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0DMwr7Y1VQk 영상으로도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2016년,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를 통해 판권을 이유로 소니 엔터테인먼트에서만 활약할 수 있었던 스파이더맨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등장하게 되었다. 이후 만들어진 MCU 스파이더맨의 첫 번째 단독 영화 <스파이더맨: 홈커밍>은 기존에 알고 있던 스파이더맨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하이틴 장르로서 고등학생 피터 파커의 성장을 재미있게 묘사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후속작이자 인피니티 사가의 피날레를 장식했어야 할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은 아이언맨의 캐릭터성을 파괴하고 3편을 위한 떡밥만 뿌렸을 뿐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올해 12월, 드디어 오리지널 스파이더맨 트릴로지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캐릭터들을 앞세우며 MCU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3편이 개봉했다. 두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전부 보며 자라온 나는 큰 기대감을 갖고 이번 영화를 보았다. 그러나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오리지널 스파이더맨과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이라는 거대한 무기를 앞세우고도 나를 실망시키고야 말았다.
영화는 미스테리오가 스파이더맨의 정체를 밝히고 자신을 죽인 살인자로 누명을 씌우는 전작의 쿠키 영상에서 시작한다. 탄로 난 정체와 모함으로 인해 자신은 물론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주변인들까지 피해를 입는 모습을 보게 된 피터 파커는 닥터 스트레인지를 찾아가 마법으로 전 세계가 자신의 정체를 잊게 해 달라 부탁하지만, 수정 사항을 요구하며 닥터를 방해한 끝에 마법은 실패하고 모든 차원에서 스파이더맨의 정체를 아는 빌런들이 MCU 차원으로 찾아오게 된다. 이 빌런들을 오리지널, 어메이징 스파이더맨들과 함께 치료해 기존 차원으로 되돌려 보내는 것이 이 영화의 줄거리다.
방금 요약한 줄거리만 보면 큰 기대감이 들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오리지널 스파이더맨 트릴로지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빌런들이 총출동하고, 이에 맞서 토비 맥과이어, 앤드루 가필드, 톰 홀랜드로 이루어진 세 명의 스파이더맨이 힘을 합쳐 빌런들을 물리치는 이야기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거대한 추억 요소에 기대기만 한 나머지 개별적 작품으로는 그다지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없도록 만들었다.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오리지널 스파이더맨 트릴로지의 인기 빌런인 '그린 고블린'과 '닥터 옥토퍼스'를 제외한 빌런들은 영화 속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않다. 그나마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의 빌런 '일렉트로'가 어느 정도 활약하는 편이다. 또한 피터에 말에 수긍해 치료를 받던 빌런들이 그린 고블린의 말 한마디에 도망치는 모습도 납득이 가는 전개라고는 보기 어렵다. 특히 그 상황을 직접 보지도 않았는데 감으로 때려 맞추고 난동을 피우는 리저드는 어이없는 수준이었다.
스파이더맨의 서사 역시 잘 짜여있다고는 볼 수 없다. 물론 지난 시리즈에 비해 이질적이었던 MCU의 스파이더맨이 드디어 본래의 자리를 찾은 것은 환영할만하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불문율은 드디어 지켜졌고, 덕분에 온갖 첨단 기술로 무장하고 자신의 정체를 아는 주변인들의 도움을 받으며 편하게 히어로 활동을 하던 MCU의 스파이더맨은 드디어 정체를 완벽히 숨긴 채 힘들게 살며 경찰의 무전을 도청해 출동하는 친절한 이웃으로 거듭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 과정은 마냥 호평할 수 없다. 작중에서 MCU의 피터 파커는 닥터 스트레인지의 마법으로 인해 MCU 차원으로 넘어온 오리지널 트릴로지의 피터 파커와 어메이징 시리즈의 피터 파커에게 조언을 받으며 끝내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큰엄마 메이의 유언을 이해하고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러나 이는 안일한 면이 있다.
큰엄마 메이가 세상을 떠나게 된 이유는 피터가 빌런들을 원래 세계로 되돌려 보내기 전에 치료해주자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이 제안이 서사의 질을 하락시킨 주범이다. 피터 파커가 아무리 어린애라지만 고등학생인 만큼 자신의 주관 정도는 표현할 수 있어야 하는데, 작중에서 피터는 닥터 스트레인지를 설득하려는 노력보다는 떼를 쓰며 닥터의 계획을 망친다. 물론 이를 통해 메이로부터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유언을 이끌어낸다는 의도가 숨어있음은 충분히 알 수 있었지만, 조금 더 시간을 할애해 닥터와 대립시켰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후반부에 선배 스파이더맨들이 후배인 MCU 스파이더맨에게 조언하여 그를 각성시키는 모습도 솔직히 그리 좋게 비치진 않았다. 우선 큰엄마 메이의 죽음으로 슬퍼하고 있는 피터가 단번에 다른 차원에서 온 또 다른 스파이더맨들의 정체를 알아채는 것부터 납득이 잘 가지 않았다. 물론 이는 극적 허용으로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다. 내가 아쉬웠던 것은 어엿한 시리즈의 주인공인 MCU 스파이더맨의 각성이 추억의 요소들인 오리지널 스파이더맨과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오리지널 스파이더맨과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은 자신들의 영화에서 자기 스스로 깨달음을 얻고 성장한다. 물론 그들에게도 조력자가 없던 것은 아니지만, 근본적인 성장의 주체는 자신들이다.
그러나 MCU 스파이더맨의 성장은 전적으로 선배 스파이더맨들의 조언과 격려에 의지하고 있다. 선배 스파이더맨들은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유언이 적용되는 상황을 접하고 스스로 깨달음을 얻지만, MCU 스파이더맨은 그 유언을 들은 후에도 그린 고블린을 죽이려 들다 오리지널 스파이더맨의 저지를 통해 비로소 깨달음을 얻는다. 이러한 모습들은 철저히 작품적으로 보면 한 인물의 깨달음과 성장을 추억의 요소로 점철시켜 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우여곡절 끝에 피터 파커는 자신의 정체를 알던 동료들에게 의지만 하던 철부지 꼬마 스파이더보이에서 우리의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으로 돌아왔다. 그 점은 좋았다. 추억 속에 있었던 수많은 캐릭터들이 되살아난 것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이를 다 제외하면 결국 남는 것은 무엇이냐는 의문도 함께 들었다. 베놈일까? 아니면 멀티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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