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의 형태> 감상 후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2016년 일본의 극장가를 달구었던 영화가 두 편 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과 야마다 나오코 감독의 <목소리의 형태>다. 나는 두 작품 중에 <목소리의 형태>에 더 끌렸고, 이를 통해 야마다 나오코 감독의 팬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녀와 함께 작업한 음악가 우시오 켄스케에게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앞으로 이어질 우시오 켄스케 음악 리뷰의 첫 번째 작품으로 <목소리의 형태>의 OST 음반인 <a shape of light>를 선택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우시오 켄스케는 미니멀리즘에 기초한 일렉트로닉을 기반으로 음악을 만든다. 따라서 이 음반에서도 이러한 기조는 유지되어, 트랙의 곳곳에서 미니멀리즘이 느껴지는 피아노 사운드와 일렉트로닉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요소보다도 두드러지는 이 음반만의 특징은 곡 뒤에 var이 표시되어있는 곡들에는 피아노 내부 장치가 움직이는 소리, 피아노에 손이 닿는 소리 등의 잡음이 고스란히 녹음되어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몽환적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이러한 잡음들은 청각 장애인들이 사용하는 보청기가 주변 소리를 증폭시켜 소리를 들려준다는 것(몇몇 무선 이어폰에 내장된 주변 소리 듣기 기능을 생각하면 된다)에서 착안하여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즉, 비장애인 관람객들도 청각 장애인들의 입장을 간접적으로 경험해보라는 의도가 숨어있다. 이처럼 우시오 켄스케가 담당하는 작품 속의 주요 소품이나 주제를 음악 속에 녹여내는 방식은 2년 뒤에 개봉한 야마다 나오코 감독의 <리즈와 파랑새>에서도 등장한다.
이제 좀 더 영화와 관련지어 이야기해보자. 야마다 나오코는 주로 세밀한 감정과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작품을 만들어가는 감독이다. 그래서 그녀의 영화에는 인물들의 감정을 정교하게 표현하여 관객의 마음속 깊은 곳을 간질이는 연출들이 주로 사용되고, 이러한 연출 성향은 우시오 켄스케의 미니멀리즘 음악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이런 점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것은 영화의 초반부 초등학교 시절의 마지막 장면인 쇼코와 쇼야의 싸움이다. https://youtu.be/PRZP93ux2NQ
이 장면에서 쇼야는 수화만을 사용하는 쇼코에게 자신의 감정을 자신의 입으로 직접 말해보라 강권한다. 이로 인해 싸움은 벌어지고, 그 과정에서 쇼코는 쇼야의 말을 따라 "힘내!"라고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외치지만, 쇼야는 알아듣지 못한다(청각 장애인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해 발음이 부정확하고, 영화 속에서는 이것이 소통의 부재라는 주제로 작용한다). 이 복잡한 감정의 대립은 야마다 감독의 연출로도 빛을 발하지만, 장면을 더욱 극적으로 꾸며준 것이 우시오 켄스케의 음악이라는 점은 반박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감독과 음악가의 완벽한 조화를 이룬 이 장면을 <목소리의 형태>에서 가장 좋아한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우시오 켄스케의 장기는 미니멀리즘과 일렉트로닉의 조화다. 이 조화가 가장 잘 이루어진 장면을 꼽으라면 단연 쇼코가 쇼야의 어머니에게 사과하며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목소리로 내뱉는 장면일 것이다. https://youtu.be/ck182-vTWGI
이 장면에서는 총 5명의 감정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우에노와 쇼코의 어머니의 싸움에서 나타나는 분노의 감정, 쇼코가 머금고 있는 죄책감, 싸움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유즈루의 슬픔, 그리고 쇼야의 어머니의 슬픔과 기쁨 그 어딘가의 감정이다. 이 장면에서 우시오 켄스케의 음악은 우에노와 쇼코의 어머니의 싸움에서 점점 고조되다가 쇼코의 사과 장면에서 터진다. 일렉트로닉이 사용되어야 할 것 같은 분노의 감정을 차분한 미니멀리즘 음악으로 드러내는 것도 대단하지만, 더 대단한 것은 미니멀리즘 음악으로 드러내야 할 것 같은 사과 장면에서 일렉트로닉을 통해 차분히 감정을 전달해 낸 것임이 틀림없다. 여담으로 이 장면은 내가 이 영화에서 두 번째로 좋아하는 장면인데, 전체적으로 초등학생 파트보다 별로인 고등학생 파트마저 좋은 파트라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장면이자 야마다 나오코의 상징적인 연출이 대거 등장하고 이를 우시오 켄스케의 음악으로 완벽히 보조해내었기 때문이다.
우시오 켄스케가 처음으로 애니메이션의 음악을 맡은 것은 2014년에 방영된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의 <핑퐁 THE ANIMATION>이다. 아직 보지는 않았고 음악만 들어봤음에도 정말 좋았고, 2018년에 한 번 더 유아사 감독의 작품에서 음악을 맡은 <데빌맨 크라이베이비>에서는 미니멀리즘에 가려졌던 그의 일렉트로닉이 미친 듯이 폭주한 작품이다. 그럼에도 나는 우시오 켄스케와 어울리는 감독은 역시 야마다 나오코라고 생각한다.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의 작품에서는 감독의 성향상 <핑퐁 THE ANIMATION>을 빼고는 미니멀리즘과 일렉트로닉의 조화가 두드러지게 드러나지 않는데, 야마다 나오코 감독의 작품에서는 그 조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리즈와 파랑새>에서는 야마다 감독이 감정 연출 쪽으로 폭주해버린 작품이라 덩달아 우시오 켄스케의 미니멀리즘도 함께 폭주해버리긴 했지만, 일렉트로닉과의 조화가 잘 이루어지는 트랙은 분명 존재한다. 2022년 공개되는 야마다 나오코 감독의 신작 <헤이케모노가타리>에서 등장할 우시오 켄스케의 음악이 벌써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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