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부인 태평양 전쟁이 끝나가고 있던 1945년, 미군은 일본군의 주요 거점이었던 이오지마를 점령하여 일본의 숨통을 조이고자 한다. 이를 막기 위한 일본군도 전투를 준비하고, 태평양 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이오지마 전투 전까지 일본군은 전투다운 전투는 거의 해 본 적이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반자이 돌격과 대전차 총검술 같은 엽기 전술에 조악한 품질의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을 미군이 일방적으로 압도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오지마 전투에서의 일본군은 달랐다. 이오지마 전투의 사령관으로 부임한 쿠리바야시 타다미치는 전투에서 패배할 것을 상정하고 최대한 버텨 미군을 괴롭혀서 협상을 이끌어 낸다는 발상을 한다.
쿠리바야시는 이를 위해서 미군이 상륙하기 전까지 가스가 새어 나오는 위험한 지형을 개척하여 지하 벙커를 구축하고 병사들에게 반자이 돌격을 금지시키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한다.
한편 일본군이 전부 거기서 거기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미군은 이오지마도 손쉽게 점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필사적으로 미군을 저지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움직이는 일본군이었다.
그 결과 며칠 만에 끝날 것으로 생각했던 이오지마 전투는 2월 19일부터 3월 26일까지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이어진다. 그동안 생지옥을 맛본 미군은 일본 본토까지 쳐들어가 일본이라는 국가를 아예 소멸시키려고 했던 '몰락 작전'을 재고하게 되며, 이는 쿠리바야시가 생각했던 협상이 아닌 원자폭탄의 사용으로 이어진다.
그 뒤로는 모두 알다시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일본은 항복한다.
이러한 이오지마 전투를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영화화한 것이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이다. 자매작인 '아버지의 깃발'이 이오지마 전투에서 돌아온 미군을 조명했다면, 이 영화는 이오지마 전투를 치르던 일본군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많은 사람들이 제2차 세계대전기의 일본군을 떠올리면 천황에게 목숨을 바치는 군대, 죽음조차 불사하고 적진에 뛰어드는 광기를 가진 집단이라고 생각하고 실제로도 그러한 면이 있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그들 또한 천황을 위해 죽는 것이 아닌 무사히 살아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길 원하는 인간이었다고 말한다. 작중에서 쿠리바야시 사령관은 말한다. '참 이상하지. 가족을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우겠다고 다짐했건만, 가족을 생각하면 다짐이 흔들리니 말이야.'
영화는 이러한 아이러니를 계속해서 조명한다. 그러나 결국 죽음을 두려워하고 가족을 그리워했던 이오지마의 일본군은 일본이라는 국가에 사는 자신들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 돌격을 감행한다. '나는 항상 제군들 앞에 설 것이다'라고 말했던 쿠리바야시가 선봉에 선 마지막 돌격에서, 일본군은 전멸한다.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 장면에서 발굴 현장이 비추어지는데, 발굴 현장은 바로 1945년, 이오지마에서 있었던 마지막 돌격 전 주인공이 쿠리바야시의 명령으로 벙커에 남아 묻었던 수많은 편지들이었다.
모두 살아남아서 집으로 돌아가 가족을 만나고 싶었지만, 결국 모두 전사하여 돌아가지 못했다는 것을 부쳐지지 못하고 땅 속에 묻혀버린 수많은 편지들에 비유한 것이다. 제목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도 전사하여 돌아오지 못한 수많은 병사들이 남긴 마지막 편지를 의미한 것이었다.
일본군은 분명 최악의 집단이다. 그러나 그 집단 내의 개개인을 파고들다 보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도, 마음씨 좋은 병사도, 병사들을 아끼는 명장도 있었다. 영화는 이들을 조명하며, 전쟁의 참혹함을 널리 퍼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