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직접 보고 이를 고발하려는 남편과 죄를 간접적으로 보고 고발에 동조하려는 아내가 있다. 아내는 남편의 안전과 꿈을 위해, 남편은 아내의 안전과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서로를 배신한다. 재미있는 것은 아내 사토코의 배신은 정말 남편을 위해서임이 드러나지만, 남편 유사쿠의 배신은 자신의 계획을 이루는 겸에 아내의 안전까지 확보해 낸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이를 알 수 있는 것은 붙잡힌 경찰서에서라도 죄를 폭로하고자 작동시킨 영사기에서 나온 두 사람이 놀이 삼아 찍은 단편 영화다. 여기서 사토코는 총에 맞아 죽는(배신당하고 체스 말로 쓰이는) 역할이다. 여기까지 전부 계획이란 걸 단편 영화를 통해 보여주는 셈이다. 남편이 아내를 배신하고 이용한 이유는 유사쿠는 범죄를 직접 봤지만, 사토코는 간접적으로 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직접과 간접의 차이는 크다. 예를 들면 이 영화를 직접 본 내가 느끼는 것과 영화를 보지 않고 이 글을 읽은 사람이 느끼는 것의 차이는 크다.
유사쿠는 군국주의와 전체주의에 반감을 가진 인물이다. 그렇기에 죄를 직접 목격하자 곧바로 이를 고발해 일본 제국을 멸하고자 한다. 하지만 사토코는 당대의 일본인처럼 대본영에 의해 알게 모르게 통제받던 인물을 상징하고 있다. 일례로 그녀는 필름을 보기 전까지 일본을 멸해 정의를 실현하려던 남편에게 '동포 수만이 죽어도 그것이 정의인가요?'라고 반문한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자신과 남편의 안위, 행복을 걱정하는 현명하다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좋은 아내이기도 하다.
좀 길어졌지만, 얼마 전까지 왜곡된 정보를 믿고 살아온 일본인인 사토코가 간접적으로 죄의 실체를 목격했다고 해서 그녀가 애초에 군국주의에 반감을 갖고 있던 남편처럼 갑자기 정의감에 불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밀항 계획을 세울 때도 그녀는 남편과 함께 일본 제국이라는 악을 처단하는 것에 정의감을 느낀 것이 아니라 남편과 함께 안전한 미국으로 떠나는 것에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녀는 얼마 전까지 해도 정의보다 행복을 중시하던 인물이었다.
결국 병원에 수감된 사토코는 면회 온 지인 교수에게 난 미치지 않았지만 이 나라에선 미쳤다며 일본을 돌려까고, 그날 밤 공습을 목격한다. 그녀는 비로소 남편이 죄를 보고 느꼈을 감정과 똑같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병원을 뛰쳐나와 도착한 바다에서의 그녀의 울음은 일본의 죄를 간접적이나마 목격했음에도 제대로 알아채지 못했음과, 이를 고발하는 계획마저 실패했음과, 사랑하던 남편마저 계획에 실패하고 떠나버렸음에 대한 울분이었으리라.
영화 <스파이의 아내>는 제국의 악행을 직접 목격하고 멸하고자 하는 남편과 악행을 간접적으로 목격하고 가족의 행복을 위해 계획에 동조하는 아내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를 통해 영화는 직접과 간접의 차이, 그리고 침묵의 부끄러움과 울분을 토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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