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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코리스 리코일 영상 https://youtu.be/t9K5AqPJowo
(인게이지 키스 영상 https://youtu.be/oZ7jL01KtXs)
애니메이션 제작사 A-1 Pictures는 의외로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을 많이 만든다. 개인적으로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을 선호하는 나에게 이러한 親 오리지널 제작사인 A-1 Pictures는 블랙기업으로 자주 구설수에 오르기는 하지만 결국 어느 정도 관심을 갖고 바라보게 만드는 제작사 중 하나다. 그런 A-1 Pictures가 올해 3분기에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두 작품을 제작해 방영하였다. 타키나와 치사토의 우정을 중심으로 거대한 테러에 맞서는 이야기를 그린 <리코리스 리코일>과 악마들이 나타나는 도시에서 또 다른 악마와 계약해 맞서 싸워나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린 <인게이지 키스>가 그것이다. 후자의 경우 <인게이지 킬>이라는 모바일 게임의 홍보용으로 제작된 것이기 때문에 엄연히 따지면 오리지널이 아니지만, 게임 스토리의 프리퀄이라는 점에서 오리지널리티를 찾을 수 있다.
리코리스 리코일
<리코리스 리코일>은 킬링타임용 작품이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재미있는 코미디와 꽤 눈길을 끄는 액션을 제외한 메인 스토리는 나의 의문을 그다지 해소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 작품의 코미디는 재미있다. 타키나와 치사토의 티키타카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여러 만담들은 분명 나를 웃겨주었다. 액션 역시 끊김 없는 움직임을 보여주는 작화로 흥미로운 합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스토리도 그렇게 별로인 것은 아니다. 숨기려는 자와 까발리려는 자의 대결이라는 메인 스토리는 솔직히 재밌긴 했다. 그럼에도 존재하는 문제는 백합이라는 장르에만 기대어 주인공들이 만들어나가는 관계를 제대로 묘사하지 않아 끝내 그 관계가 메인 스토리에 가려져버리게 만들었다는 것과, 그렇게 만들어진 메인 스토리 역시 후반부로 갈수록 억지 전개로 빠져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 작품이 홍보 단계에서부터 방영이 끝날 때까지 중점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타키나와 치사토의 관계이다. 그 증거로 제작진들이 강조했던 3화에서는 타키나가 치사토에게 마음을 열게 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사실 이 3화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는데, 후술하도록 하겠다. 다시 돌아와서, 두 사람의 관계는 작품 중간중간 등장하는 일상 장면들에서 더욱 발전해 나가고, 후반부에 가서는 치사토의 심장에 대한 비밀이 밝혀지면서 더욱 증폭된다. 바로 여기서 작품의 문제는 드러난다. 치사토의 심장에 얽힌 스토리와 마지마의 테러를 막아야 한다는 메인 스토리가 충돌하면서 끝내 치사토의 심장에 얽힌 스토리가 엉망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나는 그 이유를 제작진이 타키나의 포지션을 제대로 정하지 못한 채 후반부 메인 스토리에서 타키나와 마지마의 대립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확히 말하면, 타키나를 메인 스토리에 참여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타키나와 치사토의 관계를 상징하는 심장 스토리가 소외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 애니메이션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치사토와 마지마의 대립을 다룬 메인 스토리에서 타키나는 치사토를 걱정하기만 하는 수동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즉, 타키나는 치사토 바라기가 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타키나가 치사토와 마지마의 대립에 유의미한 족적을 남기지 못했기 때문에, 사실상 타키나 혼자서 끌고 가고 있었던 심장 스토리는 그대로 소외되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제작진은 백합 장르를 시각적으로 더욱 강하게 구현하는 길을 택했다. 앞서 말한 3화에서 치사토가 타키나를 들어 올려 빙글빙글 도는 장면, 수족관에서 물고기를 따라 하는 장면, 후반부에서 타키나가 치사토를 구하려 폭주하는 장면 등이 그 예시이다.
