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찮으신 분들은 영상으로 https://youtu.be/-w83TrH108I)
신세기 에반게리온, 일본 문화청 주관 미디어 예술 100선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한 전설적인 작품이다. 나는 친구가 올해 마지막 극장판이 나온다기에 같이 보러 가기 위해서 처음으로 에반게리온을 접하게 되었다. 결국에는 개봉이 연기되고 말았지만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에반게리온을 보며 난해하다고 말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마지막 25, 26화를 제외하고는 그리 난해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그마저도 신지의 내면세계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생각하니 조금은 이해가 가는 것 같기도 했다.
사람들은 에반게리온을 보면서 '이 장면은 성관계를 의미하고 저 장면은 어떤 신을 형상화 한 걸 거야...'라며 이른바 연구를 하곤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행위는 쓸모없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안노 히데아키 감독이 에반게리온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집에서 혼자 있으면서 외로워하지 말고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어울리며 세상과 친해져라'라는 것이라는 건 대부분의 에바 팬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이 느낀 것은 그러한 메시지가 아니라 각각의 장면이 가지고 있는 사소한 상징과 스토리 진행의 부재였다.
실제로 안노 히데아키 감독은 에반게리온 TVA가 끝이 난 후 25화와 26화의 난해함을 욕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에 대한 혐오감과 우울증이 더해진 상태로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25화와 26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메시지는 이해할 수 없는가?'라고 생각해보아도 그런 것은 아니다.
나도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해석들과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을 보기 전에는 대충 짐작만 했었지만 그럼에도 작품의 메시지는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안노 히데아키 감독은 분명 오타쿠들에게 욕을 들어먹지 않았어도 에반게리온의 스토리를 완벽하게 끝내기 위해서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을 기획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눈 앞의 설정과 캐릭터들에만 집중하고 있었던 오타쿠들에게는 그런 건 보이지 않았다. 집에만 처박혀서 메시지와는 거리가 먼 쓸모없는 설정과 캐릭터만을 음미하고 반사회적 성향을 보이는 '일부' 오타쿠들은 아직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들을 끝까지 매도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도 영화와 애니메이션, 콘솔 게임을 좋아하고 즐기는 오타쿠이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다고 욕하는 것은 나쁜 짓이니까.
그렇다면 왜 그들은 집 안에 틀어박히게 된 것일까? 일본과 한국이 경제난을 겪고 히키코모리가 많아졌다는 것은 다들 들어보았겠지만, 오타쿠들이 전부 히키코모리인 것은 아니고, 히키코모리 중에서도 계속 도전하다 실패만 맛보고 사회에 혐오를 느껴 방 밖으로 나오지 않는 사람들도 정말 많을 것이다.
오타쿠들이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 이유는 방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크다. 과거에는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영화의 정보를 얻고 팬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는 반드시 밖으로 나가서 발품을 팔고 누군가를 만나야 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다.
인터넷에는 각종 서브컬처의 자료들이 널려있고, 인터넷 메신저를 통해 익명의 누군가와 이야기도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할 때, 에반게리온이 나왔다. 경제위기, 인터넷의 빠른 보급은 집돌이 집순이 형 오타쿠들을 양산하기 시작했다.
집 안에서 익명의 가면을 쓰고 다른 정체성을 연기하며 살고,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면 자연히 사회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고, 이는 오타쿠들이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도 현실과는 동떨어진 말을 하게 되는 것에도 영향을 미친다. 놀랍게도 이는 비 오타쿠들이 모여 있는 인터넷 메신저 속에서도 벌어진다. 인터넷 사회 속에서도 오타쿠들은 오타쿠들끼리 모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에반게리온의 오프닝 곡 '잔혹한 천사의 테제'에서는 '소년이여, 신화가 되어라'라고 외치지만, 오타쿠들은 곡을 곡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냐, 저 노래의 가사는 악당 제레의 최종 목표인 서드 임팩트를 암시하고 있는 거야. 안노 히데아키는 대단해!'라고 받아들인다.
실제로 잔혹한 천사의 테제의 작사가는 안노 히데아키가 아니며, 곡이 완성되었을 때 본편은 나오지도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가사는 은근히 서드 임팩트를 암시하고 있으니 애니메이션이 곡의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분명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대단한 작품이다. 그러나 90년대의 애니메이션 시장은 변해가고 있었다. 에바는 70, 80년대를 이어 작가주의 애니메이션을 발전시켜가는 90년대의 작품이었지만, 90년대의 애니메이션 시장은 점점 오타쿠화 되어가고 있던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오타쿠들은 과거의 활발했던 오타쿠들과 달리 점점 움직임을 잃고 매력적인 캐릭터만을 추구했으며, 작품의 메시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결국 오타쿠 중심의 애니메이션 시장은 애니메이션 제작에도 영향을 미쳐 작가주의 애니메이션은 TVA로는 사멸하다시피 하였으며 가끔 나오는 정도이고, 극장판에서나 자주 볼 수 있으며, 대부분은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과 '케이온'으로 붐을 일으킨 모에 장르가 독식해버리고 말았다.
작가주의 애니메이션도 캐릭터는 모에를 채택하고 만들어질 정도이니 정말 엄청난 붐이 아닐 수가 없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러한 오타쿠 시장에서의 모에화가 촉발될 수 있게 한 거름을 제공한 것은 에반게리온이라는 것이다.
여기까지 읽은 사람이라면 '어? 지금까지 에반게리온은 오타쿠의 희생자라고 말하던 거 아냐?'라고 생각하겠지만, 아니다. 확실히 에반게리온은 모에의 거름이 되었다. 갭 모에의 상징과도 같은 캐릭터 '아야나미 레이', 엄청난 인기를 끌어 비 오타쿠들도 알고 있는 츤데레의 표본 캐릭터 '소류 아스카 랑그레이(혹은 시키나미 아스카 랑그레이)'와 든든한 조력자 캐릭터 '카츠라기 미사토'에 모에는 아니지만 오타쿠들의 혼을 쏙 빼놓을 메카 '에반게리온'까지.
이들은 애니메이션 시장에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되었고, 모두 피규어처럼 현대 오타쿠들의 상징과도 같은 상품들로 발매되기 시작했다. 우리가 아는 오타쿠의 성지 아키하바라도 과거에는 전자상가였다가 이를 기점으로 에바 관련 상품들을 위시한 오타쿠 상품들을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아키하바라로 변하게 되었다.
각설하고, 지금의 오타쿠들은 절대로 신화가 될 수 없다. 신화가 되고 싶다면 지금 당장 방문이라도 열고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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