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사신 도련님과 검은 메이드

나가레보시 2021. 9. 21.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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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 도련님과 검은 메이드(2021)

(귀찮으신 분들은 영상으로 시청해 주세요 https://youtu.be/MBxyIMQty54)

일본 애니메이션 장르들 중에 가장 흔하고 많이 만들어지는 장르를 꼽으라면 단연 로맨스 애니메이션을 꼽을 수 있다. 로맨스 애니메이션도 만들어진지 몇십 년은 지났을 정도로 오래되었다 보니, 수많은 하위 장르들을 낳기도 했다. 이 중에서 가장 많이 만들어지는 장르는 러브 코미디로, 일본산 로맨스 애니메이션의 거의 대부분이 러브 코미디라 보아도 좋을 정도다. 요즘은 특히 하렘 러브 코미디가 많이 만들어지는데, 그렇다 보니 <5등분의 신부>처럼 정말 하렘의 정석인 작품이 있기도 한 반면(보다 끄긴 했지만) 아예 미친 건가 의문이 드는 <여친, 빌리겠습니다>처럼 아예 주인공이 4명의 히로인들을 렌탈하는 작품이 존재하기도 한다(이건 1화부터 정말 역겨워서 꺼버렸다). 반면 이 작품은 러브 코미디의 공식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작품을 구성하는 메인은 로맨스 애니메이션의 고전 중 고전인 순정 장르다.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이 확실히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메리트가 있을지 의문을 가지며 작품을 시청하게 되었다. 그 의문은 1화 만에 사그라들었다.

3D
이 작품의 감독인 야마카와 요시노부는 2018년 作 애니메이션 <하이스코어 걸>부터 3D CG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왔다. 그래서 이번 작품인 <사신 도련님과 검은 메이드>도 CG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다. 2D 그림과 배경이 주축인 셀 애니메이션이 주류이고 3D CG는 배경이나 소품 등에만 주로 사용되는 일본 애니메이션에는 유명 CG 애니메이션이 <Bang Dream!> 시리즈 정도이고, 앞으로 만들어질 대형 작품에는 <아이돌 마스터 밀리언 라이브!> 정도가 있다. 즉, 유명 CG 애니메이션의 대부분이 정확한 움직임을 표현해내야 하는 유명 아이돌 애니메이션 시리즈뿐이다. 그래서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로맨스 만화인 <사신 도련님과 검은 메이드>가 CG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것에는 어쩔 수 없이 걱정을 가진 채 시청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걱정은 기우일 뿐이었다. 3D 모델링의 외관과 움직임의 퀄리티는 꽤나 상당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3D 모델링의 약점인 2D 그림보다 떨어지는 표정 묘사와 이로 인한 감정 묘사의 어려움도 어느 정도 극복해 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약점을 극복한 모습이 꽤나 흥미롭기도 하다. 애니메이션의 장르가 로맨스이다 보니 필연적으로 주인공 남녀가 서로를 향해 애정을 표현하는 대사들이 많이 나오는데, 이를 이용해서 표정보다는 홍조와 같은 CG 효과들을 강화, 대사를 들은 캐릭터들에게 적용하여 부족한 표정 묘사라는 단점을 커버하고 주인공들의 애정 표현은 더욱 강조하는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보니 내가 <Bang Dream!> 애니메이션 시리즈에서 부실한 각본과 함께 아쉬워했던 3D 모델링이라는 한계로 인한 주인공들의 제대로 된 감정 묘사 부족이라는 단점이 이 작품에서라도 커버되어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다.

물론 이 작품 속 3D 모델링의 장점이 감정 묘사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바로 위에서 짤막하게 말했던 3D 모델링의 외관과 움직임, 그리고 뛰어난 연출가들의 실력이 합쳐진 원작 속 장면들의 멋진 재현도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달빛 아래에서 도련님과 앨리스가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의 연출과 3D 모델링의 움직임은 상당한 수준의 퀄리티를 보여주고, 호수에서 쪽배를 타고 유성우를 구경하러 가는 시퀀스의 연출도 정말 인상 깊었다.

과정은 없어도 두근거리고 재미있는 이야기
위에서 신나게 작품 속 3D CG의 퀄리티와 연출을 칭찬했지만, 작품의 메인인 로맨스 또한 정말 칭찬할 만하다. 보통의 로맨스 장르를 표방하는 작품들에서는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이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면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사랑을 키워나가며 끝내 연인이 되는 스토리 구조를 보여주고, 시청자들은 이 과정을 보며 두 주인공을 응원하고 두근거림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은 이미 1화에서부터 서로의 마음을 쌍방으로 확인하고 결혼까지 약속한 사실상 연인이자 준 부부의 관계라고 해도 무방하다. 즉,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과정에 있는 주인공들을 응원할 수도 없고, 이를 통해 느낄 수 있는 두근거림도 이 작품에서는 느끼기 어렵다.

