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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들이 분홍빛으로 물든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어떤 곳에도 섞이지 못하는 잿빛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애니메이션 '빙과'는 여러 색을 가진 인간군상을 담은 씁쓸하고도 달콤한 초콜릿의 맛을 가진 애니메이션이다.
애니메이션 '빙과'는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애니메이션의 존재를 알기 전에 1권 '빙과'만 읽어 본 적이 있는데, 특유의 씁쓸한 전개가 기억에 남아서 애니메이션을 볼 때 이 분위기를 잘 살릴 수 있을까 괜한 걱정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말 그대로 괜한 걱정이었다. 애니메이션 빙과는 정말 잘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일뿐더러, 2010년대 최고의 애니메이션들 중 하나라고 해도 그리 억지가 아닐 것이다.
교토 애니메이션의 뛰어난 작화 실력과 故 타케모토 야스히로 감독의 독창적인 연출은 빙과를 한 층 더 신비하게 만들어준다. 특히 호타로가 단독으로 추리하는 장면의 연출은 다 뽑아서 연구해도 될 정도다.
감정 연출, 카메라 워크, 색감 등의 부차적인 요소들도 메인 연출을 잘 살려주고 있으며, 이러한 부수적인 요소들이 가장 잘 어우러진 회차가 '수제 초콜릿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회상 장면의 색감은 마치 마녀가 실험체를 협박하는 듯한 인상을 주어 해당 회차의 주역인 마야카와 사토시의 성격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으며, 초콜릿을 훔친 범인이 사토시라는 것이 밝혀지는 장면에서는 사토시가 초콜릿을 내려치는 장면과 초콜릿이 부서지기 직전 화면이 전환되어 호타로가 분노하여 땅을 밟는 장면을 빠른 카메라 전환으로 화면에 담아 사건의 범인과 호타로의 감정을 동시에 연출해 내었다.
원작의 에피소드들을 적절히 각색한 것도 큰 장점으로 다가온다. 선을 넘은 다수의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을 희생한다는 내용을 담은 빙과 에피소드,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을 뛰어넘을 수 없었다는 학교 축제, 밸런타인 초콜릿 에피소드 등 원작은 작품 전반에 씁쓸한 기운이 감돈다(청춘물이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애니보다 씁쓸한 면이 더 강조된다).
그러나 애니메이션 판 빙과는 이러한 씁쓸한 원작의 에피소드들을 원작의 재해석으로 만들어 낸 매력적인 캐릭터들, 보기 힘든 독특하고 신비한 연출을 조합하여 씁쓸한 맛도, 달콤한 청춘의 맛도 함께 느낄 수 있게 만들어졌다. 이는 시청자들이 작품에서 이탈하지 않고 계속 즐길 수 있도록 만든다.
애니메이션 '빙과'는 10대들의 인간군상을 몽환적으로 표현해 낸 달콤한 청춘물이자, 다양한 색을 지닌 인간이라는 존재의 심연을 끝없이 파헤치는 씁쓸한 추리극이자 군상극이기도 하다. 빙과를 한 줄로 평하라면 '달콤하고도 씁쓸한 초콜릿의 맛'이 가장 어울릴 것이다.
(개인적으로 빙과를 재미있게 즐기려면 애니화 된 에피소드들이 나와있는 원작을 먼저 읽고 보는 걸 추천한다. 원작을 먼저 읽고 애니메이션을 본 뒤, 애니화 된 부분과 되지 않은 부분들을 전부 다시 읽어보면 몰입이 정말 잘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