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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코

나가레보시 2020. 10. 25.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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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코(2018)

2011년, 일본에는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전대미문의 재난이 일어났다. 동일본 대지진은 수많은 생명과 삶의 터전을 앗아갔다. 불가항력의 동일본 대지진과 멜로 영화 아사코의 사이에는 어딘가 비슷한 점이 있었다.

아사코는 어느 날 연인 바쿠가 갑작스럽게 사라지는 경험을 하고 도쿄로 상경한다. 그리고 바쿠와 똑 닮은 회사원 료헤이와 사랑에 빠진다. 시간이 흘러 아사코는 자신이 료헤이와 교제하고 있는 이유가 바쿠와 닮아서라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그와 헤어지려고 한다. 그러나 때마침 일어난 지진에 두 사람은 사랑의 감정을 재확인하고 동거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첫 번째 불가항력, 사랑의 불가항력이었다.

몇 년째 동거하며 잘 살고 있던 두 사람. 동일본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토호쿠 지방 살리기 프로젝트에도 함께 참여하고 오사카에서 신혼집도 알아보면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곧 두 번째 불가항력이 찾아온다. 첫사랑 바쿠가 유명한 배우가 되어 다시 아사코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결국 아사코는 바쿠를 따라가 버리고 만다. 그녀는 무의식 중에서 료헤이를 바쿠의 대체제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이것이 두 번째 불가항력, 첫사랑이었다.

그러나 아사코는 곧 후회한다. 바쿠와 함께 홋카이도로 떠나던 중, 료해이와 함께 했던 장소를 지나치고, 바쿠가 료헤이가 했던 말을 그대로 하는 것을 들은 그녀는 결국 바쿠와 료헤이는 다른 존재라는 것을 이제야 인식한다. 드디어 아사코는 불가항력이라는 운명에서 벗어나 자신의 선택을 시작한 것이다.

이제 아사코는 료헤이를 찾아 오사카로 떠나 그를 만나지만, 료헤이는 상심한 체 그를 내친다. 아사코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 모두 그녀의 선택이었기에 부정하지도 않는다. 아사코는 자신이 료헤이에게 버린 고양이를 료헤이가 한 번 더 버렸다는 말을 듣고 비가 오는 날씨에도 고양이를 찾아다닌다.

그런 모습을 본 료헤이는 아사코를 집에 들여보내 준다. 고양이는 버리지도 않았고, 그저 아사코를 내치기 위한 것이었다. 료헤이는 비가 와 강물이 더러워졌다고 말하며 평생 아사코를 믿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사코는 말한다. 그래도 풍경은 아름다워 보인다고.

이 글을 읽은 분들은 내가 뭔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나도 영화를 보면서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NTR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중반부까지는 아사코가 자신을 버리고 떠난 첫사랑의 그림자를 지우고 성장하는 내용으로 생각했는데, 갑자기 방향이 틀어지니 이해할 수 없던 것이다.

이 영화도 후반부는 혹평하는 글을 쓰려고 준비까지 하기도 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한 가지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 있었다. 왜 아사코와 료헤이는 지진이 난 후에야 동거하며 사랑을 키워나갈 수 있었을까?' 그리고 내가 내린 답은 불가항력의 동일본 대지진이었다.

동일본 대지진은 작중에서 3번 나온다. 첫번째는 동일본 대지진 그 자체라, 두번째는 동일본 대지진 피해 지원 자원봉사, 마지막은 바쿠와 아사코가 도망쳐 온 지진 피해지역 센다이다. 이처럼 강렬한 장면에 남아있던 지진의 흔적 덕분에 사랑은 동일본 대지진처럼 불가항력으로 찾아오는 것을 묘사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몇 년 후, 바쿠가 다시 나타나 아사코를 데려갈 때, 아사코는 별 저항 없이 바쿠의 손을 잡고 레스토랑 밖을 나선다. 여기서 아무 저항도 없었다는 것에 주목하자.

불가항력이란 저항할 수 없는 힘을 말한다. 일종의 운명, 피하지 못하는 힘이라는 것이다. 이 장면까지도 아사코는 바쿠를 떠나보내려 손을 흔드는 것 외에는 딱히 선택을 한다는 장면이 없었고, 그것도 바쿠를 따라가게 되면서 무용지물의 선택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아사코는 드디어 선택한다. 사랑이라는 또 다른 불가항력이 료헤이와의 추억을 상기시키게 만들고, 다시 그에게 돌아간다는 선택을 아사코는 스스로 한다.

그러나 료헤이의 마음은 돌릴 수 없었다. 그는 평생 아사코를 믿지 못할 것이라는 말까지 한다. 내가 영화를 보고 생각한 것은 '아사코'는 동일본 대지진 후의 일본 사회는 더 이상 그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라는 것이다. 방금 전까지 말했지만 료헤이는 마지막 장면에서 아사코를 평생 못 믿겠다고 말한다.

나는 여기서 깨달았다. '동일본 대지진=아사코의 료헤이 배신'이라고. 둘 다 불가항력으로 일어났으며, 일본은 아직도 동일본 대지진의 여파를 수습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으며, 아사코의 배신으로 료헤이는 그녀를 평생 믿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된다. 정말 비슷하지 않은가?

물론 이것은 나 혼자만의 해석이다. 다른 사람들은 아사코가 똑같은 상황을 두 번 마주하며 어떤 선택을 할지 고민하며 성장하는 영화라고 생각하거나 아예 혹평을 내리는 사람들도 있다.

동일본 대지진과 옛 연인은 어딘가 닮았다. 지진도 피하지 못하고 말려들었고 옛 연인도 피하지 못하고 말려들었다. 지진 후의 미래는 믿을 수 없고 옛 연인에게 말려들었다 돌아온 후의 미래도 믿을 수 없다. 멜로 영화가 아니라 동일본 대지진 후의 미래는 순탄치 않을 거란 영화는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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