하지만 이러한 작품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이는 전혀 단점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주인공들을 응원할 수도 있고 이를 통한 두근거림도 전부 느낄 수 있다. 바로 남주인공이 어릴 적 받은 저주라는 설정 덕분이다. 남주인공인 '도련님'은 어릴 적 마녀에 의해 생명체가 자신의 몸에 닿으면 죽어버리고 마는 저주를 받고 말았다. 이는 식물, 동물, 인간 모두 관계없이 적용되는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저주다. 여주인공 '앨리스'는 이런 도련님의 저주를 알면서도 그를 사랑하고, 도련님은 사랑하는 앨리스의 손도 한 번 잡아보지 못하는 것에 때때로 무력감을 느끼지만 그녀와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이러한 모습에서 시청자들은 주인공들을 응원하게 된다. 하루빨리 도련님이 저주를 풀고 앨리스의 손을 잡을 수 있기를 응원하는 것이다.

이런 애타는 두 주인공들의 관계에서 시청자들은 두근거림을 느끼게 된다. 특히 위에서 말했던 달빛 아래에서 도련님과 앨리스가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이 이를 가장 극대화시켜 놓았다. 도련님이 앨리스에게 지나가는 말로 춤을 권하고, 앨리스는 더 정중한 부탁이 아니라면 그럴 수 없다고 거절하며, 이에 도련님이 정중하게 춤을 권하며 시작되는 춤의 전조 과정부터 일단 굉장히 두근거린다. 이후 시작되는 도련님과 앨리스의 춤은 정말 애절하면서도 두근거리는 장면이다. 도련님은 마녀가 건 저주로 인해 앨리스의 손을 맞잡을 수 없고, 그 때문에 두 사람은 손을 맞잡는 시늉만 하며 달빛 아래에서 춤을 춘다. 시청자들은 사랑하면서도 손 하나 맞잡고 춤을 출 수 없는 두 주인공들의 모습에 애절함을 느끼지만, 로맨틱한 분위기도 함께 느끼게 되는 것이다.

물론 애절하기만 해서는 당연히 재미를 느낄 수 없다. 따라서 평범하게 도련님과 앨리스가 알콩달콩 꽁냥 거리는 장면들이 애절한 장면들보다 압도적으로 많이 존재한다. 도련님과 앨리스에게는 시도 때도 없이 서로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 일상이나 다름없다. 특히 앨리스는 상당히 다양하고 왜곡된 방법으로 도련님을 괴롭히며 사랑을 고백하고, 때로는 생각지 못한 도련님의 고백에 남몰래 얼굴을 붉힌다. 이 애니메이션 내용의 거의 대부분이 이런 일상을 다루고 있는데, 지루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다양한 조연들이 등장하여 도련님과 앨리스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많은 코미디 분야까지 해결해준다. 앨리스가 별저에 오기 전부터 도련님을 맡아 온 집사 롭, 도련님들의 친동생들인 비올라와 월터, 새로 사귀게 된 마녀 친구들인 카프와 자인까지 허투루 쓰이는 조연들은 거의 없고 각자의 파트에서 작품을 빛낸다.

총평
애니메이션 <사신 도련님과 검은 메이드>는 정말 재미있는 순정 러브 코미디 애니메이션이다. 코미디의 일정 부분이 내가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성적 어필이나 드립으로 이루어져 있기는 하지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영화 <날씨의 아이>처럼 아예 재미가 존재하지 않는 수준도 아니고, 성적 어필보다 도련님과 앨리스의 사랑을 다루는 파트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단점으로 볼 수는 없다. 또한 귀족과 메이드라는 신분의 차이와 타인에게 손 하나 댈 수 없는 마녀의 저주라는 시련과 아픔을 극복해나가는 이야기로도 흥미진진하게 시청할 수도 있으며, 항상 혼자였던 도련님이 롭과 앨리스에게 마음을 열고, 더 나아가 동생들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면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기도 하는 등 성장물로도 해석할 여지가 있다. 내가 올해 최고의 로맨스라고 평가했던 <SSSS.DYNAZENON>이 두 남녀의 아픔이 사랑으로 발전하는 이야기라면, 이를 뒤따르는 작품 <사신 도련님과 검은 메이드>는 두 남녀의 뜨거운 사랑이 아픔마저 불태우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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