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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 외딴 성

나가레보시 2024. 9. 15.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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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 외딴 성(2019~2022)

나는 하라 케이이치 감독의 영화 <거울 속 외딴 성>을 꽤 재미있게 감상하였다. 더 좋은 후기를 쓰기 위해 세 번이나 영화관에서 관람하였을 정도니까. 그런 만큼, 영화 <거울 속 외딴 성>은 영화 <컬러풀> 이후 12여 년간 부진했던 하라 케이이치 감독의, 걸작이라고까지는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만 충분히 인상적인 재기작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영화 <거울 속 외딴 성>을 감상한 나는, 원작 소설과 타 미디어믹스 작품들도 감상해 보기로 했고, 그렇게 만화 <거울 속 외딴 성>을 읽어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깨닫게 된 것은, 아쉬운 점을 수정하고 장점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작품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원작 소설의 작가이자 원안을 맡은 츠지무라 미즈키와, 그림을 맡은 타케토미 토모의 만화 <거울 속 외딴 성>이 바로 그런 작품이다. 이 만화는 원작과 영화보다 훌륭하다.
 
스토리와 주제에 대해서는 이전의 영화 <거울 속 외딴 성> 리뷰에서 이야기한 적이 있으므로, 만화 <거울 속 외딴 성>이 원작과 영화보다 훌륭한 이유에 대하여 곧바로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이 만화가 훌륭한 이유는 크게 강화와 보완, 그리고 연출로 나눌 수 있다. 우선 강화와 교정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만화 <거울 속 외딴 성>의 서사는 원작보다 강화되어 있다. <거울 속 외딴 성>의 원작과 영화의 차이점은 복선의 정교함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거울 속 외딴 성>은 2시간이라는 분량의 압박 속에서 주인공들이 살고 있는 시간대가 제각각 다르다는 중요한 반전에 대한 복선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다. 하지만, 소설 <거울 속 외딴 성>은 그런 복선을 '정석적으로' 제시해 낸다. 다만, 나는 이에 대해 한 가지 아쉬움이 들었다. 글이라는 특성상 정석적인 묘사가 노골적으로 드러났던 것이다.
 
만화 <거울 속 외딴 성> 역시 원작이 존재하는 만큼 복선의 존재는 유사한 방식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만화는 그림이다. 소설의 경우, 복선이 글로 나타나기 때문에 복선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버릴 가능성이 있지만, 만화는 그림이기 때문에 복선을 굳이 글로만 나타낼 필요는 없다. 따라서 작품 속 복선들은 전부 글과 그림이 조화를 이루며 나타난다. 성 안에서의 일상이 그림으로 표현되고, 그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복선들. 이미 영화와 원작 소설을 감상한 나의 입장에서는 전부 알고 있는 복선들이지만, 그럼에도 노골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것은 만화라는 플랫폼이었기에 가능한 강화이자 보완이 아니었을까? 이러한 강화와 보완은 복선에서만 나타나지 않고, 주인공들의 개별 서사에서도 작용한다. 특히, 늑대에게 잡아먹히기 직전 나타난 회상과 행동의 연출이 그러했다.
 
물론, 영화와 원작 소설에서도 잡아먹히기 직전의 회상이나 행동들은 나름대로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영화의 경우에는 2시간이라는 제한으로 인하여 그다지 묘사되지 못했던 주인공들의 마음속 어둠이 후반에 몰아치듯 묘사되고 말았다는 점에서, 소설의 경우에는 마음속 어둠의 존재 사실까지는 그럭저럭 묘사되었으나 회상을 통한 회수에 있어서는 그 어둠을 끝없이 주절주절 대는 느낌이 들었다는 점에서 아쉬웠다. 만화는 이러한 단점들을 단숨에 죽여버린다. 앞서 이야기한 복선부터 탄탄하게 묘사되었으니, 복선을 회수하는 회상이 흐지부지 될 수는 없다. 이어서 회상을 끝낸 주인공들이 각각 자신 나름대로의 행동으로 죽음을 맞는 장면이 연출되면서, 코코로가 친구들의 과거를 엿보는 듯한 인상을 주었던 영화나 소설과는 달리, 회상 하나하나가 개개인의 과거라는 인상까지 주었다.
 
