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으로 시청 가능 https://youtu.be/_45f6V_jceA)
2년 전, 나는 <클라나드>라는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보았다. 정말 감동적이고 따뜻한 애니메이션이었다. 특히 2기인 <클라나드: 애프터 스토리>는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에 당당히 그 이름을 남길 수 있을 정도의 엄청난 작품이라고 자신한다. 이러한 <클라나드> 시리즈를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이 연작을 뛰어넘을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 앞으로 나올 수 있을까?' 그렇게 2년이 지난 2022년, 드디어 나는 만날 수 있었다. <클라나드> 1기를 가볍게 뛰어넘고 <클라나드: 애프터 스토리>에 조금 못 미치는 정도의 애니메이션을, 나는 만날 수 있었다. TV 애니메이션 <데아이몬: 화과자 이야기>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을 지나 다시 봄이 오는 그 나날 동안 서로 다른 저마다의 사람들이 하나의 인연으로 묶여 이윽고 가족이 되어가는 감동적이고 따뜻한 애니메이션이다.
새로운 꿈을 꾸고 상처를 치유하다
<데아이몬: 화과자 이야기>의 이야기는 단순하다면 단순하다. 선배의 영향으로 음악이라는 꿈을 꾸게 된 나고무는 고향인 교토를 떠나 도쿄에서 밴드를 결성하고, 여자 친구도 사귀게 된다. 하지만 밴드의 인기는 시원찮았고, 때마침 아버지가 입원하셨다는 편지까지 받자 나고무는 밴드를 해체하고 여자 친구에게 함께 교토로 돌아가자고 말하지만 거절당한 채 홀로 귀향한다. 그렇게 귀향한 나고무는 부모님이 운영하는 화과자 가게 '료쿠쇼'를 이으려고 하지만, 아버지는 난생처음 보는 소녀 이츠카에게 가업을 넘기겠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한다. 알고 보니 이츠카는 그녀의 아버지가 료쿠쇼에 맡기고 간 여자아이였고, 이츠카는 그런 아버지로 인해 마음속 깊은 곳에 상처를 입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정을 배경으로 <데아이몬: 화과자 이야기>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나고무의 어머니는 고향으로 돌아온 나고무에게 이츠카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되어달라고 이야기한다. 나고무는 그 말에 따라 이츠카와 친해지려고 노력하지만, 아버지를 잊지 못하고 있는 이츠카는 시종일관 쌀쌀맞은 태도로 나고무를 대한다. 그래도 나고무는 이츠카의 마음을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그런 나고무의 모습에 이츠카의 마음도 움직이며 두 사람은 부녀와도 같은 관계를 조금씩 만들어 나간다. 나고무가 바깥에서 이츠카의 아버지 같은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면 항상 발끈하던 이츠카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에 개의치 않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그 예시다. 하지만 나고무는 그런 이츠카의 모습에서 이츠카가 밝아졌기 때문인지, 아버지를 만나는 것을 포기해버렸기 때문인지에 대해 생각하며 측은지심을 보이기도 한다. 나도 이 장면이 정말 슬펐다.
그럼에도 이 애니메이션의 이야기는 희망차다. 나고무는 음악이라는 꿈을 포기했고, 이츠카는 아버지로 인해 큰 상처를 받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와 주변 인물들과 함께 이 사연을 함께 나누며 새로운 꿈을 꾸고, 상처를 치유한다. 오해로 인해 헤어지게 된 나고무의 전 여자 친구 카노코와 료쿠쇼의 아르바이트생 소녀 미츠루, 그 외에 등장하는 조연들의 이야기도 이러한 희망의 이야기에 보탬이 되어준다. 특히 나는 나고무와 카노코의 이야기가 꽤 재미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차였다고 생각한 채 헤어지게 되었다가(나는 나고무가 의도치 않게 카노코를 찬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련을 갖고 교토까지 내려온 카노코가 아예 교토에 눌러앉게 되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여기서 아르바이트생 소녀 미츠루가 끼어들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이 흐뭇한 미소를 절로 짓게 만들어 주었다.
이처럼 <데아이몬: 화과자 이야기>의 스토리는 대부분 힐링의 색채를 갖고 있다. 앞서 이야기했던 <클라나드> 시리즈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지만 <클라나드> 시리즈는 감동을 이끌어내기 위해 판타지나 비극의 요소를 활용하는 반면, <데아이몬>은 유사 가족의 요소를 활용한다는 것에서 꽤 다른 분위기를 가진 작품들이다. 또한, 순수 일상적인 면은 <데아이몬>이 <클라나드>보다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왜냐하면, <클라나드: 애프터 스토리> 이전까지는 가족물의 요소도 있지만 남주인공인 토모야와 여주인공 나기사의 러브 스토리가 메인 줄거리인 반면 <데아이몬>은 러브 코미디적 요소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에피소드들이 나고무와 이츠카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힐링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데아이몬> 쪽의 분위기가 더 좋았다.
