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아키바 메이드 전쟁

나가레보시 2022. 12. 25.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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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바 메이드 전쟁(2022)

(영상 시청 가능 https://youtu.be/YZunhT0B_rM)
나는 일본의 야쿠자 장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키타노 타케시 감독의 90년대 영화를 꽤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의 영화에서 야쿠자는 그저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데에 필요한 소재로 보일 뿐이다. 야쿠자가 주축이 되는 비디오 게임 시리즈인 용과 같이 시리즈 역시 재미있게 즐겼음에도(특히 제로는 정말 좋았다) 결국 내 마음속을 휘젓는 시리즈가 되지는 못했다. 나는 메이드 장르도 좋아하지 않는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행동과 말투를 반복하며 주인님과 아가씨를 맹목적으로 따르기만 하는 메이드들의 모습에는 기시감만 들뿐이다. 오늘 리뷰할 TV 애니메이션 <아키바 메이드 전쟁>은 이처럼 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야쿠자 느와르 장르와 모에 메이드 장르가 교차되어 있는 작품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작품이 정말 좋았다. 두 장르의 기묘한 교차는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애니메이션은 메이드에 야쿠자의 특성을 부여하였다는 것에서 신선하다. 아키바, 즉 아키하바라에 존재하는 수많은 메이드와 메이드 카페들이 각각 야쿠자와 야쿠자 조직처럼 묘사되어 항쟁을 벌인다는 이야기는 참으로 골때리면서도, 흥미진진하다. 여기서 먼저 '골때린다'는 표현에 대해 해설해보도록 하겠다. 여기서 몇몇 분들은 이미 짐작하셨을테지만,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코미디이다. 분명 피와 복수가 난무하고 있음에도 그 장면들은 잔인함에서 오는 거부감보다도 철저히 계획된 어이없음에 의한 폭소와 더 관련이 있다. 특히 1화 후반부의 학살 시퀀스는 음악에 맞추어 모든 살인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베이비 드라이버> 속 테킬라 시퀀스가, 작품 전체적으로는 피가 난무하지만 웃음을 참을 수 없다는 점에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처럼 TV 애니메이션 <아키바 메이드 전쟁>은 메이드와 야쿠자를 동일시하여 신선함을 부여함과 동시에 거침 없는 잔인함으로 도리어 코미디를 부여하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 애니메이션은 우리가 알고 있는, 보편적인 메이드의 모에 역시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시청자는 이러한 사실을 끊임없이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이 작품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다. 따라서 결국에는 이 작품 속 메이드와 야쿠자의 관계를 완전히 동일한 관계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아키바 메이드 전쟁>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품 속의 인물들은 야쿠자의 특성을 지니고 있지만, 결국에는 모에한 메이드'라고 생각하여야 한다. 즉, 이 애니메이션의 양대 장르인 야쿠자 느와르와 모에 메이드는 교차되어 있으며, 이 교차를 통해 나타나는 것이 작품의 최종적인 주제이다.

교차, 국어사전에는 '2개 이상의 선상(線狀)의 것이 한 곳에서 마주치는 것. 또는, 서로 엇갈리는 것'이라고 나와 있다. 이 말대로 <아키바 메이드 전쟁>의 야쿠자 느와르 장르와 모에 메이드 장르는 한 곳에서 만나지만, 결국 엇갈리고 끝내 모에 메이드 장르가 최종적으로 강조되어 주제를 표현한다. 그렇다면 이 작품의 주제는 무엇일까? 나는 <아키바 메이드 전쟁>의 주제를 인과응보와 비폭력이라고 생각한다. 작중에서 메이드들은 생존과 이권을 위해 살인을 저지르지만, 결국 자신들 역시 누군가에게 살해당하고 마는 인과응보의 모습을 보인다. 이는 주인공 일행에도 해당된다. 1화에서 츠키츠키츄키쨩의 메이드들을 학살한 만넨 란코는 결국 인과응보로서 생존한 츠키츠키츄키쨩의 메이드에게 살해당하고, 와히라 나고미는 적대 메이드의 다리를 쏘았다가 다리를 영영 쓰지 못하게 된다.

<아키바 메이드 전쟁>은 이러한 인과응보를 끊임없이 강조하면서 피의 복수라는 잔인함의 연쇄를 끊어내야 한다는 주제를 드러낸다. 이러한 연쇄의 절단을 위해 이 작품은 비폭력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 비폭력을 위해 등장하는 것이 바로 모에 메이드이다. 메이드 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시는가? 나는 어떤 경우에도 주인님과 아가씨를 성심성의로 모시는 모습이 떠오른다. 이 모습이 바로 메이드의 본분이자 모에이다. <아키바 메이드 전쟁>은 이를 비폭력으로 치환하여 작품의 주제를 드러낸다. 그 대변자가 바로 주인공 바로 와히라 나고미로, 그녀는 '애초에 메이드의 본분은 무엇인가? 우리는 메이드로서의 본분을 다해야 하는 것이지, 죽고 죽이는 피의 복수만을 행하는 자들이 아니다'라고 주장하여, 피의 복수만이 난무하던 아키바를 우리가 알고 있는 지금의 아키바로 변화시키게 된다.

물론 나고미 역시 피의 복수로 빠져들 수 있었다. 만넨 란코가 츠키츠키츄키쨩의 복수로 사망하게 되자, 나고미는 복수심에 눈이 멀어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적대 세력의 메이드를 붙잡아 심문하고, 그 과정에서 그녀는 상대 메이드의 다리를 총으로 쏘게 된다. 나고미는 이에 대한 인과응보를 톡톡히 받게 된다. 마지막 손님 대접에서 총에 맞아 영영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다시 마음을 추스르게 된 나고미는 목숨을 걸어 자신과 동료들을 죽이러 온 나기의 앞에서 아키바의 변화를 연설하고, 이는 성공하게 된다. 이 시퀀스에서도 인과응보는 적용되어, 만넨 란코라는 옛 친우와 자신을 거두어 준 미치요 씨에 대한 내적 갈등으로 폭주해 부하들을 살해한 나기는 나고미에게 감화된 츠키츠키츄키쨩의 메이드와 나기로 인해 모든 것을 잃었던 판다의 손으로 죽음을 맞게 된다.

이처럼 TV 애니메이션 <아키바 메이드 전쟁>은 야쿠자처럼 행동하는 메이드들이 자신들의 진정한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인과응보와 비폭력이라는 주제를 관철한다. 그 과정이 시청자들 사이에서 꽤 호불호가 갈렸던만큼, 이 작품은 올해 최대의 문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누군가는 호평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혹평한다. 하지만 나는 결국 호평의 손을 들어주려 한다. 수많은 야쿠자 장르들의 오마주를 통한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연출로 만들어진 더럽고, 치졸하고, 잔인한 세계관 속에서 모에 메이드의 본분을 역설하여 인과응보와 비폭력이라는 주제를 훌륭하게 표현해냈다는 것은 큰 호평의 요소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결정적으로, TV 애니메이션 <아키바 메이드 전쟁>은 올해 방영된 애니메이션 중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장르물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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