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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나베 세이코의 소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은 지금까지 세 번 영화화되었다. 이누도 잇신 감독의 2003년 실사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타무라 코타로 감독의 2020년 애니메이션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마지막으로 김종관 감독의 2020년 실사 영화 <조제>이다. 나는 이누도 잇신 감독작과 타무라 코타로 감독작을 감상한 적이 있다. 그중에서도 오늘 리뷰할 영화는 타무라 코타로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다. 사실 나는 이 영화를 재작년 한국에 공개되었을 때 VOD로 감상한 적이 있지만, 다른 작품을 리뷰하느라 후순위로 밀어두었다. 그때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해 보자면, 이누도 잇신 감독의 실사판과 비교하면 정말 못한 작품이지만, 단독으로 보면 원작의 제목만을 빌려 온, 어느 정도 괜찮은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애니메이션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올해 재개봉되었다. 마침 심심했던 나는 이참에 극장에서 재관람해보고자 했고, 그 감상은 지난번의 것과는 매우 달랐다. 이제는 단독으로도 별로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리뷰에서는 어째서 내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별로라고 생각했는지에 대해 짧게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빠르게 이야기해 보자. 애니메이션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별로인 이유는 인물들의 감정들이 단편적으로 연출되어 있는 것에 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조제의 감정은 전형적인 츤데레다. 그녀는 끊임없이 츠네오에게 짜증을 내지만 속으로는 그를 좋아해 간다. 물론 제작진도 그 단점을 모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중후반부의 교통사고로 조제에게 깨달음을 주고자 하는 모습이 보이지만, 결국 대충 넘어가버린다는 점에서 아쉽다.
츠네오의 감정 역시 관심-사랑-좌절-사랑을 순서로 한 단편적인 구성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반전들이 등장함에도 흥미는 그다지 생기지 않았다. 이러한 단편적인 감정은, 결국 서로를 사랑하고 있음에도 장애라는 고난 앞에서 내외적으로 갈등하는 조제와 츠네오의 이야기마저 단편적으로 만든다. 이는 다시 전체적인 이야기의 구성마저 단편적으로 만들어, 귀여운 사랑싸움의 해결도, 미래를 결정지을 사건들도 맥없이 흘러가기만 할 뿐이다. 또한, 장애라는 주제를 그다지 심도 있게 다루지 않았다는 것도 아쉬운 점이다. 나쁘게 말하자면, 장애는 조제의 다양한 모에 요소들 중 하나로만 보인다. 그나마 후반부에서 일시적으로 츠네오에게 장애를 부여하면서 조제의 장애를 심도 있게 다루나 했지만, 이는 '일시적인 꿈의 제한'을 다루기 위한 주변적인 요소였을 뿐, 주류로 올라오지 못한다.
야마다 나오코 감독의 <목소리의 형태>를 생각해 보시라. 물론 이 영화도 꽤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지만, 야마다 나오코 감독을 정말 좋아하는 나에게 있어 <목소리의 형태> 속 청각장애라는 요소는 끝까지 작품의 곁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목소리의 형태>에서 장애는 쇼코와 쇼야, 두 주인공이 뛰어넘어야 할 오해와 엇갈림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동시에 이를 극복하는 순간, 장애란 관계에 있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까지 깨닫도록 만든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장애는 과연 그랬을까? 나에게는 아니었다. 애초에 내용조차 다른 실사판과 비교하고 싶지 않았지만, 실사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이누도 잇신 감독은 장애라는 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사랑을 포기하고 마는, 그럼에도 동정에 눈물짓는 츠네오의 모습으로 장애의 무거움을 담아냈다. 아쉽다.
이제 근본적인 아쉬움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사실 앞서 이야기한 단점들에는 전부 변명거리가 있다. '이건 애니메이션이잖아'라는 변명. 이 변명 덕분에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 속 타키와 미츠하의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 될 수 있었다는 예시도 있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변명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성인의 이야기가 마치 학생의 이야기처럼 보인다는 것. 일본 애니메이션 속 학생에게는 어떤 판타지의 요소도 허용된다. 그러나 조제와 츠네오는 성인이다. 그런 두 사람의 이야기는 판타지적이다. 결국 제작진들은 주인공들에게 학생의 요소를 부여하였고, 그렇게 조제와 츠네오의 사랑은 순수한 첫사랑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관객인 나에게는 오글거림만이 느껴졌다. 이제 성인이 되었기에, 학생이 아니지만 학생인 자들의 괴리감을 느껴버렸기 때문일까?
그렇게 생각하니 2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나의 감상이 변화한 것에 대한 이유를 조금 알 것 같다. 나는 이 영화를 고등학생 때 처음 보았다. 그때의 나는 성인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런 만큼, 학생으로 둔갑하고 있는 성인들인 조제와 츠네오의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성인이다. 결국 나는 두 사람의 둔갑을 눈치챘고, 그들의 모습에서 오글거림과 괴리감만을 보았다. 나는 오타쿠다. 따라서 애니메이션 영화를 잘 비판하지 않는 사람이다. 하지만 비판할 때는 확실히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나는 애니메이션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비판할 것이다. 아무리 성인들을 학생의 모습으로 둔갑시킨다고 하더라도, 작품의 단점을 애니메이션적 정상참작으로 보완하고자 하더라도, 오타쿠인 내게 그 단점들은 훤히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