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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나가레보시 2020. 10. 19.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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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3)

영화는 장애인 여성과 비장애인 남성의 만남과 사랑, 그리고 이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는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이 보여도 극복하기 어려운 여러 한계들이 존재한다. 주인공들은 그 한계를 극복하고 함께 살아갈 것인가, 그러지 못하고 헤어지고 말 것인가.

우연한 유모차 사고로 만난 남주인공 츠네오와 여주인공 조제. 첫 만남 이후로 츠네오는 조제에게 관심을 갖고 돌보아 주기 시작한다. 우정으로 시작된 만남은 삐걱거릴 때도 있었지만 결국 두 사람은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연인이 된다. 친구로서 돌보아 주는 장면과 연인으로써 위하는 장면은 비슷하면서도 다른데, 전자는 동정심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면 후자는 완전한 사랑만이 묻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장애라는 한계는 두 사람을 점점 지치게 만들고, 결국 둘을 헤어지게 만들어버리고 만다. 츠네오는 말한다. '나는 도망쳤다'라고. 츠네오는 오열하고, 이제야 우리는 깨달을 수 있다. 영화가 줄곧 응시하고 있던 것은 츠네오의 고심과 결정이 아니라 조제의 삶이었다는 것을.

두 사람은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헤어지고 말았지만, 조제는 혼자서도 일어서는 법을 배웠다. 이를 보란 듯이 영화는 조제 혼자서 생선을 굽고 엉덩방아를 찧으며 의자에서 내려오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이제 조제는 혼자 일어서는 법을 배웠기에 금방 일어나 혼자 밥을 먹고, 혼자서 장을 보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말한다.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도망친 우리에게, 혼자서는 해낼 수 없던 것이 많았던 우리에게 이를 양분 삼아 다시 살라고. 살아가는 것의 불편함과 누군가에게서 도망친 죄책감들 모두 가슴에 품고 다시 일어나 살아가라고.

영화에는 세 가지 상징이 등장한다. 여주인공의 별명 조제, 츠네오와 조제가 연인이 되고 동물원에 놀러 가 만나는 무서운 호랑이, 그리고 두 사람이 지쳤음을 보여주는 러브호텔의 물고기다. 조제라는 이름은 프랑스의 여성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이름이다. 이를 쿠미코라는 여성이 자신의 별명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다리가 불편한 장애를 가지고 있어 바깥세상에 대해서는 책을 통해서만 알아왔기에, 이러한 세상과의 단절된 현실을 부정하고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른다.

호랑이는 조제가 연인이 생기면 무서운 것을 보러 가기로 결심했을 때 그 대상으로 선택한 동물이다. 츠네오와 연인이 된 조제는 호랑이를 보며 무서워하면서도 바깥세상과 접촉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츠네오와 헤어졌음에도 바깥세상과의 단절은 끊어지지 않았기에 혼자서도 씩씩하게 살아간다.

마지막으로 물고기는 조제 본인을 의미한다. 러브호텔에서 조제는 '깊고 깊은 바닷속. 난 그곳에서 헤엄쳐 올라온 거야. 너랑 세상에서 제일 야한 짓을 하려고. 난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갈 수 없겠지. 언젠가 네가 없어지면 난 혼자서 바다 밑을 데굴데굴 굴러다니게 될 거야. 뭐, 그래도 괜찮아'라고 말한다.

세상 밖으로 나오기 전, 깊은 심연 속에서 살아가던 조제는 세상 밖으로 나왔기에 그 전의 심연으론 돌아갈 수 없고, 츠네오와 헤어져 혼자가 되어도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었으며, 슬프게도 그녀는 츠네오와의 이별을 직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아름다우면서도 어딘가 쓸쓸하다. 그러나 조제가 다시 일어나 씩씩하게 살아갈 것을 암시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난 생각했다. 도망쳐도, 외로워도, 어딘가 불편해도 이를 딛고 일어나는 사람들이 가장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이 영화는 멜로 영화일까 성장 영화일까, 아님 둘 다인 것일까? 나는 성장영화라고 생각한다. 카메라는 츠네오를 중심으로 비추고 있지만 사실 성장하는 것을 뚜렷이 보여주는 건 조제다. 츠네오를 만나 세상과 접촉하고, 이별을 직감했음에도 슬퍼하지 않고 도망치는 연인을 떠나보낸다. 다시 혼자가 되었음에도 열심히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이 영화는 조제의 성장을 다룬 영화라고 나는 생각했다.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연인들, 그러나 혼자서도 일어설 수 있는 법을 배운 여인은 오늘도 엉덩방아를 찧으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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