터들의 대사들이 서스펜스를 이끌어간다. 예를 들어, 주인공 오도카와가 어떠한 작전을 펼치는 것을 대사로 읊으면서 이를 보조하는 연출(이동 경로를 나타내는 지도 같은)이 들어가면서 '그 작전이 들키지 않고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긴장감, 즉 서스펜스가 유발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서스펜스가 무너지지 않고 마지막화까지 무사히 이어졌다는 것은 각본의 힘이 대단했다는 방증이다. 물론 모든 서스펜스 장면들이 각본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고, 연출로 이루어지는 일반적인 서스펜스도 훌륭한 수준이다. 특히 오도카와가 모든 악을 단죄하기 위해 협력 관계인 도부의 범죄 행위를 유도하고 증거를 수집하는 장면들은 정말 긴장된다.

지금까지 서스펜스와 관련된 각본 이야기만 주구장창 했지만, 각본이 이런 데에만 쓰이면 당연히 좋은 작품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은 오도카와와 그와 엮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각자 전개되는 군상극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결국 어느 정도는 메인 스토리에서 벗어나 다른 이야기들이 전개된다는 것인데, 이는 전혀 어색하지 않다. 오히려 각각의 이야기들이 모두 주인공 오도카와와 연결되면서, 적재적소에서 활용되고 반전을 주면서 시청자를 즐겁게 만든다.

이러한 연결들이 정말 치밀하게 짜여있는 각본이기 때문에 이 리뷰에서 이야기하기에는 힘들지만, 이 작품을 전부 시청하신 분들은 공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엄청나다. 이를 함축하는 장면이 바로 마지막화에서 오도카와가 물속으로 빠지는 장면이다. 오도카와가 바다로 빠지면서, 동시에 그와 연관된 다른 사람들의 내면을 담은 장면들이 교차되는 연출이 나온다. 이러한 장면들은 이전에 나왔던 장면이거나 대사로 지나갔던 것을 영상화한 것들이다. 이 장면이야말로 왜 굳이 이 장면을 삽입했는지, 왜 이런 대사를 쳤는지 비로소 깨닫게 되는 작품 최고의 명장면이다. 여기서 또 알 수 있는 것은 이 작품은 각본이 너무 뛰어날 뿐, 연출도 절대 꿇리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인간 내면의 어둠들
드디어 이 작품의 진정한 주제를 이야기할 때가 왔다. 이 애니메이션은 현대인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존재하고 있는 어둠들을 파헤치고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 오도카와부터 그의 주변인, 그 외에 사건에 관련된 대부분의 인물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어둠이 존재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오드 택시>는 깊숙한 심연에 잠들어있는 이 어둠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탐구하고, 해소시킨다.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도 어둠은 존재할 것이다. 있는 가득 허세를 부려보지만 실은 속 빈 강정이라던가, 겉으로는 친하게 지내지만 뒤에서는 저 녀석만 잘 나가는 게 질투가 난다던가 하는 것 말이다. <오드 택시>에서는 이 어둠들이 심화되면서 사건이 일어난다. 방금 말했던 어둠이 그 예시다. 오도카와의 친구 카키하나가 전자에 속한다. 그는 소득이 많지 않지만 야쿠자에게 돈을 빌리면서까지 만남 어플에서 만난 미스터리 키스의 멤버 시호에게 허세를 부리다 꽃뱀에 당한다. 미스터리 키스의 멤버 루이는 후자에 속한다. 그녀는 자신을 제치고 센터를 맡게 된 멤버를 질투하다 확실히 끝맺기 위해 그녀를 불러낸다. 하지만 그녀는 죽어있었고, 결국 야쿠자와 결탁해 시신을 유기하는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이처럼 어둠이 심화되고 증폭되는 것은 위험한 현상이다. 이 작품은 이러한 현상으로 인해 몰락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어둠도 심화되고 있는 중은 아닌지 돌아보게 만든다. 어둠의 폭주를 막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경계해야 한다. 올바른 인간관계를 쌓고 자신의 단점과 약점을 인정하면서 이를 보완하고 고쳐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사는 것이야말로 이에 가장 들어맞는 방법일 것이다.

총평
애니메이션 <오드 택시>는 수많은 사건들이 독립적으로 흥미진진하게 진행되다 서서히 합쳐지면서 클라이맥스에 이르는 과정이 완벽 그 자체라고 보아도 무방한 미스터리 스릴러 군상극 애니메이션이다. 극을 이끄는 뛰어난 각본, 이를 뒷받침하는 연출에 거대한 반전까지 흠잡을 곳 또한 하나도 없다. 개인적 생각으로 <오드 택시>는 <SSSS.DYNAZENON>과 함께 올해 최고의 애니메이션이라 불러도, 더 나아가 일본 애니메이션의 역사에 남을 것이라 해도 손색없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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