하지만 그런 장면들은 백합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꽤 흥미롭게 다가올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심지어 나는 백합 장르를 그다지 싫어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사실 이것은 취향의 영역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시각적으로 만들어지는 백합보다 감정적 교류를 통해 만들어지는 백합을 더 선호한다. 그러나 <리코리스 리코일>에 감정적 교류라고 부를 만한 장면들은 딱히 보이지 않는다.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나마 존재하는 장면들은 모에 애니메이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감정적 교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국 강조되는 것은 시각적인 장면들이다. 이것은 사실상 포르노에 가깝다. 나의 발언이 자극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내가 봐도 자극적이다), 시청자를 사로잡기 위해 감정 없는 시각적 연출만을 강조하는 것은 결국 포르노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이 작품이 치사토와 마지마의 대립이라는 메인 스토리를 강조하기 위해 작품의 중요 요소인 타키나와 치사토의 관계를 소홀히 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진 메인 스토리 역시 별로였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리코리스 리코일>이라는 애니메이션이 메인 스토리를 통해 강조하는 것은 빛을 위한 어둠, 어둠을 위한 빛이다. 평화로운 세상이라는 빛을 유지하기 위해 리코리스라는 어둠이 존재하고, 어둠의 존재를 밝히려는 자칭 빛 마지마는 거꾸로 세상을 혼돈이라는 이름의 어둠으로 물들인다. 이러한 대비로 이루어지는 스토리는 꽤 볼만하긴 하다. 그러나 이 스토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되는 억지들은 결국 작품을 비판하도록 만든다. 마지마는 왜 세상을 혼돈으로 물들이려 하느냐는 질문에 설명 없이 'D.A.와 국민들이 멍청해서'라고 답하는 것이 그 억지의 예시다.
이러한 억지에도 불구하고, 겉으로 보이는 메인 스토리는 엔딩을 향해 착실히 굴러간다. 그러나 엔딩에서 결국 스토리의 한계는 드러난다. 마지마가 리코리스의 존재를 폭로해 민간인과 리코리스 모두 죽어나가는 막장 상황에서 타키나와 치사토는 마지마를 물리치고 상황을 수습해낸다. 이후 상황 정리를 위해 두 사람의 동료 해커 쿠루미가 한 일은 '이건 모두 연극이었습니다'라는 어이없는 자막을 전광판에 내보내는 것이었다. 이 장면에서 나는 생각했다. '설마 이걸로 해결이 되겠어?' 하지만 웬걸, 사람들이 이 자막을 믿으며 사건은 정말로 해결되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인명 피해가 일어났는데도 말이다! 이런 해결에 어이없다고 생각할 때, 죽은 줄 알았던 마지마가 나타나 말한다. '국민들이 멍청해서 그래!' 참나, 멍청하다는 말로 때울 수 있는 것은 따로 있는 법이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겠다. TV 애니메이션 <리코리스 리코일>은 볼 만한 작품이지만 동시에 거기까지인 작품이다. 백합 장르로도, 시리어스 액션 장르로도 어딘가 부족한, 캐릭터 디자인이 귀엽고 엔딩곡이 인상적이었던 애니메이션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백합 장르로 보면 감정 없는 시각적 강조만 가득하고 타키나의 포지션 역시 후반부로 갈수록 공기가 되며, 시리어스 액션 장르로 보면 문제의 해결에 있어 억지가 남발되어 있다. 특히 12화의 문제 해결은 정말 어이가 없을 정도로 별로였다. 또한 사전 제작된 10화 이후부터는 인기를 의식한 것인지 후속작을 암시하는 결말로 끝이 나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무래도 후속작의 여지를 만들기 위해 결말을 급히 틀어버린 것 같아 보인다. 그래도 심심할 때 보면 재미는 있을 킬링타임 작품으로는 제 역할을 다 한 작품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인게이지 키스
나는 수많은 장르들을 편견 없이 접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선호하지 않는 장르가 몇 가지 있다. 캐릭터의 선정성만을 강조해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는, 소위 '뽕빨물'이라고 불리는 장르가 그중 하나다. 이러한 나의 취향에 의거해, TV 애니메이션 <인게이지 키스>는 2022년 3분기 감상 애니메이션 목록에서 제외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인게이지 키스>는 끝내 목록에 잔존하게 되었고, 심지어 리뷰까지 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왜 <인게이지 키스>는 의외로 괜찮은 작품이었을까?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배꼽 빠지게 웃기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장르들 중에서 가장 만들기 어려운 장르가 코미디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웃음 포인트 중에서 공통되는 포인트들만을 정확하게 추려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추렸다고 해서 웃긴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를 가공할 역량도 보유해야 한다.
