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으로도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ErboVq0BOZ0)
지난 2019년 7월, 교토 애니메이션은 전대미문의 방화를 당했다. 일본국 성립 이래 최대 방화 피해였으며, 쿄애니는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교토 애니메이션은 무너지지 않았다. 바이올렛 에버가든 외전을 성공적으로 발표한 데에 이어 극장판 바이올렛 에버가든까지 발표, 흥행에 성공하며 쿄애니는 무너지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오늘은 교토 애니메이션 부활의 신호탄이 된 작품, <극장판 바이올렛 에버가든>을 리뷰하고자 한다.
TV 애니메이션 <바이올렛 에버가든>이 주인공 바이올렛이 의뢰인들의 사연을 듣고 편지를 쓰며 감정에 대해 알아가고, 이로 인해 뒤늦게 떠오른 트라우마로 인해 고통을 받지만 이를 극복해 나감과 동시에 반전주의(反戰主義)를 강조하는 작품이었다면, 극장판은 철저하게 바이올렛과 길베르트의 재회와 결합을 다루고 있다. 물론 반전주의도 은근히 내포되어 있다.
바이올렛은 이제 감정을 알았다. 동료들과 농담을 주고받기도 하고, 길베르트의 형인 디트프리트와도 이야기를 편히 주고받으며 길베르트를 추억하기도 한다. 휴일임에도 병에 걸려 죽어가는 소년을 무시하지 않고 의뢰를 들어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아직 길베르트에 대한 그리움의 감정이 가슴 깊이 남아있었다.
결국 길베르트가 살아있었음을 안 바이올렛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 길베르트에게 애원하지만, 자신이 바이올렛을 전쟁터로 보내버린 탓에 그녀가 사람다운 삶을 살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길베르트는 바이올렛을 매몰차게 내쫓는다. 설상가상으로 병이 악화되어 죽어가는 의뢰인 소년 유리스의 소식이 들려오고, 바이올렛은 악천후에도 돌아가 마지막 의뢰를 끝내야 한다며 슬퍼하기도 한다.
다행히 일은 마무리되고, 바이올렛은 길베르트가 살아있고 목소리만이라도 들었으면 된 것이라며 자신을 키워주고 사랑을 알려준 길베르트에게 이별의 편지를 보내고 돌아가려 한다. 그리고 이를 본 길베르트가 바이올렛을 붙잡으며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를 보며 생각했다. 왜 유리스에 대한 이야기를 넣었을까? 답은 간단했다. 사랑과 약속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길베르트에 대한 사랑과 유리스와의 약속 사이에서 갈등하는 바이올렛을 통해 감정의 극대화를 보여준 것이다. 유리스 에피소드도 감동적이었기에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마지막 길베르트와 바이올렛의 재회 장면은 감정 묘사가 과잉되어 어색하기도 했다.
또한 멜로 장르이면서도 반전주의와 트라우마의 비극을 은근히 내포시킨 점도 좋았는데, 작중 한 노인이 '놈들이 미웠지만, 싸우다 보니 둘 다 피해를 입었다'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을 통해 전쟁을 누가 시작하든, 나중에는 이유를 잊고 서로가 서로를 잔혹하게 죽고 죽이는 싸움만이 남는다는 전쟁의 피해를 잘 묘사했으며, 디트프리트가 바이올렛의 리본을 돌려주려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자 바이올렛이 권총을 뽑는 줄 알고 반사적으로 디트프리트를 공격하는 장면에서는 전쟁이 끝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트라우마는 잊히지 않는 비극이라는 것이 제대로 와닿았다.
이 외에도 생각해 본 것이 있었다. 메인 주인공은 바이올렛과 길베르트지만, 진주인공은 하진스와 디트프리트가 아니었냐는 것이다. 하진스는 TVA에서부터 마치 아버지처럼 바이올렛을 챙겨주고, 극장판 내에서도 바이올렛을 딸처럼 생각하고 과보호하는 장면이 나오며 바이올렛은 그런 하진스에게 마치 딸처럼 투정 부리는 장면도 나온다.
후에 바이올렛이 길베르트에게 떠나고 동료들과 불꽃놀이를 구경하던 하진스가 평소였으면 그의 옆에 있었을 바이올렛을 자연스럽게 찾다가 그녀가 없음에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기도 하는 등, 하진스는 <바이올렛 에버가든>의 주제이기도 한 사랑의 수많은 종류 중 부모의 사랑을 묘사한 캐릭터였다고 생각했다.
디트프리트 또한 인상적인 캐릭터다. 길베르트를 바이올렛에게 보내기 위해 길베르트에게 일갈하는 디트프리트는 '가문은 내가 잇겠다. 너는 바이올렛에게 가라, 자유로워져라.'라고 말한다. 부겐빌리아 가문은 대대로 육군 가문이었기에 당주는 아버지에게 반발해 해군이 된 디트프리트가 아니라 육군이 된 길베르트였고, 길베르트는 이에 큰 부담감과 바이올렛에 대한 죄책감도 느끼고 있었는데, 이를 전부 디트프리트가 짊어지고 동생의 축복을 빌어준 것이다.
이 외에도 길베르트는 바이올렛에게 자유로워지라고 말하고, 디트프리트는 그런 길베르트에게 자유로워지라고 말했으니 부겐빌리아 일족은 꽃말 그대로 정열과 사랑의 일족인가 보다. 이 역시 수많은 사랑 중 형제애를 묘사했다고 생각한다.
바이올렛 에버가든 시리즈는 수많은 사랑들을 다뤄왔다. 부녀지간의 사랑, 남매간의 우애, 모녀간의 사랑, 형재간의 우애와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까지. 이러한 사랑들을 알아온 바이올렛은 드디어 연인과의 사랑을 마주한다. 자신을 키워줌과 동시에 사랑을 알려준 사람, 만나고 싶은 사람, 자신의 마음속에서 언제까지나 살아있었을 그 사람과의 사랑을 드디어 마주한 그녀는 드디어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사랑을 찾은 것이다.
시간이 지나 세상은 변해간다. 기술이 발전해 도태되는 것들이 있다.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이 공존하던 시대, 말로 전해야 할 것이 있었고 편지로 전해야 할 것이 있었다. 사랑한다고 말해준 이와 사랑한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던 소녀가 있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해 준 이를 잃은 소녀는 사랑한다는 말을 알기 위해 감정을 깨우쳐간다.
그럴수록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커져만 가지만 그는 어딘가 살아있을 것이라 소녀는 믿는다. 타인에게는 칭송받는 유명인이지만 속으로는 사랑하는 이를 의존적으로 그리워하며 전쟁의 아픔을 지닌 소녀의 마음을 보듬어줄 수 있는 것은 사랑하는 이와 다시 만나 여생을 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끝내 소녀가 사랑하는 이를 다시 만나며, 바이올렛 에버가든 시리즈는 막을 내린다. 저마다의 이야기를 전하는 방법이 어떻든, 이야기를 전하려는 그 자체로 그들은 서로 사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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