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신체능력을 강화시켜주는 '생명섬유'로 만들어진 극제복을 입고 학교를 지배하는 키류인과 이에 맞서 자아를 가진 신의 선혈과 함께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는 소녀 류코의 이야기를 그리는 킬라킬은 지극히 왕도적인 클리셰가 사용되었다. 그러나 매력적인 세계관과 캐릭터들, 고퀄리티의 작화는 앞으로의 전개가 어떻게 될지 예측이 가능하면서도 손을 쥐고 흥미진진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만든다. 그리고 밝혀지는 반전은 전율 그 자체였다.
반전 이후 스토리는 끝을 향해 달려간다. 전 지구를 생명섬유로 덮은 뒤 폭발시켜 이들을 번식시키기 위해 세상을 지배하려고 하는 자와 인간의 자유를 위해서 모든 것을 숨긴 채 악당 코스프레를 하며 진짜 악당에게 반기를 들려고 하는 자가 있다. 그 중심에는 처음에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는 자신의 개인사를 위해 싸우다 나중에는 자신을 지켜봐 주는 모두를 위해 싸우기로 결심한 주인공 류코가 있었다. 그녀는 동료들의 응원과 도움들을 등에 업고 자유를 쟁취하는 데 성공한다.
극제복, 이름에서도 알 수 있고 작중 설명에서도 '군대'에서 입는 옷이라고 강조한다. 즉, 과거 일본의 군국주의와 파시즘의 냄새가 솔솔 풍겨온다. 실제로 생명섬유가 전 세계를 하나의 고치로 만들어 번식이라는 지극히 자신들만을 위한 일에 사용하겠다는 계획은 전체를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파시즘과 유사하다. 주인공 일행은 이에 반해 인간 개개인의 자유를 위해서 싸운다. 킬라킬은 파시즘이라는 극악무도한 사상을 전면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셈이다. 자칫하면 무겁게 변할 수도 있는 주제를 유쾌하게 풀어나간 것은 칭찬할 점.
옷에게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 옷을 벗는다는 컨셉 때문에 애니가 전반적으로 꽤나 선정적인데, 한술 더 떠서 다른 애니(주로 뽕빨물이라는 멸칭으로 부르는 저급 애니들)들이 여성 캐릭터만 벗긴다면, 킬라킬은 남성 캐릭터들도 주저 없이 벗긴다. 그래서 초반에는 불쾌감(옷을 아무때나 벗어버린다는 생리적인 불쾌감)이 꽤 있었지만 갈수록 옷을 벗는 이유가 자유를 위해서라는 설정이 공개되고, 캐릭터들이 진정 자유를 위해 행동하기 시작하면서 불쾌감은 사그라들었다. 정말 불쾌한 소재인데도 불쾌하지 않고 오히려 유쾌한 작품으로 탈바꿈시킨 데다가 좋은 교훈까지 남기다니, 칭찬할 곳이 너무 많아서 감도 잡을 수 없을 정도다. 작화 면에서도 저예산 티가 나지 않고 오히려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카나다 요시노리 풍의 그림을 적게 쓰는 대신 그림들을 변형시켜 역동적인 작화를 만들어내는 기법을 사용해 그림이 적은 게 티는 나지만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잘 어울렸다.
각각의 개체가 전부 하나가 되어 전지전능한 개체를 퍼뜨리자는 주장에 굴복하지 않고 인간의 자유를 위해 무릎 꿇지 않는 주인공들은 마치 파시즘에 저항하는 투사처럼 보인다. 세일러복은 졸업해야 한다는 마지막 말처럼, 킬라킬이 하고 싶었던 말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살아가며 자신과 함께하던 가장 소중한 추억들에서 졸업해 더 멋진 세상으로 나아가라는 말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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