이러한 면에서 <인게이지 키스>는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는 전적으로 시리즈 구성 담당이자 각본가인 마루토 후미아키의 공이 클 것이다. 마루토 후미아키는 유명한 러브 코미디 애니메이션 <시원찮은 그녀를 위한 육성 방법> 시리즈, 약칭 사에카노 시리즈의 각본을 맡은 경력이 있는데, 그때 보여주었던 특유의 코미디 센스가 <인게이지 키스>에서도 발휘되었다. 여담으로 나는 사에카노를 재밌게 보긴 했지만 쓸데없이 선정적이고 주인공의 행보가 맘에 들지 않아 좋은 작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인게이지 키스>는 선정성이 코미디와 조화되는 기묘한 모습을 보여주어 마음에 들었다. 사실 까놓고 보면 성관계 장면들이 등장하기는 해도 사에카노보다 선정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러한 코미디 외에도 호평할 요소는 더 있다. 바로 캐릭터의 특성을 잘 이용한다는 것.
<인게이지 키스>는 중반부까지는 매우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만큼 웃겼다. 그러나 중후반부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리어스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작품의 장점인 코미디가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었다. 시리어스 스토리 자체도 딱히 매력적이지는 않아서, 조금 지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솔직히 시리어스 스토리로만 따지면 앞서 이야기한 <리코리스 리코일>이 더 재미있었을 정도. 이러한 스토리를 버티게 만들어 준 것은 다름 아닌 캐릭터의 활용이었다. 남주인공 슈가 메인 스토리를 진행하는 동안 여주인공 키사라, 아야노, 샤론의 티카타카 코미디로 지루함을 해소시키면서 시청자들을 붙잡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다른 작품들이었다면 이러한 모습을 비판했을지도 모르지만, <인게이지 키스>는 1화부터 대놓고 이러한 캐릭터의 티키타카를 강조했기 때문에 오히려 호평의 요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대단원에 다다른 메인 스토리는 다시 코미디로 변환된다. 최종보스인 슈의 여동생 칸나가 브라콘화 되어 키사라, 아야노와 함께 사각관계를 형성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배꼽을 잡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나는 이런 장면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이러한 <인게이지 키스>의 코미디와 캐릭터 활용은 사에카노의 탁월한 변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사에카노에서는 선정성이 도리어 거부감을 일으키지만 <인게이지 키스>에서는 그마저도 코미디로 활용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나마 <인게이지 키스>가 사에카노보다 아쉬웠던 것은 캐릭터의 비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이는 사에카노가 더 본격적인 하렘 러브 코미디 장르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인게이지 키스>보다도 캐릭터의 비중이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라는 변호를 해볼 수 있겠다.
TV 애니메이션 <인게이지 키스>는 <시원찮은 그녀를 위한 육성 방법>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각본가인 마루토 후미아키의 코미디 센스와 캐릭터 활용 능력이 다시 한 번 빛을 발한 재미있는 코미디 액션 애니메이션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전개되는 시리어스 스토리가 재미를 어느 정도 반감시키고 만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겠지만, 그래도 실수 없이 시리어스 스토리를 완결하고 다시 배꼽 잡고 웃게 만들 코미디로 돌아가 작품을 완결시키는 모습은 분명 호평의 요소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2022년 3분기, <리코리스 리코일>과 <인게이지 키스>는 모두 A-1 Pictures의 작품으로서 묘한 구도를 이루었다. 이러한 구도 가운데 두 작품 모두 장점도 있었고 단점도 있었지만, 나는 <인게이지 키스>의 아슬아슬한 승리라고 말하고 싶다. 흔들렸을지언정 웃음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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