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샤인포스트

나가레보시 2022. 10. 26.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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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인포스트(2022)

(영상 시청 가능 https://youtu.be/sHW-q0Ac7LM)
지금까지 나는 여러 아이돌 애니메이션을 보아왔다. 그중에는 언젠가 클래식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명작 <달빛천사>도 있었고, 장르의 양대 거목이라고 할 수 있는 <러브 라이브!> 시리즈와 <아이돌 마스터> 시리즈도 있었으며, IP만으로는 두 거목 사이에서 활약하다 쇠락하는 중인 <Bang Dream!> 시리즈도 있었다. 특히 나와 <Bang Dream!> 시리즈는 애증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단언한다. 적어도 내가 본 아이돌 애니메이션 중에서 앞서 언급한 작품들은 최고가 아닐 것이라고. 그렇게 말은 했지만 사실 내게는 여러 아이돌 애니메이션의 후기를 남기면서 ‘최고작’이라는 말을 여러 번 사용했던 전적이 존재한다. <러브 라이브! 슈퍼스타!!>와 <러브 라이브! 니지가사키 학원 스쿨 아이돌 동호회 2기>를 극찬하면서 그랬던가…

물론 이 두 애니메이션이 좋은 작품들이라는 생각에는 결코 변함이 없다. 하지만 끝내 나는 다시 한 번 생각한 후 두 작품에 대한 평가를 어느 정도 바꾸었다. 전자는 ‘정통 <러브 라이브> 시리즈의 최고작’으로, 후자는 ‘모든 <러브 라이브> 시리즈의 최고작이기는 하나 아쉬운 부분이 있다‘로. 결국 나는 항상 아쉬워했던 것이다. 분명 좋았지만 몇 가지 아쉬움들이 끝내 잔존하고 말았던 작품들에… 그런 나의 앞에 드디어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이 나타났다. 딱히 유명한 시리즈는 아니다. 오히려 갓 시작된, 따끈따끈한 신생 시리즈다. 제목은 <샤인포스트>. 줄거리는 간단하다. 해체 위기에 처한 지하 아이돌 TINGS가 우수한 매니저(마네-쟈 군이 포인트로 작용해야 한다)의 도움으로 노력하고 성장하여 인기를 얻어나가고 해체를 면해 미래로 향하는, 어디서 많이 본 이야기다.

여기까지 보면 많은 사람들이 <샤인포스트>를 두고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매니저에 포커스를 맞추면 <아이돌 마스터>가, 노력하고 성장하는 아이돌에 포커스를 맞추면 <러브 라이브!>가 되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물론 그런 면이 존재한다. 나부터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샤인포스트>는 앞서 이야기한 거목이나 다름없는 두 시리즈보다 뛰어나다고 자신할 수 있다. <샤인포스트>는 그 익숙한 맛을 극대화하면서도 차별화시키는 데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아이돌 마스터>처럼 매니저가 활약하기는 하지만 TINGS 멤버들의 이야기에는 간섭하지 않도록 완급조절이 되어 있고, <러브 라이브!>와 같은 노력하는 아이돌들의 이야기지만 그 노력이 마냥 낭만적으로 포장되지는 않은, 어느 정도까지는 현실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그 예시이다.

이렇게 차별점에 대해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샤인포스트>의 줄거리는 결국 뻔하다면 뻔할 것이다. 당연할지도 모른다. 이런 줄거리를 가진 아이돌 애니메이션들이 그동안 얼마나 방영되었던가? 그러나 그 뻔함 속에 들어있는 밀도 있는 관계와 표현들은 다른 시리즈들이 결코 따라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돌 마스터>와 <러브 라이브>의 팬들께는 죄송한 이야기이도 하지만(나도 이 시리즈들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오해 없이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샤인포스트>의 관계와 표현들은 <아이돌 마스터>와 <러브 라이브> 같이 공장화 되지 않은 신생 시리즈이기에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계와 표현들은 주인공들이 서로의 고민을 해결하고 끝내 TINGS라는 완전체로 거듭나게 만든다. 그렇게 만들어진 아이돌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해보고자 한다.

주인공들은 끊임없이 고민한다. 그 고민은 밝게 빛난다. 거짓에 의해 생겨난 고민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녀들은 빛나지 않아야 한다. 아이돌은 언제나 팬들을 향해 진실을 노래해야 하는 존재니까. 그렇다면 어째서 그녀들은 진실되어야 하는가? 여기서 아이돌 애니매이션의 뻔하디 뻔한 공식이 드디어 작용한다. ’당연한 거 아냐? 그녀들은 반짝반짝(キラキラ) 빛나야 하는 존재인 아이돌이니까!’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이 작품의 설정은 진실은 빛나지 않는다는 것 아니었나?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엔딩에 다가갈수록 구체화된다. 주인공들이 거짓으로 생겨난 고민들을 해결할수록, 그들은 더욱 주목받는 무대에 서게 된다. 그렇게 TINGS는 무대 위의 조명과 팬들의 함성을 받으며 설정에 관계없이 그들 스스로 빛나게 된다. 빛나지 않는 진실의 아이돌 TINGS는 빛나는 거짓을 딛고 일어났을 때 비로소 진정 빛나게 되는 것이다.

그 빛나는 거짓은 빛나지 않는 진실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지금까지의 노력과 관계라는 진실을 드러내는 거짓인 것이다. 유키 사장의 그룹 해체라는 거짓말로 TINGS가 진정 빛날 수 있는 무대가 다시 한 번 시작될 것임이 암시되며 작품이 마무리된 것이 그 증거다. TINGS는 빛나지 않는다. 하지만 알 수 있다. 무대 위에 서는 과정에서, 또한 무대 위에서 그녀들은 분명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TV 애니메이션 <샤인포스트>는 아이돌 애니메이션의 공식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뻔한 이 ‘빛남’을 진실과 거짓의 역설을 통해 탁월하게 표현한다. 빛나지 않는 것이 진실이었단 설정마저 시청자에게는 끝내 거짓으로 다가와, 아이돌 TINGS는 진실로서 반짝반짝 빛나게 되는 것이다.

<샤인포스트>는 올해, 더 나아가 내가 본 최고의 아이돌 애니메이션일 것이다. 장르의 공식을 뒤집어 밀도 있는 드라마를 표현한 다음, 다시 원래대로 뒤집어 아이돌 애니메이션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는 모습은 무척 감명 깊게 다가왔다. 동시에 멋진 라이브까지 곁들이며 장르적 재미마저 견고히 하다니… 이에 감탄하며 나는 생각했다. ‘이 작품, 마음에 쏙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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