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오빠는 끝!

나가레보시 2023. 4. 7.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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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는 끝!(2023)

(영상 시청 가능 https://youtu.be/4cy1FwVFcPw)
나는 이 리뷰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감상한 애니메이션들만큼은 가능한 한 전부 리뷰를 적어보겠노라고 다짐해 왔다. 그 덕분에 정말 재미없었던 몇몇 작품들을 제외하면 그럭저럭 리뷰를 적어낼 수 있었고, 여러 작품들이 리뷰 예정에 있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나는 이 리뷰를 적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에 대해, 블로그를 시작하고 거의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하며 글을 써 내려가고 있다. 오늘 리뷰할 애니메이션은, 지금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가능성이 큰 엄청난 작품이다. 1화부터 12화까지의 모든 회차에서 나를 경악하게 만들었으며, 동시에 거의 실성에 가깝게 웃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 말들이 전부 칭찬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두려울 따름이다. 부디 내가 현명한 글을 적어내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며, TV 애니메이션 <오빠는 끝!>의 리뷰를 시작해 보도록 하겠다.
 
TV 애니메이션 <오빠는 끝!>은 역겨운 작품도, 더러운 작품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떤 말로 이 작품을 표현하는 것이 좋을까. 그래, 무서운 작품이 좋겠다. 내가 이 애니메이션에서 처음으로 느낀 것은 역겨움도, 더러움도 아닌 원초적인 공포였다. 웃기게도 그 공포는 뛰어난 표현력에서 온다. 단 하나의 이야기를 나타내기 위해 존재하는 소름 끼칠 정도로 자연스럽고 뛰어난 표현력. 나는 이 표현력에 두려움을 느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이 표현해내고자 하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놀라지 마시라. 그것은 바로 남자아이가 자연스럽게 여자아이로 변해가는 과정, 즉 Trans-Sexual, 'TS'다. 내가 적어놓고도 무서운 이야기이지만, 절대 거짓말이 아니다. TV 애니메이션 <오빠는 끝!>은 이러한 이야기를 뛰어난 작화와 의미심장한 연출들을 통하여 거의 공포에 가깝게 표현해 내는 작품이다.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이 애니메이션의 이야기가 이중적이라는 점이다. 즉, <오빠는 끝!>의 핵심 주제인 TS에는 이를 감싸고 있는 겉표면의 이야기가 존재하고 있다. 그 이야기는 회귀적이다. <오빠는 끝!>에 내포된 이야기, 즉 TS를 감싸고 있는 겉표면의 이야기는 미소녀 일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쯤 되면 어째서 내가 회귀적이라고 이야기했는지 대부분 이해하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미소녀 일상이라는 장르의 전성기는 2000년대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후에도 미소녀 일상 장르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거의 세가 약해졌거나 <유루캠>처럼 변형된 작품들이 더 많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빠는 끝!>의 표면적인 이야기들은 과거 미소녀 일상의 전개방식과 놀랍도록 똑같다.
 
자, 그렇다면 어째서 미소녀 일상인가? 나는 그 이유를 본래 남성이었던 주인공 마히로가 점점 여성으로 변해가는 과정, 즉 TS의 진행 과정을 포착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했다. 생물학적으로는 여성이지만, 정신적으로는 남성인 마히로가 조금씩, 자연스럽게 여성적으로 행동하게 되는 모습은, 곧 그의 정신까지 점점 여성적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나타낸다. 이를 포착해내는 데에 있어서 여러 여성들의 사소한 행동들을 쉽게 관찰할 수 있는 미소녀 일상만큼 적합한 장르도 없을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뛰어난 작화와 의미심장한 연출들은, 이러한 여성의 사소하고 일상적인 행동들을 공포에 가까울 정도로 자세하게, 그리고 뛰어나게 그려내어 남성인 마히로가 여성으로 변해가는 과정이라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화면 속에 표현해 낸다. 이것이 바로 <오빠는 끝!>이 뛰어난 이유이다.
 
<오빠는 끝!>의 작화는 매우 훌륭하다. 얼핏 보면 평범한 미소녀 일상물의 평균에 가까운 작화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등장인물들이 구사하고 있는 평범한 행동들은 매우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여성적인 움직임들, 여성만이 구사할 수 있는 행동들은 우수한 작화 속에 고스란히 담겨, 남성이었던 마히로가 이제 완연한 여성으로 거듭났다는 사실을 시청자들을 향해 선포하는 것이다. 그러한 작화를 돋보이게 만드는 연출은 여성으로 변해가는 마히로의 모습들을 의미심장하게 만들어, 시청자들로 하여금 상상하게 만든다. 이 작품은 마히로의 변화를 일일이 각본으로 전하지 않는다. 그저 표정 한 번, 눈짓 한 번, 몸짓 한 번, 손짓 한 번으로 모든 것을 끝낸다. 이토록 뛰어난 연출이 빛을 발한 것이 바로 9화의 크리스마스 파트이다.
 
나는 거의 8년을 가까이 애니메이션을 보며 살아왔지만, <오빠는 끝!> 같은 작품을 본 적은 단언컨대 없다고 자신한다. 작화적으로 비슷했던 작품들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그런 작품들은 무섭다기보다는 천박했다. 또한, 연출적으로 비슷했던 작품들은… 장담하는데,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 작품 속 모든 장면들을 내포된 이야기를 확정짓는 연출로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작품으로 알 수 있었다. 그만큼 <오빠는 끝!>은 쓸데없이 독창적이다. 글을 마치며, 이 작품에 숨은 다양한 요소들을 전부 알아채는 사람은 애니메이션으로 상당한 내공을 쌓은, 글러먹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바로 나다. 나는 완벽하게 글러먹었다. 작품 속에 나타나는 뛰어난 작화가 무엇을 위해 기능하고 있는지, 의미심장한 연출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 내게는 너무나도 잘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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