이는 성으로 초대된 아이들 모두가 작품의 주인공이라는 감상을 주는 데에 일조한다. <거울 속 외딴 성>의 메인 주인공은 코코로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아이들이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감독 하라 케이이치와 작가 츠지무라 미즈키는 이 철칙을 필사적으로 지켜보고자 했다. 다만, 2시간이라는 상영 시간의 압박과 특정 묘사를 노골적으로 만드는 글의 특성은 어쩔 수 없이 코코로를 제외한 아이들을 어느 정도 무시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만화는 다르다. 만화 <거울 속 외딴 성>을 통하여 츠지무라 미즈키는 소설에서 지켜내지 못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드디어 지켜낸다. 동시에 타케토미 토모의 연출로 그 이야기를 아름답게 장식한다. 시간제한 없이 모든 것을 묘사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종이와, 그 위에서 글의 노골성을 완화하는 그림. 이것이 바로 코미컬라이즈의 순기능이 아닐까?
 
이제 연출에 대하여 이야기할 차례이다. 사실 앞서 이야기한 장점들은 만화라는 플랫폼 덕분에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연출은 순전히 작가의 역량에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 대놓고 이야기하자면, 만화 <거울 속 외딴 성>의 그림을 맡은 타케토미 토모의 연출력은 상당하다. 어떤 상황에서 인물을 클로즈업하고, 원거리에서 묘사하여야 할지를 알고 있으며, 이를 위해 어떻게 칸을 나누어야 할지까지도 알고 있는 훌륭한 작가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만화를 읽기 전까지 타케토미 토모라는 작가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는데, 기억해 두어야겠다. 다시 연출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인물의 클로즈업과 원거리에서의 묘사는 감정의 농도를 조절하기 위한 수단이다. 타케토미 토모는 이를 통해 인물들의 감정을 조절해서, 작품의 분위기마저 조절해 낸다.
 
이 작품에서 감정은 곧 주제와 연관되어 있다. 즉, 어떤 고난이 있더라도 자신을 믿고, 친구들을 믿고 앞을 향해 달려 나가자는 작품의 주제는 상당히 감정적으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타케토미 토모는 이 사실을 이용한다. <거울 속 외딴 성>의 이야기는 가벼우면서도 무겁다. 정확하게는 성에서의 일상은 가볍지만, 주인공들의 고난은 무겁다. 가벼움과 무거움은 서로의 주제를 향해 나아가며 교차한다. 주인공들은 가벼운 일상 속에서 친구들을 믿으며 나아가고, 그렇게 맞닥뜨린 무거운 고난 앞에서 친구들의 도움으로 자신을 믿어내어 앞을 향해 달려 나간다. 그러한 가벼움과 무거움이 바로 클로즈업과 원거리에서의 묘사를 통해 연출된다. 원거리에서의 인물 묘사는 성에서 일어나는 가벼운 일상 속의 감정을, 클로즈업은 각자가 숨겨둔 무거운 고난 속의 감정을 묘사하고, 끝내 이들은 교차된다.
 
그렇게 완성된 감정은 마지막 만남의 장면에서 폭발한다. 이제 무거움과 가벼움의 구분은 존재하지 않는다. 클로즈업도, 원거리에서의 묘사도 모두 기쁨과 사랑만을 묘사한다. 벚꽃이 흩날리는 거리를 즐기는 코코로의 원경과 근경에서도, 그런 코코로를 기다리고 있는 리온의 원경과 근경에서도 기쁨과 사랑만이 나타나 있을 뿐이다. 그런 기쁨과 사랑 속에서 코코로는 마지막으로 독백한다. '나는 꿈을 꿀 때가 있다. 우리 반에 전학생이 온다. 그 아이는 뭐든지 할 줄 아는 멋진 아이. 두 사람은 이미 친구.' 그 독백은 그녀의 것일까, 독자의 것일까? 코코로와 리온이 대면하며 흐르는 독백은, 마치 종이 너머에서 그들의 만남을 지켜보는 독자를 대변하듯 원경으로 묘사되며 모호해진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원경과 독백 중에 드러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안녕."이니까.
 
지금은 대 미디어믹스의 시대다.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만화와 라이트노벨의 애니메이션화, 드라마화가 진행되어왔고, 한국에서도 웹툰과 웹소설의 드라마화는 꾸준히 진행되며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런 시대에서 나는 이야기하고 싶다. 그럼에도 원작을 뛰어넘는 미디어믹스 작품을 발견하는 것은 하늘에서 별따기에 가까울 것이라고. 결국, 미디어믹스 작품은 원작에서 기본 골자를 받은 채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미디어믹스 작품이 원작을 뛰어넘는 것은 매우 드문 것이다. 하지만, 나는 결국 하늘에서 별을 따버리고 말았다. 만화 <거울 속 외딴 성>은 원작 소설을 완전히 압도한다. 츠지무라 미즈키는 아쉬운 점들이 존재했던 소설의 각본을 보완한 원안을 내놓았고, 타케토미 토모는 이를 토대로 훌륭한 연출을 선보였다. 실로 훌륭한 미디어믹스의 표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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