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게임 <ENDER: LILIES: Quietus of the Knights>의 존재를 인지하게 된 계기는 OST, 즉 음악이었다. Spotify 음악 추천 기능으로 음악을 듣던 중 우연히 흘러나온 OST를 무언가에 홀린 듯이 듣고 있다 보니, 어느새 게임을 구매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만큼 게임 <ENDER LILIES: Quietus of the Knights>(이하 엔더 릴리스)의 음악은 뛰어나다고 말할 수 있다. 특유의 신비로우면서도 음산하고, 동시에 처연한 세계관을 아름답게 표현해내는 Mili의 음악은 분명 이 작품에서 가장 큰 강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관의 분위기를 표현해내는 데에 공헌을 한 것은 음악뿐만이 아니다. 비디오 게임은 시각적 요소와 청각적 요소가 합쳐진 복합적 매체이다. 따라서 청각적 요소가 아무리 뛰어나도 시각적 요소가 그렇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 되어버리고 만다.
이러한 면에서 엔더 릴리스의 시각적 요소, 즉 디자인과 그래픽은 청각적 요소인 음악에 비교하여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분명 매력적이기는 해도 나쁘게 말하면 읽기 귀찮은 글자 정도로 치부할 수 있는 설정과 스토리에 제대로 몰입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에는 분명 음악도 있겠지만, 타락자와 오염의 비로 멸망해버린 끝자락의 나라에서의 모험을 시각적으로 훌륭히 구현해낸 미려한 디자인과 그래픽 역시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비디오 게임을 시청각적 요소만으로 평가하는 것은 역시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비디오 게임에 있어 시청각적 요소보다도 중요한 것은 플레이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디자인과 그래픽, 음악을 갖고 있는 게임이라고 해도 정작 플레이가 재미없다면 그 작품은 철저히 버림받게 된다. 이러한 면에서 엔더 릴리스는 좋은 작품이기도 하지만, 아니기도 하다.
엔더 릴리스의 플레이 중 장점을 먼저 꼽아보자면 재도전 의지를 끊임없이 불러일으키는 전투 시스템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괴랄한 난이도로 유명한 게임 다크 소울 시리즈를 아시는가? 직접 플레이해보지는 않았지만, 옆에서 구경한 것만으로도 그 엄청난 난이도를 단번에 느낄 수 있었을 정도였다. 엔더 릴리스의 전투 시스템은 이러한 다크 소울 시리즈의 영향을 받은 것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필드에 존재하는 적들의 공격력과 패턴은 터무니없이 높고 어렵지만, 그에 비해 플레이어가 조종하는 주인공 릴리의 체력은 형편없고 수호령들의 공격력 역시 타격을 입히기에는 부족하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난이도는 상승하게 된다. 이에 비해 전투 시스템은 정말 재미있다. 회피와 방어, 공격 스킬 콤보를 적절히 활용하여 강력한 적들을 물리쳐 나가다 보면, 금세 재도전 의지는 샘솟게 된다.
이러한 장점이 가장 극대화되는 순간이 바로 보스전이다.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맞닥뜨리게 되는 여러 보스들의 난이도는 괴랄할 정도이지만, 끊임없이 패배하며 적응하다 보면 앞선 필드에서 익혔던 회피와 방어, 공격 스킬 콤보를 활용하여 승리할 수 있게 된다. 그 승리까지 도달할 때까지 플레이어의 의지를 붙잡는 것 역시 전투 시스템, 정확히는 앞서 이야기한 시스템과는 또 다른 시스템인 보스의 패턴과 기믹들이다. 물론 심연 파수꾼 회니르와 타락한 왕의 경우 잡몹들이 계속해서 소환된다는 단순한 기믹을 갖고 있어 재미보다는 짜증이 먼저 났지만, 이들을 제외한 보스들은 끝없는 패배에도 불구하고 재도전 의지를 불러일으켜주었다. 특히 미친 기사 울브의 경우 정말 어려운 패턴과 높은 공격력을 갖고 있음에도 끊임없이 재도전하여 끝내 클리어할 수 있었을 정도로 재밌었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엔더 릴리스는 큰 단점 역시 갖고 있다. 이 게임의 장르는 매트로배니아이다. 즉, 탐험을 통해 길을 개척하고 다양한 능력들을 활용해 퍼즐을 풀어나가야 하는 작품인 것이다. 엔더 릴리스는 이러한 장르적 특징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다. 매트로배니아 게임은 플레이어들의 탐험심을 불러일으켜 맵을 탐색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물론 초반의 맵을 탐험하는 것은 꽤 즐거웠다. 난이도는 높았지만 다양한 스킬들을 활용해 숨겨진 단서들을 찾고, 스토리를 이어 붙여나가는 재미는 분명 있었다. 그러나 후반으로 갈수록 이러한 재미는 점점 사그라든다. 맵은 점점 넓어지고, 강력한 적은 많아짐에도 스토리의 단서들을 찾아낼 수 있는 맵과 스킬의 기믹들은 단순해졌고, 무성의해졌다. 결국 나의 탐험심은 바닥났고, 매력적인 스토리와 설정은 빛 좋은 개살구가 되었다.
결국 엔더 릴리스는 장르적으로 치명적인 단점을 갖고 있는 작품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작품에 '좋았다'고 말해주고 싶다. 매력적인 세계관과 스토리, 이를 뒷받침하는 아름다운 음악과 디자인, 재미있는 액션 기믹들은 분명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비디오 게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플레이이다. 물론 엔더 릴리스는 장르적으로 치명적인 단점을 보였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한 다양한 장점들이 융화되어 플레이어를 감동시키는 것 역시 플레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플레이, 즐긴다는 뜻이다. 분명 단점은 있었지만, 나는 엔더 릴리스를 재미있게 즐겼고, 나름대로 감동도 받았다. 그렇다면 된 것 아닐까? 엔더 릴리스는 치명적인 단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훌륭한 장점 역시 갖고 있다. 그 장점들은 내가 이 게임을 '플레이'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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