편집
나는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리뷰할 때 편집에 대해서는 그다지 거론하지 않는다. 일단 내가 편집에 대해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작품에 몰입해 있으면 편집까지 눈여겨보지 못하는 성격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데아이몬: 화과자 이야기>의 편집은 그런 나의 눈길마저 사로잡았다. 정확히는 프롤로그에서 오프닝으로 넘어가는 편집이 정말 깔끔했다. 많은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오프닝 이전에 프롤로그가 등장하고, 이후 오프닝 곡과 함께 오프닝이 시작되는데, 이러한 구성은 작품의 흐름을 끊어버릴 위험이 있다. 하지만 <데아이몬>에서는 훌륭한 편집으로 이를 극복해냈다. 프롤로그의 막바지 지점에서 아름다운 오프닝 곡이 흘러나오고, 이후 자연스럽게 오프닝 영상으로 이어지는 편집은 작품의 흐름을 끊지도 않았고 오히려 본편의 전개를 기대하며 노래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러한 방식의 편집은 나가이 타츠유키 감독의 TV 애니메이션 <토라도라!>와 유사하다. <토라도라!>는 오프닝이 아닌 엔딩에서 <데아이몬>과 유사한 편집을 보여주는데, 엔딩이 나오기 전부터 미리 엔딩곡을 깔아 두어 에피소드가 끝나면 엔딩 영상과 바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두었다. 하지만 나는 <데아이몬>의 편집이 <토라도라!>의 편집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토라도라!>에서는 엔딩곡이 에피소드의 분위기와 그다지 어울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삽입되어 오히려 작품의 몰입을 방해할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데아이몬>의 잔잔하고 아름다운 오프닝 곡은 어떤 분위기의 에피소드에 사용되어도 잘 어울리며 작품의 몰입에 큰 도움을 준다. 나는 특히 마지막화의 오프닝 편집이 따뜻함과 귀여움, 그리고 힐링까지 모두 잡아낸 명편집이라고 생각한다.
미술
이 애니메이션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을 꼽으라고 하면 단연 미술이다. 요즘 나오는 애니메이션들은 대부분 사실주의적인 미술을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유루캠> 시리즈가 있는데, 배경을 최대한 현실과 비슷하게 그리거나 아예 로케이션지의 모습을 촬영, 보정하는 방식으로 뛰어난 퀄리티의 미술을 만들어낸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들에 등장하는 미술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이처럼 사실주의적인 미술은 애니메이션의 볼거리를 늘려주는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때때로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 애니메이션의 미술은 사실주의적이어서 보기 좋지만 그 위에서 말하고 행동하고 있는 캐릭터들과 합쳐지면 이질감이 느껴지는 것 같은데?' 하는 생각 말이다. 그만큼 요즘 애니메이션을 볼 때는 실사 배경 위에 캐릭터를 그려놓은 듯한 이질감이 꽤 든다.
<데아이몬: 화과자 이야기>의 미술에는 이러한 이질감이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작품의 미술은 사실주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미술 자체가 캐릭터 디자인에 어울리도록 디자인되어 있기도 하다. 덕분에 나는 주인공들이 살아가는 따뜻하고 가족적인 세계가 확실하게 애니메이션 속에 녹아든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여기서 다가 아니다. 이 애니메이션의 미술은 대부분 아름다운 배경 정도로만 작용하는 다른 애니메이션들의 미술과 달리 연출에 있어서도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미장센이라고 하던가? 미술과 소품 등을 카메라만의 촬영 구도로 비추어 심리나 이야기의 전개를 표현하는 연출을 미장센이라고 한다. <데아이몬: 화과자 이야기>는 이러한 미장센에 있어서도 훌륭한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10화에서 가게의 매화를 비추어 이야기를 전개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총평
<데아이몬: 화과자 이야기>는 교토의 화과자 가게에서 벌어지는 어른과 아이의 이야기다. 꿈을 접었지만 만남을 통해 새로운 꿈으로 향하는 나고무와 마음속 깊은 곳의 상처를 만남을 통해 치유하는 이츠카의 이야기는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이 감동적인 이야기를 훌륭하게 보조하는 미술의 활용도는 극찬을 아끼지 않을 수가 없다. 요즘 나오는 일본 애니메이션 중에서 ‘미장센’이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작품일 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다. <데아이몬: 화과자 이야기>는 좋은 작품이다. 각본, 미술, 연출 모두 흠잡을 곳 없고, 가족 일상계 애니메이션의 전설과도 같은 애니메이션 <클라나드> 시리즈에 근접할 정도다. 나는 2분기를 좋아한다. 2분기에는 무조건 좋은 작품을 만나기 때문이다. <데아이몬: 화과자 이야기>는 그러한 올해 2분기 애니메이션의 최고작이라고 할 수 있는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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